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의 첫 출장, 첫인상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베트남으로의 첫 출장, 첫인상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2. 30. 01:12

    2000년대 중반이었다.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 몸 담아 일했던 나에게 베트남(Vietnam)으로의 첫 출장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의 출장 일정은 또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Indonesia)에 먼저 도착하여 업무를 한 후, 그곳으로부터 베트남의 호찌민(Ho Chi Minh)으로 갔다가 마지막으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Hanoi)에 잠시 들리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출장 일정이 있기까지 나는 한 번도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왠지 인도네시아보다는 베트남이 더 발전된 모습일 것 같았다. 20대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시기에 나의 친구 한 명과 함께 휴가로 동남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Jakarta)는 가지 않았고 말레이시아(Malaysia)와 인접해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소박한 인상이 남아 있었나 보았다. 그 첫 출장 일정으로 인해 자카르타에 도착한 후, 도시의 규모와 발전상에 깜짝 놀라 정신없이 휘둘러 보았다.

     

    이어서 도착한 베트남의 호찌민에서 다시 한번 속으로 많이 놀랐다. 자카르타와 비교하면 호찌민은 상당히 순박한 모습이었다. 내가 간과한 것은 인도네시아는 민주공화국이었고, 베트남은 일당 체제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것이었다.

     

    베트남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만든 호찌민이라는 도시 이름이 더 알려져서 호찌민을 베트남의 수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위/아래 세로로 긴 나라이고 베트남의 북쪽, 위에 위치한 하노이가 베트남의 수도이고, 상대적으로 호찌민은 아래인 남쪽에 위치해 있다. 나중에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좀 더 파악한 후에 누군가 하노이와 호찌민에 대하여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비유해 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수도인 하노이는 미국으로 비유하면 워싱턴에 해당하고, 호찌민은 뉴욕과 같은 경제 도시이다.

     

    하노이와 호찌민은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에 있어서 기후와 날씨도 사뭇 다르다. 남쪽에 위치한 호찌민은 일 년 내내 덥다. 확연한 사계절은 없으나 나는 2 계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대략 11월부터 3~4월까지는 그나마 건기에 속한다. 낮 기온은 대체로 30도를 넘어 덥지만 아침 기온은 23~25도 정도일 경우가 많다. 아침과 저녁 일교차가 8~10도 차이 날 경우도 있고 비가 올 경우도 가끔 있지만 양이 많지는 않고 대부분 잠깐 내리는 소나기 정도에 불과하다. 대략 5~10월 사이는 매우 덥고 습하고 비가 많다. 우리나라 장마처럼 오랜 기간 많이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온다. 하루 기온이 28~34도 정도이고 일교차는 5~6도 정도로 계속 덥고 습하다.

     

    하노이는 호찌민에 비하면 4계절이 있는 편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시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이다. 겨울에는 겉 옷(재킷, 스웨터, 경량 패딩 등)이 필요할 정도로 쌀쌀하지만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늦봄~초여름 시기에 해당하는 5월부터 하노이는 매우 습하고 더워진다. 6월부터의 하노이는 호찌민보다 더 습하고 더 덥게 느껴진다. 실제로 하노이의 기온과 습도가 호찌민보다 올라가기도 한다. 하노이의 더위를 경험한 이후로, 개인적으로는 왠지 그냥 계속 일률적으로 더운 호찌민이 더 살기에 편하다고 느껴졌다. 

     

    첫 출장 당시의 비즈니스 업무상, 호찌민에서 먼저 3일 정도 묶게 되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교통이 막혀도 30분을 넘지는 않았는데, 직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너무 심한 교통 체증을 겪고 온 뒤라서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단지 오토바이의 물결은 인도네시아보다도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 베트남 일반 가정에는 오토바이가 없는 집은 없다고 하고 그들의 주된 교통수단이었다. 면허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마도 대부분 개인 오토바이가 있어서 그것이 자유로운 이동 수단이 되었다. 헬멧 착용은 필수여서 모두가 헬멧을 착용하고, 헬멧은 그들만의 패션이자 유행 아이템이었다. 

     

    공항을 나와 예약된 호텔 차량을 이용하여 호찌민 시내 한 복판에 있는 호텔로 들어섰다. 아주 고풍스러운 모습에 반했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인데 나는 이후, 다른 나라보다도 호찌민의 그 브랜드 호텔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호찌민만의 특색이 그대로 묻어났다. 특히 그 당시에 장식된 창틀과 커튼, 실링팬(Ceiling Fan)등의 아이템들이 특별한 멋을 더했다. 고급진 호텔들이 모여 있는 그 거리가 호찌민에서 가장 비싼 동네라고 했다. 그 외의 길거리를 차량 이동을 통하여 관찰해 보면 마치 내가 우리나라의 옛날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2000년대 중반의 베트남 거리에서 나의 어린 시절인 우리나라의 약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 정도를 본 기분이었으니 25년에서 많게는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물론 이후 다시 찾았던 시기에는 그들의 발전에 가속도가 많이 붙어있었다. 

