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수술, 1편 병원과 의료진.. 모두와의 궁합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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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궁 수술, 1편 병원과 의료진.. 모두와의 궁합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9. 23. 23:45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고장의 신호를 나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인간의 신체도 개인별로 차이가 있고 각기 강한 곳과 취약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자궁이라는 기관이었다. 족히 10년도 넘었다. 건강검진 시 자궁에 혹이 있다는 것을 들었지만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었고,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지 않는 나한테는 급한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아 계속 검진만 하고 바쁜 직장 생활을 이어나갔다. 드디어 반백살이 넘어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올해 2020년 1월에 결국은 수술을 하게 되었다.

     

    건강검진을 하면서 쌓아온 기록들과 그간 다녔던 산부인과의 진료/수술 의뢰서를 바탕으로 2019년 작년 중반부터 병원 예약에 들어갔다. 몇 군데 후보군을 두고 그 시기에 예약하면 언제 진료와 수술 일정이 가능한지 조사를 한 후에 최종적으로 종합병원 산부인과로 결정했다. 서울 수서역 가까이에 있는 종합병원이었다.

     

    내 집에서도 그리고 언니들과의 접근성도 좋고, 처음 가는 곳이 아니어서 이 병원의 운영 시스템 방식에 익숙했다. 우수하고 안정적인 의료진에 일반적인 평도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도 싱글로 혼자 살아가는 나로서는 가족들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물론 언니들 모두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 또한 언니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의 삶도 존중해야 했다. 마음으로 막내 동생의 수술과 입원이 안쓰러울 것이고 그 부분은 내가 뭐라 해도 사라질 수 없는 부분이니 어쩔 수 없더라도 내가 필요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줄여주고 싶었다. 마침 이 병원의 산부인과는 수술 당일의 정해진 시간외에는 보호자와 외부 간병인의 도움 없이 운영되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을 실행하고 있었다.   

     

    2019년 가을에 예약된 산부인과 의사님과의 첫 진료가 진행되었다. 그간의 모든 기록과 그 날 진행된 검사를 바탕으로 수술이 결정되었다. 이미 그간의 건강검진과 진료들로 예상하고 있었던 방식으로 이야기되었다. 나는 워낙 큰 병원이어서 예약 환자들이 많으니 나의 질문들을 미리 생각해 놓았었는데 일부는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와 상담 중에 이미 이야기하신 것도 있어서 몇 가지 추가 질문만 급히 하였다. 워낙 환자들로부터의 유사한 질문들이 많아서 그런지 내 질문의 요지와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답변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 주셨다. 듣는 동안 나의 표정을 읽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감지되면 바로 추가 설명이 이어져 이해가 되고 더불어 안심이 되었다. 의사소통의 방식이 나와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수술 일정과 그 외 세부 사안들을 위해서 상담진과 마주했다. 큰 종합 병원이다 보니 수술 시기는 올해 2020년 1월 중순으로 잡혔다. 아주 급한 상황은 아니었고 다른 가족 상황을 봐도 나쁘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는 내가 원한다고 백 프로 예약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입원 방식으로 예약을 해놓고 수술 일정 시기에 최대한 그렇게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며칠을 입원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년 초가 되고 수술 시일이 다가오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긴장과 걱정도 몰려왔다. 사전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해도 되는 몸 상태임을 확인받은 후, 입원 시기에 맞춰 연락이 왔다. 내가 원했던 입원 방식과 거의 부합되어서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2인실의 한 자리에 배정이 되었다. 수술 직후 몇 시간은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하지만 그 외에는 병원 시스템에 의한 간호간병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언니들 포함 가족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가능했으니 가족들의 도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1월 중순 수술 전 날, 입원을 했다. 다시 한번 모든 확인 절차를 마치고 수술에 대한 설명과 주의 사항을 교육받았다. 입원 수속에 함께 있었던 언니들이 돌아가고 나 혼자 병실에 남게 되었다. 2인실의 나머지 한쪽 자리에 배정된 환자도 가족들이 돌아간 후, 혼자가 되었다. 우리 2명은 처음에는 약간의 낯가림과 어색함이 있었으나 이어 대화가 오고 갔다. 비슷한 연령대, 생각과 대화의 화제가 잘 맞았다. 무엇보다도 다음 날 수술을 앞둔 운명의 두 여자는 서로의 감성을 나누는데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2명이 이제부터 함께 해야 하는 공유의 공간에 있어서 우리는 기본적인 상식, 매너와 예의가 잘 맞았다. 수술을 앞둔 예민한 상황에서 나 스스로가 싫으면 남도 싫을 것이라는 선에서 서로 최대한 예의 있게 행동했다. 서로의 상태를 살피기도 했다. 수술 전, 장을 비우기 위한 처치가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새벽까지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위치는 창가, 내 침대, 각 개인 침대를 가리기 위한 커튼들, 그녀의 침대 그리고 화장실이 있고 이어 출입하는 병실 문 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밤 사이에 나는 장으로부터 신호가 오면 가능한 조용히 그녀의 침대를 지나 화장실로 갔으나, 수술 전 내 팔에 꽂은 링거 주사 걸이를 끄는 소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잠시 잠깐씩 숙면을 취하는 듯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서로가 잠을 못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 긴장을 풀기 위한 스스럼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처음 만남에 낯가림이 심한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남녀로 따지면 소개팅한 후, 대여섯 번은 만났을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소위 '캐미(Chemistry)'가 맞는 사람이 2인실 입원 동기가 되어 다행이었다.

