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vs. 비우기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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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우기 vs. 비우기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9. 12. 22:45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 흥미롭게 눈길을 끄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의 쌓여있던 살림살이를 정리해 주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유와 여건 그리고 사연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 후에 보니 공간은 쌓여 있는 물건들로 침범당하고 여유가 없어졌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 일상의 모습을 보고 난 후, 정리를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일단 "버리기"에 초점을 맞춘다. 3개의 색깔로 나뉜 박스를 받는다. 하나의 상자에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 것을 담고, 하나는 버려야 할지 간직해야 할지 고민 중에 있는 것들을 우선은 담아 놓는다.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간직해야 하는 것들을 담는다. 그 3개의 박스 앞에서 주인공인 출연자들은 고뇌의 시간을 경험을 하게 된다. 출연자 중 누구 한 명도 고민이 없거나 적은 사람은 없었다. 곤혹스러운 선택의 시간이 지나고 남겨진 물건들로 다시 정리된 공간을 마주한다. 환희에 찬 놀라움과 감동으로 여유를 품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고 이제는 버림의 미학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심지어 바뀐 공간의 모습을 자세히 감상한 후에는 더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나를 뒤돌아 보게 되었다. 나의 공간은 일주일에 한 번 대청소를 하기 위해 뒤집어져 있는 날이 아니면 언제라도 겉으로는 정리가 잘 되어 보인다. 내가 처음부터 정해 놓은 자리에 모든 것들이 위치해 있다. 어떤 물건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아서 찾아야 하는 순간이 되면 나는 몹시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정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보거나,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말 정리를 잘하는 프로다운 선수들의 모습들을 보면 나는 아주 평범함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내가 정해 놓은 위치에 항상 모든 것들이 있어야 안심을 하는 정도로만 정리한다. 아주 효율적이거나 최고의 수준은 아니다.

     

    정리를 하는 프로그램에서 핵심은 일단 "버리기"라고 강조한다. 나는 버리기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옷을 들어보겠다. 나는 다행히도 체형에 아주 큰 변화를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한창 젊었던 리즈 시절 때는 지금보다 날씬했었다. 그 당시 입었던 옷들 대부분을 지금은 입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소위 나잇살도 찌고 모든 부위의 탄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싱글이고 출산의 경험이 없었고 그나마 관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체형이 아주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옷들은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했다. 그리고 예전의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오기도 했다. 리즈 시절에 입었던 재킷들의 소매통은 왜 그리 좁았는지, 치마와 바지의 허리는 어쩜 그리 작았는지 지금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민감한 부위의 사이즈가 아니고 유행과 너무 동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다행히도 나의 옷들을 오랜 세월 입을 수 있다. 아직도 10여 년 전의 옷을 입을 때도 있다. 자화자찬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는 옷을 좀 곱게 입고 잘 간직하는 편이고 내가 즐겨 입는 스타일은 그다지 유행에 아주 민감한 형태는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함부로 옷을 못 버린다. 어느 순간 옷 정리를 하면서 버리면, 항상 그 옷이 그립고 아쉬운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지난 2여 년간 손이 가지 않았던 옷은 과감히 버리라고 팁처럼 이야기 하지만, 나는 훨씬 오랜 세월 뒤에도 다시 꺼내 입을 수도 있다. 그것은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현재도.

     

    집안 살림을 과감히 정리하는 시기는 주로 집 이사를 진행할 때이다. 정리를 하고 고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버린다. 처음에는 고민의 시간이 길다가 버리기에 가속도가 붙으면 종량제 봉투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예전의 직장 동료가 자신은 실증을 금방 느끼는 편인데 정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자주 다닌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이사는 삶에 있어서 꽤 비중 있는 큰 일인데 과감하고도 재미있는 동료라고 생각되었다.

     

