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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기부 문화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6. 19. 19:41
5년 전쯤의 일이었다. 어느 날 신문을 뒤적이다가 '고액 펀드레이저'라고 스스로의 직함을 소개하는 여성분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모금 협회의 임원분이었다.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고 그 긍정적 영향력을 지향하시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고액 펀드레이저'라는 직함은 딱히 자신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 고민한 끝에 스스로 만들었다고 했다. 관심 가는 분야 중에 하나여서 눈여겨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라고 하는 1억 원 이상의 고액기부자 클럽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억 단위의 고액을 기부하기 때문에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연말이 되면 고사리 같은 손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따스한 마음으로 어렵고 소외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좋은 뜻을 모으고 있었다. 금액에 상관없이 그 마음만으로도 아직 세상은 따스하고 살만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돈 많은 부자들이 모두 기부 문화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도 알뜰히 모은 사람이나 아주 돈 많은 사람이나 선뜻 억 단위의 돈을 기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동일해 보였다. 기부는 평범한 보통 일은 절대로 아닌 것이었다. 아너 소사이어티라는 클럽의 이름이 잘 지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빠듯한 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분들이 알뜰히 모은 돈은 그 과정에서 본인이 절실히 느꼈던 돈의 소중함을 알기에 달리 사용되는 것보다 훌륭한 취지에서 남을 돕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었다. 노력과 함께 운도 좋아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재력가들 또한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선뜻 기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내가 25여 년 간 몸 담아 일했던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는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였다. 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에 기여하고 환원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회사 이익의 일정 부분을 언제나 자동적으로 기부하였고, 회사가 세운 사회 복지 병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 내 천재지변, 자연재해나 사건 사고들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기부했고, 지사가 있는 다른 나라와 직원들에게도 같은 기업 정신, 활동과 복지 혜택을 나누고 전파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직원들 모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보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기업들도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자랑스러워진다.
미국의 기부 문화를 예전의 직장 생활과 요즘의 언론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업의 상속세와 연관되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적 부호들이 많이 존재하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열 손가락 안에 뽑히는 부호들은 거의 저마다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적 활동과 함께 기부 활동을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상속세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은 얼마 전 기업 총수의 사망으로 인하여 기하학적인 상속세를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의적인 문화와 타의적인 문화 사이에서 뭔가 더 고귀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존엄성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 서두에 거론했던 고액 펀드레이저의 이야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예전부터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느 곳을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해야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속적인 투명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조직과 체계를 이루어 나가기 시작하여 고액 펀드레이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그 이전과 이후에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기부 조직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크고 작은 조직들이 처음 본래의 취지대로 선의를 유지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부하는 사람의 마음은 본인 스스로가 설립한 재단이 아니고는 기부한 돈이 정말 본인이 바라는 뜻과 취지대로 사용되고 있는지가 최고의 관심사일 것 같다. 본인의 좋은 뜻이 행여 사기 조직이나 뜻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부 조직의 최고로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투명성이 담보된 믿음직한 조직이 있다면 당연히 기부자들은 반길 것이다. 그 기반 위에 기부하는 마음이 점차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레이저(Raiser)라는 단어를 붙인 것 같았다. 모든 기부자들의 사연,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기부 금액의 고하를 막론하고 기부를 결심한 모든 사람들의 사연을 귀 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부자들이 그 기부금을 모으기까지 고생한 노력, 목표, 꿈같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래서 만들어진 기부라는 고귀한 마음을 진심을 다해 감사히 받아야 한다. 입 밖으로 말하는 그 순간까지도 기부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을 하면서 스스로 다짐과 결심을 하기도 하고, 더 큰 마음으로 자라난다고 했다. 그러니 기부는 누가 부탁이나 독려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사실 그래서도 안되고, 결국은 기부자 스스로의 마음에서 나고 키우고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부자는 기부를 통하여 인생을 뒤돌아 보고 알고 깨닫게 되고 또다시 살아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부를 했던 사람은 계속하게 되고 사후의 계획도 미리 한다는 점이 이해되었다.
몇 년 전 불투명한 사회적 조직들로 국민감정을 해친 사례들이 있었다. 국민을 대표하라고 역할을 부여한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심히 국민 정서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오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모든 조직은 체계적이고 완벽하게 투명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몇몇의 나쁜 사례들로 인해 선의로 열심히 활동하는 좋은 기관과 조직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고 기부에 대한 인식 자체를 낮추지 않았길 바랬다.
우리나라도 이제 정착해 나가는 좋은 기부 문화를 잘 키워나가길 바란다. 점차 보편적인 문화로 자라날 수 있길 바란다.
더 나아가 기업들이 원대한 꿈을 갖고 더 착한 기업이 되고 좋은 기부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정부와 세제 관련 기관들도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벤치마킹(Benchmarking) 하고 배우고 적용하길 바란다. 타의에 의한 것이 어떻게 자의에 의한 것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겠는가.
* Note : 기부라는 단어 앞에 부끄러웠다. 나 자신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당장의 재력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여러 가지 재능 기부의 형식도 자라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기부 문화를 만드는 것을 열렬히 응원하고 또 동참하고 싶다. 조직의 투명성이 생명이라는 그 문화, 기부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들어주고 이해하는 그 마음의 문화, 너무나도 가치 있고 부러운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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