     

    나의 수술은 아침 9시 시작으로 8시 30분부터 준비가 시작되었다. 내 옆 입원 동기는 같은 날 오후 1시경이었고, 나와는 주치의가 다른 선생님이었다. 나는 전 날 전달받은 내용대로 준비를 하고 수술실로 향했고 그런 나를 향해 그녀는 파이팅을 해주었다. 링거 주사를 꽂은 채로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수술실이 있은 층으로 옮겨졌고, 이윽고 수술실이 모여있는 복도에서 대기하였다. 수술복 차림으로 머리부터 다리까지 두른 수술 참가 의료진이 나와서 나 임을 확인하고 간단히 수술 소개를 한 후, 수술실로 들어가 마취가 된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을 차리기 시작하였으나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의료진들이 나의 침대를 끄는 소리, 나의 보호자인 언니들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언니들이 가까이 와있고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나의 병실로 돌아가서 이동 침대에서 나의 입원 침대로 옮겨졌다. 아무 힘도 없는 나를 그들이 모두 알아서 했다. 의식이 생기고 느끼게 되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어쩔 줄 모르던 내 옆 입원 동기는 이제 수술을 위해 떠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처럼 그녀에게 괜찮다고 잘하라고 파이팅해주고 싶었으나 그것 역시 생각만 있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니들이 안타깝게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와 닿았다. 아마 내 얼굴에 온기와 핏기가 없었나 보다. 나는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또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말머리 말풍선만 계속 있을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입술이 말라옴과 목마름을 느꼈다. 겨우 입을 떼어 물을 좀 달라고 했다. 입원 준비물에 쓰여있는 대로 컵에 생수를 조금 넣고 위가 구부려지는 빨대를 꽂아서 적당한 위치로 나의 입에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다. 물을 입술에 좀 적시고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이내 조금씩 입이 트여서 작게나마 말이 나왔다.

     

    그 후로 2~3시간 동안 정신이 없었다. 언니들도 나의 요구 사항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주로 물을 달라, 손 발과 팔다리가 저리니 좀 주물러 달라, 발이 차고 시리니 양말과 함께 따뜻하게 해 달라 등을 요구했고, 그 외에도 의료진의 지시에 의하여 내가 마취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들지 않게 깨우기, 폐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크게 호흡하기 등 나를 돕기에 바빴다. 나의 보호자를 자청한 1번 3번 언니들은 그렇게 내 옆에서 바빴고, 영국에 사는 2번 언니는 나의 안부가 궁금하여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수술 후 회복까지 함께 한 언니들이 갔다. 그 사이 내 옆 침대 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다. 내가 그랬듯 정신이 없었다. 나의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나의 상태를 확인 후, 나의 수술은 계획대로 무사히 진행되었고 이제 잘 회복하면 된다고 하셨다. 간단명료한 대화를 주고받고 수고에 감사드렸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간호사님이 진짜 아플 때 진통제 약물 투입의 속도 조절을 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심하게 왔다. 더 강한 진통제를 직접 투입해 주었다. 강한 진통제의 부작용 중에 하나인 메스꺼움이 몰려왔다. 구토 증세가 와서 비상벨을 눌러야만 했고 또 다른 처방을 받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 줄 몰랐다. 자라면서 고통을 무식하게 참아서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고통에 무지 취약한 사람이었나 생각되었다.