    언제인가부터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서 편리하다는 이유로 들여놓았던 모든 것들을 이제 편리하다는 같은 이유로 다시 줄이기 시작하는 모습들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인지도 있는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들 몇몇이 미니멀한 생활을 직접 보여 주면서 그것에서 오는 편리함과 여유로움을 보여주니 점점 더 호응도가 높아졌다. 확실히 습관에서 오는 부분이 삶의 어느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작년 초에 나는 집을 이사했다. 한정된 공간을 여유로워 보이게 하고 싶었다. 나도 줄일 것은 버리고 줄여 나가면서 나의 공간을 다시 꾸몄다. 그러면서 낡은 가구나 제품들을 교환하기도 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구매할 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고민은 짧고 결정은 즉시 했다. 버리고 줄이기 위한 고민의 시간보다 채우고 바꾸는 결정이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금 이 순간도 내 공간을 둘러본다. 뭔가 더 여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나 둘러보지만, 줄이거나 버릴만한 것을 찾지 못한다. 다 필요한 것 같다. 나도 결국은 버리기보다 채우기에 익숙한 인간인가 보다.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처음 입사를 하고 직급이 낮았을 때일수록 회사의 아이템(Item)에 따른 샘플(Sample) 관리를 직접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샘플들은 이제 정리를 해서 회사의 공간 확보를 하라고 리더분들은 말씀하시지만 오래된 샘플을 정리한 뒤면 반드시 그 아이템의 과거 샘플을 찾게 되는 일이 항상 발생했다. 어린 마음에 샘플 정리하는 것이 가장 결단력이 필요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은 화상도 좋은 사진 등 여러 가지 다른 대체 방법이 있고 계속 개발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의 본사부터 시작하여 모든 나라 지사들의 조직이 바뀌고 시대에 따라 회사의 방향과 그 시대상의 트렌드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설정되었다. 어느 순간 리더십의 역량이 중요시되더니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구조 개편이 시작되기도 했다. 조직 문화의 중요성, 팀 원 개개인들의 역량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조직 속에서 끊임없는 직무 평가 (Job Assessment)가 이루어졌다. 모든 기업은 과거에 좋은 실적을 거두었고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경쟁적이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지금처럼만 잘하면 오히려 도태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것은 맞는 말이다. 기업은 항상 미래를 내다보고 훨씬 더 많이 도약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리더의 위치에 오르자 회사 조직으로부터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져 느껴졌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중에 중요한 일은 끊임없는 직무 평가를 통하여 꼭 해야 하고 반드시 집중해야 하는 부분과 과감히 줄이고 버려야 하는 부분을 의논하고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업무에서도 버려야 하는 부분이 가장 결정하기 힘들었다. 업무에서 버려야 하는 부분은 내가 실제로 했던 일들을 이제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도 그것을 결정하기가 쉽거나 마음 편하지 않았다. 이상한 심리였다. 막상 이제부터 안 해도 된다고 하면, 그 부분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걱정했다. 그리고 여태 해왔던 그 일이 마치 중요한 가치가 아닌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100이면 100을 다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즉 물리적으로 100을 할 수 없다면 항상 그 시기에 맞추어 가장 능률적인 방법을 찾아가야 했다. 과감하게 강중하 정도를 결정하고, 똑같은 한정된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한다면 그 무게 순위에 의한 목표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직무 평가를 계속해서 해 나가면서 우선순위에 따라 버릴 것을 결정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고통이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것은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고 그 존재가 줄거나 없어져도 조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으며 심지어 그 여유의 부분에 들어간 업무의 성과가 효율적이라면 그것은 분명 보람된 일이었다.  

     

    25여 년 간 다니던 글로벌 회사를 그만둔 후에, 잠시 몇 개월 다닌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회장님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다. 내가 글로벌 회사를 다니는 동안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한 이론적인 부분들을 그대로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매일매일 버릴 것을 버리고 집중해야 할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한 후, 그 부분에 신경 쓰기를 원했다. 지당한 지시였다. 문제는 그럴 준비가 조직도 그 안의 팀원들도 아직 안 되어있었는데, 그 준비를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 속에서 좌절하고 그만두었다.

     

    세상이 나를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일조하지 못하는 심정도 참담한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채우는 일에 좀 더 익숙한 우리가 생각의 전환으로 버리기에 더 신경 쓰고 집중을 한다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 Note : 채워나가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한 시기가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하나하나 쌓여가는 것들이 마치 보상을 받은 것 같은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쌓여 있지만 존재와 가치가 잊히는 것들을 선별하고 결정해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일 것이다.

     

    고민 끝에 버리고 나면 또다시 찾는 공간과 여유의 기쁨에 감동한다. 그것은 채웠던 모든 것들이 결코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중요했던 그 가치들은 그 당시에는 최고였고 좋은 추억이었다. 가치가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와 필요에 의하여. 새로운 시각에서의 버리는 것이 또 다른 가치와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제 어떻게 가치가 이동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는 어떨까? 계속 채우기만 하는 것이 가능할까? 삶의 시기마다 자주 만나게 되고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좋은 관계를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하기도 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서 잊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분명히 생겨난다.

    내가 혹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워도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것들은 항상 존재하듯이 아마도 인간 관계도 유사하지 않을까?

     

    근간을 중심축으로 채우기와 비우기를 균형 있게 조절해 나가는 삶을 사시길, 나 자신과 모든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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