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 그 나라에 처음으로 발을 딛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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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아, 그 나라에 처음으로 발을 딛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0. 7. 23:08

    2000년대 중후반, 선배와 함께 떠난 아시아 3개국 출장의 마지막 나라인 인도로 향했다. 방문한 3개 나라에 각기 짧은 업무 일정이다 보니 어느 한 나라에 머무르는 시간 대비, 이동을 위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이집트에서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두바이를 경유하여 인디아(India)의 수도 뉴델리(New Delhi)에 이른 새벽에 도착하였다.  

     

    선배는 역시나 비행기에서 숙면을 취했으나, 나는 역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잠시 눈이 너무 피곤하여 감고 있기는 했으나 잠이 든 것은 몇 분도 안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뉴델리 시내로 오는 아침 시간에 길이 다소 붐비고 막혔다. 호텔 도착 후 방에 짐을 넣어 두고 바로 아침에 인도 지사의 직원들을 만나서 하루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호텔 로비로 가서 인도 직원들과의 첫 대면 만남을 하고 바로 차량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피곤할까 봐 걱정했으나 일정상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11월 말 경이 뉴델리 날씨로는 그나마 좋다고 했다. 아침저녁 20~25도 정도의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였고 습도 또한 괜찮았다. 하지만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도 산업 시설들이 많아서 그런지 공기가 깨끗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느꼈으니 요즘 들어 공기 오염도가 심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인디아 방문이 처음이어서 이리저리 바깥 구경을 하기에 바빴다. TV 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하여 그리고 가끔 영화 속의 장면들을 봤고, 인구가 세계 2위로 많고 그 유명한 인물 '간디', '타지마할' 건축물이 있고 요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 정도의 평범한 조각 지식들이 내가 생각해 낸 전부였다.

     

    인도 지사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인도의 북쪽에 위치한 뉴델리 지역의 사람들은 성향이 좀 더 강하고 드세고 급하다고 했다. 그들도 역시 지역마다의 방언이 많은데 뉴델리 지역은 발음도 다소 세고 강하지만 수도라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그나마 많고 지난 오랜 세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유로 거의 영어가 공용화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인디아 사람들의 영국식 발음은 여전히 어려웠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였는데 똑똑한 선배는 무난하게 소통을 잘했다.

     

    오전에 처음으로 방문한 업체는 우리 본사와 이미 비즈니스를 시작한 후 활발히 키우고 있었던 기존 업체인데 젊은 2세대 CEO가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풍부한 생산 인력과 높은 기술력을 뒤받침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한 임금으로 인한 높은 가격 경쟁력 또한 대부분의 인도 산업이 그렇듯 그들의 강점이었다. 활발한 비즈니스 대비 아직은 본사와의 적은 비즈니스 상황이 아쉬운 상태였고 그래서 기업을 더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두 번째 방문한 업체는 아직 본사와 비즈니스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 활용 능력이 뛰어나고 대량 생산보다는 소량에 집중하여 고가의 아이템을 취급하는 첫 번째 업체와의 전략이 다소 다른 기업이었다. 하지만 생산하는 아이템의 폭이 넓고 탁월한 디자인과 고품질이 관심을 끌었다. 세 번째 업체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중간이었다. 가격도 생산량도 디자인도 다 중간이어서 적절하게 들리겠지만 오히려 다소 평범하고 무엇이 중점 전략인지 특징이 없어 보였다.  

     

    한낮의 기온은 차츰 높아져서 더운 날씨에 몸이 지쳐갔고, 밤 새 여정으로 잠을 못 잔 상태에서 하루 종일 3군데의 업체를 방문하고, 못 알아들을까 봐 온 신경을 집중하니 일과의 마무리 시간이 되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비즈니스 관계가 있는 첫 번째 업체로부터 저녁 식사 제의가 왔고 지사 직원들과 함께 제안을 수락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이른바 비즈니스 관계 형성의 하나로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그들이 예약해 놓은 장소에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니 인디아 음식 레스토랑이었고 그들 말에 의하면 외국인들을 위한 약간 푸전 요리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도 이미 인도 음식이 유행이 된 상태였다. 입맛이 다소 까다로운 선배는 사전에 나에게 부탁하였다. 선배의 입맛을 내가 이미 파악하였으니 자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조절하며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초대한 그들을 생각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즐겨달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인도 음식을 좋아했고 직접 그 나라를 갔으니 그 맛이 기대되었고 피곤한 몸이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다시 눈이 반짝거렸다.

     

    아침에 방문하여 만났던 첫 번째 업체의 젊은 CEO는 대여섯 명의 일행과 함께 와서 우리 마준 편에 나란히 앉았다. 대체로 키가 크고 체격도 좋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인도 사람들이었다. 인디아 사람답게 다소 검은 얼굴에 짙은 검은 머리와 눈썹 아래로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 보였다. CEO 와 한 두 명 외에는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알고 보니 인도의 기업 곳곳에도 소위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가 많은데 CEO도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받은 2세대였고 아침 회의에서 함께 본 다른 임원진들도 다 동생들, 형제 관계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인물들이 비슷비슷해 보였다. 나머지 낯선 남자들은 CEO의 절친들이라고 했다.

