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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오류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11. 3. 17:50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절친 그룹이 있다. 그중에 한 명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직업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잘하는 재주가 있었다. 대학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서 대화하는 중간에 항상 재미난 소재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양구에서 본인은 거의 방목된 자유인처럼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숲 속을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동물과 맞닥뜨려 눈이 마주쳤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생하게 말해주었다. 그 당시 우리가 상상하는 강원도의 양구에서는 그 어떤 짐승이 우연히 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이후, 단체 미팅을 할 때면 나는 몇 번 내 친구 자랑을 하면서 아마 멧돼지나 작은 곰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 모두 흥미롭게 웃곤 했다.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아직도 나는 그 절친 그룹과 만나면 예전의 대학 시절로 돌아가 수많은 우리의 추억들을 공유하고 되뇌며 웃고 떠든다. 양구의 동물 출현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친구는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절대 돼지나 곰 급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한껏 과장시킨 것이라고 하며 기껏해야 오리 정도 아니겠냐고 해서 다시 웃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강원도에서의 내 친구 어린 시절 대한 경외심이었을까. 아주 맛깔나게 이야기했던 친구의 추억에 내가 과장을 더 보탰기 때문일까. 어쨌든 기억의 오류 중에 하나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엮였던 오랜 시간과 엄청난 경험들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흑역사도 있었고, 소중히 간직하게 되는 경험과 추억들도 있었다.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온갖 사건 사고들 중에는 열심히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고, 나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실력이 미흡하여 생긴 일, 리더의 자리에 오른 후에는 리더로서의 역량이 부족하여 생긴 일도 있었다. 그 시기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고 넘기는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은 오히려 잊고 싶어도 뇌리에 진하게 남아서 조금은 괴롭기까지 했다.
물론 보람을 느낀 일도 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간직된 부분들도 있었다. 나와 여러 동료들이 합심하여 열심히 일한 결과로 여러 업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직장 생활이 아니었다면 가보지 못했을 나라로 출장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시는 한국의 산업 일꾼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해 보였다.
오랜 세월 국내외의 여기저기서 만나고 일했던 사람들이 매우 많았던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병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이상한 증세도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인종 중에는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 인상착의가 닮은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었다. 간혹 처음 만나는 사람도 어디서 만났던 사람 같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물며 TV 뉴스나 인터뷰 상황에서 일반 사람들이 나올 경우에도 내가 알고 만났던 적이 있던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로 내가 사회생활에서 알았던 사람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더욱 긴가민가 의구심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남들은 나와 관련하여 확실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장소와 시기와 사건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결정적인 인물이나 대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반면 세심하고 소소한 것까지 기억을 잘하는 편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 친구, 친지 등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일 들 또는 그들로부터 한 번 들은 내용은 작은 내용까지 기억을 잘해서 오히려 그들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하물며 내가 기억하는 내용을 정작 그들은 내게 이야기한 것조차 잊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그들로부터 듣지 않았으면 어찌 알리오. 언제 어디서 왜 이야기했었다고 까지 기억해 내면 그들도 항복하곤 했다. 과연 내 기억의 영역은 어떻게 구분되어 있을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관심도의 차이일까. 나의 관심 안에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죽어라 모든 것이 기억이 나고, 잠시 방심하거나 관심 밖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그러기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기억에 없기도 하다. 술에 취했던 순간도 아닌데. 가끔 그런 일이 발견되면 마치 그 부분은 통째로 내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저장이 안 된 것 같이 느껴진다.
어쩔 수없이 세월은 흐르고 나도 계속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기억력에 관하여 집착하게 된다. 노화 현상이 여러 곳에서 생기는데 기억력 또한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 또한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로 포함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기억력을 증진시키거나 적어도 유지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추천되고 있다. 외국어와 새로운 학문 같은 끊임없이 뇌를 자극시킬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간단하게라도 하루의 일과를 일기처럼 정리하는 습관이나 뇌를 이용하는 간단한 산수나 게임 같은 놀이도 뇌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해되는 방법들이다.
오랜 세월 배우고 익혀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언어 부분이다. 영어 단어는 외우고 또 외워도 돌아서면 잘 잊어버린다. 한국사람인데도 대화할 때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기도 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여전히 헷갈린다. 책을 읽을 때도 중간에 끊길 때마다 다시 되돌아 읽거나 한참 생각해 봐야 한다. 신문 기사 내용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읽다가 중간에 딴생각이 들어서 길을 잃고 다시 읽어나가야 한다.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경우, 내가 얼마나 그 순간 집중을 하고 진중하게 생각하며 임했는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간혹 너무 긴장하거나 떨리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순간적으로 블랙아웃(Blackout)으로 뇌 속이 일시 정전 상태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경우 왜 그랬는지 이유와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도 그 순간의 느낌은 고통스럽게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쨌든 인간이기에 기억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실 제일 기본적이면서도 좋은 방법은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잠 속에 깊이 빠져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뇌 속에 차곡차곡 저장한다고 했다. 마치 서류를 구분해서 주제별로 폴더 파일(Folder File)에 저장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오랜 시간 깨어있어도 좋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적정 수면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억의 오류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그렇고 진심이다.
* Note : 나의 기억 능력은 간혹 극과 극을 달린다. 남들이 기억 못 하는 매우 사소한 일까지 기억하기도 하고, 남들은 기억하는 것을 나만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종종 나의 뇌 용량과 기억을 구분하는 능력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기억의 오류를 줄여 나가고 싶다. 내가 직접 관리가 가능하다면 자잘한 내용을 과감히 휴지통에 버리고, 중요한 것은 영원히 유지되는 폴더 파일에 간직하고 싶다. 버릴 것을 잘 버려야 뇌의 용량도 적절히 유지되면서 또 다른 중요한 것을 채워서 유지시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 유지시키는 방법부터 노력해 볼 수밖에 없다. 일정 시간 숙면을 취하도록 그리고 뇌 사용 시간만큼은 집중하고, 뇌 운동을 꾸준히 해보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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