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교육 연수, 1편 인도 방갈로를 알게 되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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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십 교육 연수, 1편 인도 방갈로를 알게 되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9. 16. 23:36

    내가 다니던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이고 실제로 많은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부분은 바로 리더십과 교육(Leadership Skill & Training)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리더십 스킬의 역량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서서히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리더십 평가(Leadership Assessment)와 지속적인 교육이 실제로 행하여지기 시작했다. 본사는 기존 회사 내부의 해당 부서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리더십 교육 체계를 확립하고 실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한국 지사의 지점장님께서는 우리 회사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프로그램들을 합하여 보면 결국 남부럽지 않은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수준이라고 평가하였다. 나는 그 당시에는 과중한 업무에 바빠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왜 이리 교육이 많은지 슬슬 짜증이 나기도 했으나, 뒤돌아보니 지점장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해주었던 리더십 교육들을 나중에 뒤돌아 보니 리더로서의 자질을 위한 영양가 있는 것들이 많았다.

     

    2010년대가 되자 리더의 한 사람으로서 일을 하던 나에게 여러 가지 도전 과제들이 생겼다. 그중에는 심화된 리더십 교육들이 포함되었는데 잊을 수 없었던 경험도 생겨났다. 2010년 대 초반, 나는 본사에서 계획하였던 리더십 교육 중에 인도의 방갈로라는 곳에서 개최되는 리더십 연수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인도의 방갈로 지역은 워낙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본사 혹은 지사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우리 회사는 IT 기업은 아니었지만 워낙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IT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방갈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약 1주일간 리더십 교육 연수가 개최되었고, 많은 현지의 IT 담당 리더들과 함께 미국 본사, 그리고 각 나라의 지사 리더들이 몇몇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해 6월에 한국 지사에서 선발되어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나의 리더십에 문제가 많아서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인지 뭔지 모를 의문을 품고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처음으로 방갈로라는 지역에 도착하였다. 확실한 것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그 프로그램은 워낙 강도가 높아서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 단계인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전에 나는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 하루 업무 일정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뉴델리 지사에서 만난 직원이 인도는 워낙 지역이 넓고 인구도 세계에서 2위로, 중국 다음으로 많은 나라이니 지역별로 특색이 아주 다르다고 했다. 인도 사람들이 직접 하는 말에 의하면 수도가 위치한 북쪽 지역은 성격도 그 지역 기후처럼 강하고 빠르고 센 방면, 방갈로가 위치한 남쪽으로 갈수록 기후도 온화하고 사람들 성향 역시 비교적 온순하고 여유롭다고 하였다. 도착한 방갈로는 들은 대로 기온이 온화했다. 인도의 6월 중순 날씨가 매우 더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아침저녁으로는 기분 좋을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낮에는 다소 습하고 더웠으나 어차피 하루 종일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방갈로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늦은 밤, 거의 일정이 시작되는 월요일의 새벽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상태로 호텔 로비에 예정된 시각에 나가서, 한국 지사로부터 홀로 떠난 나는 긴장감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름만 알고 전화를 통해 몇 번의 회의만 한 적이 있었던 인도네시아 직원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첫 만남이지만 그냥 우리가 서로 일행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 호텔 로비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차량을 타고 우리 회사 방갈로 지사 건물로 향하였다. 호텔에서 방갈로 지사 건물까지는 교통 상황에 따라 약 10~15분 거리였는데 그 앞으로의 1주일가량 우리 일행의 교통수단이 되어 주었다. 방갈로 시내 중심부는 정말 세계의 IT 기업들의 중심지 같아 보였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수한 IT기업들 이름의 건물들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구경거리였다. 이윽고 우리 지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1층의 어느 대회의실로 가니 앞으로 1주일 동안 교육 과정을 함께 할 모든 인원들이 집결해 있었다. 인도 방갈로에서 개최되는 연수 프로그램이다 보니 인도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온 직원들이 월등이 많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10명가량이 미국 본사와 그 밖의 해외 지사에서 날아온 몇몇 직원들이었다.

