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선생님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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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에 남는 선생님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10. 6. 22:26

    해마다 5월이 되면 스승의 날이 오고 그즈음에서야 인생의 선생님을 기억에 다시 소환하게 된다. 스승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없었더라면 스승의 의미와 은혜를 생각할 기회와 마음조차 가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한 일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의 기사를 보았다. 한국예술 종합학교의 신임 총장에 관한 글이었고,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분의 원칙 중에 하나가 학부모의 소위 '치맛바람'은 절대 사절이라는 대목이었다.

     

    신임 총장은 예전부터 그야말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길러낸 분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교육열이 과하게 높아졌고, 그 뒤에는 학부모들의 뒷바라지를 넘어선 과열과 잘못된 교육 열풍으로 치닫고 있었다. 학부모의 치맛바람을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세계적으로 소개되기도 해왔다. 그 와중에 세계적인 음악가들로 성장시킨 총장의 교육 방침은 확고했고 그것의 효과를 증빙하듯 결과로 나타났다. 그분의 교육을 직접 받아보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기사 내용을 참고할 뿐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본받고 가르침을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히 인생의 스승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을 굳이 떠올려 이상적인 스승의 상을 생각해 보았다.

     

    대학 입시를 생각한다면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학업만 강조하거나 요즘은 어린 시절부터의 학습 습관을 강조할 것이다. 나의 세대만 해도 고등학교 1학년을 어리바리 마치고 나면 2학년부터 슬슬 정신을 차리고 3학년은 그야말로 낮밤을 가리지 않는 수험생 시기로 들어갔다. 그중에 2학년 시기의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회과 선생님으로 이름이 특이한 남자 선생님이었다. 키가 크고 대머리인 신체 특징으로 인해 교무실에서도 눈에 띄었다. 2학년 학기 초, 새로운 반에 배정되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선생님이 우리 담임 선생님으로 들어오셔서 특이한 이름을 소개하며 우리의 긴장을 풀어 주셨다. 

     

    우리에게 항상 학생 신분으로서 당연히 학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으나 바른 인성의 가르침 또한 잊지 않으셨다. 세대 차이가 있는 나이였지만 학생들의 답답한 마음 또한 이해하시려 노력하시고 가끔 아재 개그식의 유머로 소통하시려는 모습을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좋아했다. 그 덕분인지 우리 반은 스스로 공부하면서 학과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그 예민한 시기에도 별 다른 사건사고 없이 비교적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우리 반을 그저 긍정적 시각으로 보셨던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개인의 자율적 학습과 취향을 존중하는 담임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좋았고 나름 좋은 성적을 유지했었다.

     

    이후 고 3이 되어서는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고 담임 선생님의 방식과도 충돌을 빚었다. 어쨌든 여러 사연 끝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바로 재수를 결정했고 그렇게 우리 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재수 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름 모범적인 재수 생활 끝에 다시 대학 입시철을 맞이했고 대학 입학 원서 접수를 위하여 고등학교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나는 원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하여 고 3 때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뵌 이후 바로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그날 마침 안 계셔서 만나지 못했었다.

     

    며칠 후,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뜻밖에도 나의 2학년 담임 선생님 모습을 현관에서 뵐 수 있었다. 마침 선생님 댁이 그 근처인데, 당시 유명한 그 학원의 우리 학교 졸업생들도 만나 보고, 얼마 전 내가 다녀간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다고 했다. 겸사겸사 학원에 들러 보셨다고 다정하면서도 의도된 그러나 부담되지 않도록 내게 안부 인사와 함께, 다가오는 대입 시험에 파이팅을 건네셨다. 마음으로 감동하면서 하마터면 눈물이 찔끔 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던 기억이 있다. 다시 한번 가고 싶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스산할 때 따스한 선생님의 방문이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것이었다. 지식에 대한 가르침보다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으로 지금도 내 마음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학생이 되었다. 주로 1~2학년에는 전공과목 외에도 교양 과목으로 불리는 과목을 신청하고 학점을 받아야 했다. 그중에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국악의 이해'라는 과목을 신청하게 되었다. 뜻밖에 음악 대학의 교양 과목을 신청한 후,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첫 수업 시간을 맞이했다. 국악이라는 보통 학생들에게는 왠지 어려운 과목을 의식하신 듯 첫 수업에서 교수님은 유머 섞인 수업 개요를 소개하셨다. 나직하고도 정감 있는 목소리와 어조로 국악에 대한 학업 소개와 수업 내용으로 인해 그야말로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비록 한 학기의 수업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수업 시간을 어느새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교수님은 우리나라 국악계의 훌륭한 인물이셨고 그 후로도 수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이미 몇 년 전 그분은 세상을 떠나셨는데 우리나라 국악계의 큰 별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으로 가득했었다. 아직도 감히 그분의 업적에 범접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국악이라는 세계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수업의 평범한 학과 선생님으로 눈앞에 선하고 그리운 어른으로 남아있다.

     

    다른 교양 과목이 있었다. '성(Gender)의 사회학'이라는 수업이었다. 역시 그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셨다. 이후 유명 가수의 어머니로 3형제를 자율적으로 교육한 이상적인 부모상으로 정평이 난 인물로도 소개되었다. 내가 20대 초반 '성(Gender and Sex)'이란 민감하고도 쉽지 않은 부분을 그 시기의 시대상에 맞추어 흥미롭게 풀어나가시는 모습과 열정에 반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기억나는 마음속 선생님들의 수업 내용은 정작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세월의 흐름과 사회 문화의 변화에 따라 학과 내용도 많이 변해가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들의 인성과 열정이었다.

     

    그 당시는 대부분 선생님 한 분당 상대적으로 많은 학생수의 학급과 교과 과목이었다. 일대일의 가까운 교류가 거의 힘겨웠으나 학생들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비슷했다.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한 것이었다. 진정한 마음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분이 담임 선생님이 되길 소원했고, 그 교양 과목의 인기도가 말해주듯이 진심의 가르침은 그렇게 물 흐르듯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문득 그런 인생의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내가 우러러봤던 어른의 이상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우러러본 부분은 그분들의 거대한 업적 때문이 아니었다. 학부모의 치맛바람에 치이지 않았던 분도 그랬기에 훌륭한 제자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 Note :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알려줄 수도 있고 지혜로운 길로 인도해 줄 수도 있다. 

     

    요즘 '멘토(Mentor)'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쩌면 스승, 선생님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광범위한 단어 같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가르침을 주는 분들은 항상 스스로의 일에 성실하고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따르고 본받고 싶은 인성과 감성을 지니고 계셨다. 그래서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따르고 싶었다. 자연스럽고 저절로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감사하고 복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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