     

    선배와 나는 다소 의아해졌다. 이른바 비즈니스 식사라고 하면 식사 내내 업무 관련 대화만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식사를 즐기면서 관계 형성을 해가고, 업무 관련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자리였는데 웬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까. 조용히 지사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또 하나의 인도 문화라고 했고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들의 문화라고 하니 적응해야 했다.

     

    그들이 추천한 음식들이 순서대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야채와 가벼운 채소들로 시작하여, 각종 해산물, 생선류 그리고 고기류들이 다양한 인도 특유의 향신료들과 배합되어 나왔다. 전체 메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그저 즐겼는데 하나하나가 독특한 맛이 있어서 음미했다. 선배는 식사량이 많은 편도 아니고 닭고기를 먹지 못하고 입맛도 약간 까다로웠다. 어느새 그들도 약간 파악이 되었는지 눈길이 점차 나에게로 쏠렸다. 선배와 나는 그들에게는 대접해야 하는 손님들이니 우리의 호불호를 관찰하는 듯했다. 그것은 지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나라를 방문하여 그들의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을 것이었다. 마주한 자리에서 여러 명의 인디아 남자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나오는 음식 메뉴들 모두 나의 입맛에 맞아서 나는 골고루 음미를 하였고 초대한 그들에게 성의를 표하기 위해 새로운 음식이 나와서 맛을 볼 때마다 얼굴 표정, 적절한 몸짓과 언어 등 갖가지 방식으로 훌륭하게 맛있다는 표현을 해서 그들을 만족시켰다. 나의 배 속에도 한계를 느껴 차츰 배가 불러왔다. 나중에 고기류는 나만 먹는 듯하여 그들에게도 권하니 그들은 자신들은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아뿔싸, 왜 이리 많이 시켰냐고 하니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했다. 너무 배가 불러서 입 아래 목까지 찬 듯하여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마 몇 달치 음식에 대한 찬사를 그 하루 저녁에 다 쏟아부은 느낌이었고 선배는 웃으면서 애썼다고 속삭였다. 몇 년 후, 방갈로에 일주일 가량 리더십 교육 연수를 위해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방갈로에 모인 인디아 직원들, 미국 본사와 다른 나라 지사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담소로 나의 뉴델리 경험담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내가 혼자서 외로이 사명감을 갖고 얼마나 많은 음식을 즐기며 계속해서 극찬했어야 하는지 표정과 언어들을 재현하자 모두들 깔깔거리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사를 마무리한 후, 남은 음식들이 아까웠는데 다행히 그들도 포장 문화가 발달하여 다 포장을 해서 가져갔다. 나머지 가족들은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나 보다. 밤늦은 시간에 지사 직원들이 다시 호텔로 우리를 데려다 주려 했지만 우리 차량으로 오히려 그들 집에 먼저 데려다주고 호텔로 가는 것이 나아 보였다. 밤 시간이 되자 수도인 뉴델리도 일반 가정집으로 가는 골목은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 현지인들에게도 다소 위험하여 가까운 거리도 차량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지사 직원들은 중산층 이상이었는데 그들 집 앞에 내려주고 골목을 나오자 바로 할렘가 비슷한 지역이 이어졌다. 빈부의 격차가 바로 느껴졌다. 얼마전에 매체를 통하여 인도의 재벌가 결혼식에 삼성가의 VIP가 초청되어 참석한 광경을 보니 정말 부의 끝이 한계가 없어 보였다. 실제 삶의 실상은 골목골목 길거리 상태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잠을 청한 후, 이른 아침 호텔을 나와 다시 두바이 공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 올라야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는 우리에게 인도에 왜 왔는지 타지마할은 구경했는지 질문했다. 또다시 거기까지 가서 타지마할도 안 가고 떠나는 우리를 야속하게 여기는 운전사를 달래야 했다. 선배와 나는 졸지에 이집트에 이어 인디아에서도 경우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 Note : 여행을 좋아하고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하나는 '인디아는 한 번도 가보지 못 할수는 있지만, 한 번 방문하면 반드시 다시 찾거나 오래 머무르게 된다'라고 했다. 그 이후 또 들은 말은 인디아라는 나라는 워낙 호/불호가 극명하다고 했다. 내 여권에 인디아 도장이 찍히긴 했지만 그 나라를 제대로 느낄 여력이 없었다. 뉴델리 출장 이후 몇 년 후에 인도 남부의 방갈로라는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 역시 업무의 연장으로 인디아의 단면만 느끼고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개인 시간으로 인디아를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함부로 인디아에 대하여 평가를 내릴 수는 없었다. 그저 TV 매체나 영화의 장면으로 본 그 광경들 일부가 실제로 눈 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인디아가 끊임없이 꿈틀거리면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 같았다. 비록 인도 안에서 그 격차가 심하지만 많은 인구 중에 경제적 부호들, 기술적인 우세함, 명석한 두되 등으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입지를 굳혀 가는 계층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 성장을 책임지고 이끄는 것에 적극적인 총리가 있다. 또 하나의 거대한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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