     

    도착한 우리 회사 건물의 규모에 일단 놀랐다. 우리 회사 모든 시스템을 관장하는 IT업무 시설 투자와 인원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도착하여 눈으로 확인한 규모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에 앞서 방갈로라는 도시 자체가 이전에 방문한 수도인 뉴델리보다도 인프라 확충이나 개발 정도가 높아 보여서 매우 놀랐다. 워낙 IT인재들이 방갈로 지역에 몰려 있다고 하지만 그 규모를 상상하지 못했었다. 도시 전체에 세계적인 IT기업들이 몰려있다 보니 인재 영입도 경쟁적이라고 했다. 처음 인사하는 모든 방갈로 직원들은 거의 모두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유학파들이었고, 기본이 학사에 이어 석사이고 또 박사학위까지 있는 직원들도 많았다. 워낙 업계들 간에 인적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방갈로의 기업들은 아침이나 점심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의 복리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취업률도 높고 기후도 온화한 방갈로는 인도에서도 삶의 질이 높은 남부 도시인 것을 알게 되었다. 

     

    1일 차는 앞으로의 교육 일정과 방식이 설명되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과 참석한 모든 교육 참가 직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 해에 리더십 교육에 참가한 인원은 60명이었다. 그 인원은 다시 30명씩 2그룹으로 나뉘었다. 30명은 나보다 더 지위가 높은 선배 리더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30명은 나와 비슷한 지위의 리더들로 구성이 되었다. 우리 그룹은 말 그대로 앞으로 승진하면서 더 좋은 리더가 되고자 교육을 받는 그룹으로, 같이 교육을 받고 다시 소규모 그룹에서 서로 의논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여러 방식의 역할극인 롤플레이 (Role Play)를 통하여 리더십 평가를 받는다.  선배 그룹은 우리 그룹과의 롤플레이를 통하여 그들의 시각에서 우리를 평가하는 코칭(Coaching)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한 교육을 따로 받는다. 즉, 그들은 이미 우리들의 경험이 있었던 시절을 통하여 우리를 코칭하지만, 그들의 코칭 방식을 우리를 통해 다시 평가받는 것이었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코칭을 받는 과정, 그리고 현명한 코칭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순환의 과정, 이것은 인간은 죽기 전까지 누구에게서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나의 기본적인 생각과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매일 '1일 리더'가 각 개인별로 배정된다고 했다. 1일 리더가 누구인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각 개인에게 하루 동안의 교육이 어떠했는지 듣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또한 교육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참석자의 의견도 듣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 내내 각 개인에게 배정된 일종의 담임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하는 '개인 어드바이저(Advisor)'도 있었다. 1주일간 모두에게 낯선 환경인 그곳에서 무엇이든 질문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개인 어드바이저에게 부탁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 앞으로 며칠간 심도 있고 스트레스 최고의 교육 과정을 함께 할 60명 모두 각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도의 각 지역에서 모여든 리더들은 각기 소속 부서와 이름 외에 취미 등 한두 가지 정도 자신을 표현할만한 이야기를 했는데 거의 다 빠르게 말하고 비슷비슷한 것처럼 느껴져서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남자들이 많았고 얼굴 구분도 못할 정도였는데 주로 인도식 특유의 이름으로 길고 발음까지 어려워서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호텔에 함께 머무르는 다른 나라 지사로부터 온 일행은 그나마 기억하기 용이했다. 나는 뻔한 자기소개가 싫어서 나라와 해당부서와 내 이름 후, 간단하고 위트 있게 소개를 하니 다행히 모두 즐겁게 웃으며 반응도 좋고 첫 만남을 반가워해 주었다. 더군다나 나는 기억되기 비교적 쉬운 영어 이름을 갖고 있고, 인도 아닌 아시아계의 여자로 사실 기억되기 쉬었다. 그런 이유로 모든 소개가 끝난 중간 자유시간이 되자 나의 개인 어드바이저는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해 주었다.

