아기가 태어난 후 달라진 삶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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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가 태어난 후 달라진 삶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2. 3. 9. 17:04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속에서 지내온지 벌써 만으로도 2년이 훌쩍 넘게 지났다. 10대와 20대 혈기 왕성한 세대는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꽃다운 시기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토로해왔다. 나의 인생을 뒤돌아봐도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입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 입장도 이해되지만, 또 다른 한 편 대학교 입학 후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경험할 수도 없었던 신입생들도 불쌍했다. 태어나서 공식 학업을 시작하는 초등학교 입학생들의 모습도 안타까웠다. 직접 학교에 가는 날도 적었고 그마저도 마스크에 가려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 수도 없었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그 시기의 경험이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었다.

     

    한 편 우리나라는 결혼과 임신 출산율도 최악의 상황으로 향하고 있다는 통계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심각한 노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 속에서 몇 달 전인 지난 연말에 우리 가족에게 새 생명이 탄생했다. 나의 1번 조카가 아기 탄생의 기쁨을 알려온 것이다. 가족 모두가 환호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런 세계적인 팬데믹 속에서도 그렇게 새 생명이 태어난 사실 자체가 더욱 감격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의 삶에 조금씩 그리고 차츰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기분 좋고 자발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변화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아기 위주로 변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아기에게 해가 되길 원치 않았고, 무조건 그 어떤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다. 물론 물리적으로 한 장소에 모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거의 80여 일이 되는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 또한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기의 건강을 위한 자발적 제한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는 아기의 엄마 아빠를 제외하면 그들의 직계가족인 양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정도만 아기를 직접 대면한 정도였다. 그동안 산부인과 병원, 산후 조리원, 자택, 정기검진을 위한 아기 소아과 정도가 아이가 거쳐간 장소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 가족 SNS(Social Network Service) 단톡방은 아기 사진과 소식으로 도배가 된 상태이다. 우리 가족은 거의 25여 년 만에 맞이한 아기의 탄생을 그렇게 축복하고 즐기고 있었다. 한국, 영국과 미국에 걸쳐 살고 있는 4세대에 걸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기는 그야말로 선물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하루하루 아기의 성장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지켜봐 왔다. 그리고 가까이 살고 있는 나는 그 언제가 될지 모를 직접 대면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가 살고 있는 곳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이었다. 

     

    사실 작년 가을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한 후, 그 당시에는 6개월 정도 지나고 3차 접종을 권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시작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상황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정부는 3차 접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12월 말이 2차 접종 이후 3개월 정도 지난 시기였는데 3개월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3차 접종을 재촉하는 듯한 문자를 받기 시작했다. 재촉하는 것이 거의 압박당하는 수준이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아직 때도 아닌데 너무 서두르며 종용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원래 더 하기 싫은 법이었다. 물론 6개월까지 반드시 꽉 채우겠다는 고집은 아니었지만 왠지 3개월 만에 3차 접종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1차와 2차 접종의 간격은 원래 3~4주여야 한다는 것이 제약사와 전문가들이 권하는 적정 기간이었지만 정부의 백신 공급 부족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6주까지 늘려 놓기도 했었다. 뭔가 앞뒤가 논리적이지 않고 비전문적으로 보여서 의심이 되기도 했다. 행정상의 이유로 앞뒤가 맞지 않게 말을 바꾸는 듯한 의구심에 건강, 목숨을 맞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저런 사연과 함께 1월 중순이 예정이었던 아기가 12월 말에 빨리 태어났다.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3차 접종 예약을 서둘렀고 나 또한 1월 초에 서둘러 접종했다. 모두 뭔가 신들린 듯한 자기 스스로의 조치였다. 아기의 탄생이 부른 현상이 되어 버렸다. 다들 그것을 자각하면서 웃기도 했다.

     

    그렇게 기대되는 직접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의 엄마인 나의 조카는 만나도 된다고, 오히려 우리를 보도 싶다고 했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더욱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요즘 오미크론(Omicron)의 전파력은 예상보다 너무 강했다. 우리가 혹시나 감염되었는데 자각 증상 없이 아기를 가까이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 조그마한 아기에게 행여 해가 될까 무서웠다. 때마침 7개월 그리고 연이어 4개월 된 아기가 감염되어 병원을 찾다가 사망한 사건의 보도는 공포가 되어 돌아왔다. 그 아기들의 운명에 슬펐다. 조금은 확산세가 수그러들고 아기도 좀 더 성장 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마음속 욕망은 가득 하지만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사실 아직 나의 조카도 몸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외부로부터의 도우미 도움을 받는 것조차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인 아기의 조부모님의 도움을 주로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를 포함하여 조카를 도와줄 가족 구성원이 더욱 많았을 것이었다.

     

    예로부터 그리고 요즘에는 더욱 실감 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아이 하나를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다. 이제는 정말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들이 맞벌이하는 경우는 증가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를 뒷받침할 만한 사회적 여건과 기반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인 것이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율을 심각하게 느끼면서 실현 가능한 단기와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말로만 심각하다고 할 문제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일시적인 현금 살포 정책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결혼과 출산을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알고 있다. 과연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준비를 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최우선적으로 자발적으로 돕고 지원해야 한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가 있고, 그것이 미래가 있는 인간의 삶이다.

     

    * Note : 새 생명, 아기의 탄생은 국가의 미래이다. 아직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가까이서 아기가 태어나면 자발적으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내가,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 국가가 거시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율의 감소를 탁상공론으로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계획과 현실적인 실행을 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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