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이라면..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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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친이라면..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2. 26. 18:57

    삶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냥 친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진실한 친구를 갖거나 되기가 그토록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년, 청소년기를 거쳐 많은 또래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관심사가 같거나 집이 같은 방향이거나 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급속도로 친해졌다. 몇 명이 그룹을 이루기도 했고, 단 둘이 단짝이 되어 친해지기도 했다. 매 순간순간 속 마음을 나누고 우리들만의 비밀을 공유했다. 그것은 온전히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대학 입학을 했던 시점에, 초/중/고등학교를 보냈던 오래된 동네를 떠나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지역으로부터 처음으로 벗어난 계기가 되었다. 대학이라는 사회는 또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슷한 지역에 살았던 유년시절의 동네 친구들과는 달리 대학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전국 각지에서 각기 그곳의 사투리와 엑센트가 섞인 같은 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중/고등학교 등 유년 시절에 만나고 친해졌던 친구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이후로도 계속 오랜 인연으로 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같은 서울이지만 이사를 꽤 먼 곳으로 하게 되면서 예전 동네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도 20대까지는 아주 친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약속을 하여 가끔 만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참 결혼을 하고, 역시 그 동네를 떠나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자녀들을 낳고 키웠고, 나 역시 직장 생활에 바빴던 30대가 되면서 연락이 끊긴 경우도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강렬한 첫인상을 나누었다. 4년이라는 생활을 같은 과에서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명씩 그룹이 만들어졌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친하게 그룹을 이루었던 친구들과의 깊이는 평생 인연의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 1학년 때 만나서 이제는 30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당연히 대학 동창생들이 절친 중에 절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유년 시절의 친구들도 가끔 생각이 나고 그립긴 하지만 사람은 곁에 있어주는 시간의 절대량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된다.

     

    절친의 정의를 한 단어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능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나에겐 5명의 절친들이 있다. 

     

    20대 초, 그야말로 인생의 리즈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3명의 서울깍쟁이들은 2명의 부산 가시나들을 만나서 부산 사투리를 배우며 놀았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단체 미팅을 시작으로 서로의 연애 역사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기억하고 있다. 전공 공부는 다 같이 했지만 졸업을 기점으로 서로 다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대 중~후반에 걸쳐, 남들이 그 당시 적절한 시기라고 하는 시기에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결혼을 했다. 좀 지나고 나서는 한~두 명의 자녀들도 낳았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들의 결혼 이후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우리 만남의 횟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최선을 다해 만남의 기회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서로에게 애착을 갖고, 시간을 내어 만나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세월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우리는 가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다소 안정감이 생기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반 백 살이라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많기도 하고 아직은 적기도 한 이 시점에 뒤돌아 보면, 나의 기준에서는 30대의 삶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다. 직장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외모도 20대의 푸릇함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숙된 미모가 살아있고, 생각이나 가치관도 무르익어 가고 있던 시기였다. 40대가 되면서 개인사, 가정사가 늘어났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모두의 부모님들도 연세가 많아지시고 자녀들도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제 50대가 되고 몇 살을 더 먹으니 우리 몸과 마음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화의 시기와 속도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찾아왔다. 이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항상 건강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연로하신 부모님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건강 문제도 화제가 되었다.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만나면 어린아이들처럼 말하고 웃는다. 그야말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대학 1학년과 오십이 넘는 나이를 오가며 웃고 떠든다.

     

    올 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면 만남의 기회가 대폭 줄었다. 궁여지책으로 우리도 랜선 만남을 시작했다. 각자의 집에서 약속한 시간에 맥주나 와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화상 전화로 만났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것을 친구들의 자녀들이 잠시 발견이라도 하게 되면 화면 속에서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엄마가 저리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놀란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들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몇 가지들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친구, 돈, 딸 등이 그 몇 가지에 해당됐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강이 당연한 전제 조건이 되었다.

     

    나의 절친들과 여행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하면 싸우기 쉽다는데 우리 5명의 경우는 꽤 근사한 조합을 이루었다. 각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들을 찾아서 했다. 올 해는 더욱이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을 향한 목마름이 심해졌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씩 고집과 아집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싸운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당연히 기분 나쁘고 옥신각신한 일도 많았겠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이 없었다.

     

    요즘은 매우 그리워하며 반갑게 만났다가도 가끔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대부분 서로 너무 편해서 무심코 한 말이 흠이 되는 경우였다. 아주 가끔은 뒤끝이 남아 집에 와서도 되새기는 경우도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속이 오히려 좁아지는 것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친하고 가까우면서도 분명 서로 다른 가정을 이루고 서로 다른 사회생활을 하는 지난 세월 동안, 대학 시절에 봐왔던 우리와는 또 다른 자아가 만들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삐지는 것도 잠깐이었다. 싸우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속으로 잠시 기분이 이상하고 고민하다가 풀렸다. 그냥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하면서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이에는 이제 세월 속에서 굳게 새겨지고 다져진 믿음과 의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기업가로 변신하여 성공한 한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었다. 아직도 싱글인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깨달았다고 했다. 기업인으로 성공을 하고 자신이 잘한 일을 나누고 기뻐할 대상이 없어서 외롭고 쓸쓸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의 친구들과 함께 생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면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기쁨을 진정으로 나눌 사람이 더 찾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어쩌면 남의 슬픔을 들으면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하지만, 동시에 나만 어렵고 힘들고 슬픈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오히려 거꾸로 자신이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의 기쁨을 알았을 때 처음엔 축하를 하지만 어느새 마음 한 자리에 부러움이 생기고 그것이 심해지면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옛날의 아이돌로 유명하고 인기 많았던 그룹을 재조명한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멤버 중에 한 명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결혼식에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한결같이 축하를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마스크로 가려진 반쪽의 얼굴들이었지만 모두 축하와 함께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기쁨 충만의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진심을 다해 축하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나와 나의 절친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나눈 것이 많았다. 누군가 실의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눈물을 나눴다. 누군가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하면 그저 모두 순수하게 기뻤다. 친구의 행복이 고스란히 나의 행복이 되었다. 최근에도 그랬다. 친구의 좋은 소식에 나도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 Note : 절친이라면 적어도 그래야 한다. 내 친구가 가진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그것을 그대로 나눌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래서 항상 힘이 되고 응원할 수 있는 것, 믿음과 의리 그것이다.

     

    전생이 존재한다면, 내가 전생에 무엇을 잘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전생의 잘 한 일로 인해, 나는 이생에서 절친들을 갖게 된 행운을 가졌다.

     

    나의 절친들아, 앞으로도 알콩달콩 예쁘게 지내자~ 내가 너희들이고, 너희들이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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