     

    다음으로는 각 요일별로 어떤 식의 교육이 구성되는지 소개를 해주었고, 이내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그 모든 교육을 관장하는 최고 책임 리더는 시작 말에서, 일정 내내 질문도 많이 하고 의논도 많이 하면서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장소에 가장 많은 인도 직원들과 우리 해외 지사 일행 중에 중국 상하이와 센젠 등지로부터 온 직원들을 보면서 떠올렸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 사람들은 워낙 자신들의 인구가 많으니 생존하기 위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거의 본능적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목소리가 커졌고 거의 남이 보면 거만하다고 오해할 정도로 의견 제시가  강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일 년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리더들의 워크숍에서도 중국과 인도 리더들이 항상 목소리가 크고 말도 많았다. 비하할 의도는 아니지만 거의 '아무 말 대잔치' 수준으로 별것도 아닌 것을 화제로 이야기하여, 가끔 한국 리더들끼리 쓸데없이 회의가 길어진다며 뒤에서 험담을 하기도 했었다. 반면 한국 민족성은 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개인별로 차이가 존중이 되어야 하지만 대중 앞에서는 다소 내성적이고 필요 이상으로 겸손하거나 의견 피력에 소극적이다. 나 또한 대중 앞에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것이 편한 성격은 아니어서 그 또한 부담이었다.

     

    다음은 언어였다. 회사 내에서 공용 언어인 영어는 본사가 위치한 미국이 아니라면 대부분에겐 외국어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 영어는 거의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들은 영어에 아주 능숙했지만 지역에 따라 발음과 엑센트가 달랐다. 특히 나는 인도식 발음에 약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앞으로 일정 내내 나는 의사소통과 전달만으로도 온갖 촉각을 세워야 했다.

     

    그렇게 앞으로의 교육에 관한 중요한 내용과 설명들이 담겼던 첫날을 보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 해외파 일행은 각기 방으로 흩어져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식사부터 저녁 식사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군대의 신입병들이 모인 것처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할 때는 그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긴장했고,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모두 코가 길게 빠져서 자신에 대한 넋두리를 나누었다. 사실 교육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일 실행하는 업무가 아니니 좀 더 마음 편하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예민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리더십을 돌아보고 교육을 통하여 좀 더 발전된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나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하루의 교육을 마치고 나면 마치 영혼까지 다 탈탈 털린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바보 같고 능력 없이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간의 업무를 실행하던 자신 있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마냥 자신 없고 판단력 없는 어리석은 나로만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며칠 그런 감정이 반복되자, 이 교육 연수를 하는 회사의 취지까지 의심이 갔다. 이런 교육을 잘 헤쳐나가고 이수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포기하고 그만두라는 의도일까 하고 회의적인 고민도 했다.

     

    일주일간의 일정 중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월요일 하루를 소비하는 의미를 그 당시에는 잘 몰랐다. 특히 자기소개는 의미가 작다고도 여겼다. 우리가 서로 언제 또 만날 사이라고 (사실 그 당시의 IT 부서는 아주 가끔 시스템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메일로 주고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 업무를 하면서 연결된 부분도 거의 없었다) 이렇게 일일이 소개를 시키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계획이 있었나 보다.

     

    각자의 호텔방으로 흩어졌다. 인도 사람들은 체구가 대체로 큰 걸까? 호텔방의 시설들이 모두 큼직했다. 특히 욕실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 아시아계의 평균 신장이라고 믿었던 나에겐 다소 높고 컸다. 실내 장식은 나름 인도의 남부 지방 특유의 색채를 담고 있는 듯했다. 경유지를 통한 긴 비행과 첫 만남의 긴장감으로 심신이 피곤했으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긴장감으로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밤을 보냈다.

     

    * Note : 처음 방문한 인도 방갈로 도시 자체도 내 선입견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한국도 서울, 부산, 대구, 제주도 등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더 넓은 인도에서 뉴델리와 다른 색깔의 방갈로를 왜 그리 이상하게 느꼈을까?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고, 토론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나의 그간의 삶에 강한 도전으로 다가온 기간, 그 시기의 인도의 방갈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던 첫날밤에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생각했다. 성별, 인종, 나라뿐만 아니라 배운 학식, 문화, 각 개인의 취향과 인성 등 수많은 다양함을 마주하는 그것 또한 내 인생에 있어서 일종의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몇 가지 손에 꼽히는 좋은 점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곳에서는 그동안의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평소의 나 답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많은 대중 앞에서 나를 각인시키기 위한 첫인사를 했듯이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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