     

    고통스러운 증상들이 차츰 잦아들고 이제 잠을 자야 하는데 이번엔 내 호흡이 문제가 되었다. 그 전 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 수술이 잘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고 다시 진통제를 맞았으니 이제는 잠을 자야 했다. 그런데 아직 나의 폐 호흡량이 일정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바르게 숨 쉬는 법으로 호흡을 하라고 하는데 너무 잠이 몰려와서 잠깐 잠에 빠져들면 호흡이 정상 이하로 내려가고 비상벨이 울렸다. 옆 환자에게도 민폐이고 간호사도 수시로 와야 해서 미안했다. 나는 잠을 자고 싶다고 호소하니 나의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를 해주었고, 그것이 불편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어 불편함을 못 느꼈다. 이른 아침이 되자 나의 상태를 보러 온 간호사는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호흡이 안정되었다고 하며 장치를 제거했고, 소변 흐름도 정상이어서 소변줄도 빼주었다. 통증도 잦아들었고 약간의 메스꺼움으로 인한 울렁증만 남아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낸 후, 입원 동기인 우리 두 명은 수술 후 처음으로 눈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다행이라며 감사함을 느꼈다. 처음으로 죽으로 된 식사를 하고, 이제 슬슬 걷기 운동을 하라고 했다. 산부인과 병동의 복도에 표시된 방향대로 링거 주사를 매단 기둥을 의지해서 걷는 운동을 해야 했다. 바로 전 날 전신마취로 수술을 한 내가 맞나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며 걸었다. 3번 언니가 오전 면회 시간에 맞추어 찾아왔다. 나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영국의 2번 언니는 눈으로 확인 후 안심했고 1번 언니는 다시 살아났다며 농담했다.

     

    그렇게 걷기 운동을 하며 병동을 돌다 보면 간호사들이 모여있는 중앙 데스크가 나오는데 그 지점을 지날 때면 항상 향기로운 커피콩 볶는 냄새가 나고 나는 그 향에 취해서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다음 날은 1번 언니가 오후 면회 시간에 맞춰 온다며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라고 했다. 나는 이제 소화만 잘되면 무엇이든 허락되었는데 약 복용 중이니 카페인 있는 커피와 술은 물론 안되었다. 커피 향이 너무 그리워 디카페인 커피를 부탁했다. 1번 언니는 커피와 함께 디저트 케이크를 원하냐고 했다. 메스꺼움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케이크 크림을 떠올리니 속이 울렁거리는 듯했다. 노(No) 노노...

     

    잠은 잤으나 계속 식욕이 없었다. 1번 언니가 다녀가고 밤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배가 부글거리며 아팠다. 참다가 간호사에게 다가가서 내가 원래 위장이 약한데 배가 너무 아프니 뭔가 탈이 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나는 긴 세월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로 만성 위염이 있었다. 간호사는 나의 증세를 듣더나 단호하고 확신 있게 가스 배출이 안돼서 그렇다며 열심히 걷기 운동을 더 하라고 했다. 배가 아파 서러워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별 다른 특이 증상이 없으면 퇴원이 예정된 날이 왔다. 아직도 좀 아픈 배를 부여잡고 걷기 운동을 했다. 배가 다시 마구 뒤틀리듯 아프다가 어느 순간 가스가 배출되었다. 연이어 몇 번 더. 배가 가라앉고 이내 고통이 사라졌다. 아침 식사를 비로소 편히 마주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전 날 내가 엄살을 부렸던 간호사는 당직이 바뀌어 퇴근한 후였다. 가속도가 붙어 걷기 운동을 힘차게 했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마주쳤다. 나의 걷는 모습과 상태를 보고 빠른 회복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퇴원 수속을 하고 약 처방을 받고 난 후, 1번 3번 언니들이 와서 나를 데리고 내 집으로 향했다. 내 집에 돌아오니 비로소 살아나서 다시 삶으로 복귀한 듯했다.

     

    * Note : 살면서 나는 항상 세상 모든 것들과의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과의 만남은 인연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남녀 간의 만남뿐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는 '궁합'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매 형제들 간에도 궁합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관계에도 궁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MBTI라는 테스트가 유행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제대로 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그 테스트가 유행하는 것도 모든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고 그러기에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간, 개개인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의 구직/구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그만큼 조화로운 관계가 중시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나는 궁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살다 보니 수술을 하게 되었다. 병원을 알아보고 의료진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유명한 병원과 의료진이더라도 누구에게나 완벽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발전을 위하여 병원도 의료진도 평가 조사를 통한 개선에 노력을 하는 것에 감사하지만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그것도 일종의 궁합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익숙한 병원을 찾아가고 의사소통이 잘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그 외 시스템과 의료진 모두가 나와 잘 맞았다. 그런 나, 환자로서의 믿음과 신뢰가 안정감을 갖게 하고 수술과 입원 과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와 잘 맞는 궁합을 찾아서 최선의 방법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 좋은 궁합을 갖게 된다는 것은 개인별로 다르고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을 것이란 법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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