     

    일반 차량보다는 오토바이와 택시의 행렬이 많았으니, 아마도 일반 승용차는 부의 상징 중에 하나였을 것이었다. 당시 지하철은 전혀 없고, 그 외 대중교통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몇 가지 색깔(주로 초록색과 하얀색의 조합)의 택시가 대중교통의 방법이기도 했다. 처음 도착하여 호텔 차량과 업무 시 이용했던 회사 차량 안에 있노라면 거의 비명 소리가 나올 만큼 개인 오토바이 행렬에 놀랐다. 나 혼자 속으로 계속 놀라며 몸이 움찔거렸는데, 며칠 지나 떠날 때쯤 돼서야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보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수많은 오토바이, 택시를 비롯한 차량들은 서로를 인지하고 그들만의 규칙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내 도심지에는 눈에 띄는 몇 개의 높은 빌딩들을 제외하고는 건물들은 적당한 높이였다. 중간중간 불교 사원 같은 곳, 가톨릭 성당들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고, 아무래도 역사 속 프랑스 식민지 시기의 색채가 배어있는 건축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영어가 섞인 자그마한 상점들과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있었다. 거리의 건물들은 주로 거리 앞쪽으로 보이는 단면은 너비가 넓지 않았다. 베트남 특유의 건축물의 특징은 앞에서 보이는 너비는 좁고, 그 뒤로 깊다. 마치 우리나라의 직사각형 건물을 직각으로 틀어 놓는 듯했다. 시내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보다 오히려 그들만의 현지 커피 브랜드 카페도 많고, 의류를 비롯한 패션 아이템 가게, 더운 날씨 때문에 아이스크림 가게, 그들의 주식으로 유명한 쌀국수와 바게트 빵 가게도 줄지어 있었다.

     

    그 시내 거리의 한 곳에 우리 회사 베트남 호찌민 지사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 당시에 호찌민 지사를 책임지는 분은 한국에서 파견된 한국분으로, 그분이 서울에서 근무하셨을 당시에는 나의 상사이기도 했다. 호찌민으로 해외 발령이 나서 가족과 함께 호찌민에서 생활하고 계셨고 그분 외에도 베트남 직원이 10여 명 안팎으로 있었다. 사무실은 아담하면서도 깨끗했고, 글로벌 회사에 다니는 베트남 직원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그야말로 젊은 엘리트들이었다. 베트남은 젊은 세대가 많은 젊은 사회라고 했다.

     

    업무 일정으로는 시내 외곽으로 나가서 한국 업체 분들의 생산 현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시내를 빠져나가면 바로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풍기기도 하고, 산업 시설이 모여 있는 공단으로 들어서면 사무실과 공장 건물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 어딜 가도 어린 시절의 우리나라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았고, 그 어딜 가도 오토바이가 일반 사람들의 교통수단으로 주차장에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호찌민 시내 가까운 곳에도 강이 유유자적하게 흐른다. 맑고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가에 석양이 내리면 호찌민 도시와 어울려 운치가 있었다. 

     

    더운 나라인 만큼 그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한국보다 1시간가량 먼저 시작하고 마감했는데 한국과의 시차가 2시간이었으니 (베트남이 한국보다 2시간 늦음) 업무 시간으로는 1시간 정도 차이로 연락에 큰 무리는 없었다. 또한 치안이 안정적이어서 해외 사무실을 여러 군데 둔 한국 업체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였다. 사회주의 국가로 제도의 융통성과 민첩성은 떨어졌으나 예측 가능한 상황이 주는 안정감도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하루 업무를 시작하여 여러 한국 업체분들을 만나고 생산시설을 방문하고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3일간의 일정을 빡빡하게 마감하였다. 나의 옛 상사였던 분의 안내로 하노이로 떠나기 직전에 잠시 커피를 마시며 호찌민 시내의 예술품 가게를 구경했는데 베트남의 젊은 예술가들이 실력이 좋아서 앞으로의 전망이 기대된다고 하셨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 도착한 후에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업체 차량으로 바로 생산시설로 이동했다. 하노이 외곽 도로를 이용하여 1시간 이상을 달렸는데 일정 구간을 지나니 한창 도로를 새로 만드는 공사 중이어서 일부 구간은 비포장 도로를 힘겹게 달렸다. 그 당시 한국의 대기업 중에 하나인 곳과 거래가 있었다. 그 대기업은 하노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한국기업이었다. 내가 첫 출장을 간 시기가 11월 말쯤으로 한국의 초겨울 시기였다. 호찌민은 더웠으나 하노이에 도착하니 의외로 선선해서 놀랐다. 며칠을 더위에 시달리다 하노이의 선선함에 오히려 정신이 버쩍 들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하노이의 외곽에 그렇게도 번듯한 한국 기업의 생산 시설을 둘러보니 왠지 한국인으로 자긍심이 느껴졌다. 하노이에도 우리 회사 지사가 있었으나 규모는 3명으로 아주 단출했다. 행정적으로는 호찌민의 책임자께서 하노이도 함께 담당하셨지만, 하노이를 포함한 베트남 북쪽 지역의 담당자들은 다소 독립적인 업무를 했다. 그 당시는 필리핀에서 파견 나온 직원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업무를 본 후, 하노이 시내의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거리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나는 바로 그날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주 잠깐 방문한 하노이의 첫인상은 호찌민과 분위기가 달랐다. 호찌민보다 조금 더 정적이고 고요한 느낌의 수도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베트남에서의 첫 출장 일정을 마감한 후, 떠나는 공항에서 나는 생각했다. 다른 나라를 떠나면서 내가 매 번 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과연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나는 이 나라와 어떤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며, 앞으로 나의 미래에 이 나라는 어떤 의미가 될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될까? 혹은 또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될까?

     

    왠지 이상한 느낌으로 끌리는 나라였고, 떠나기 직 전까지 계속 두 눈의 시야를 통해 들어오는, 있는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새겨 두고 있었다.

     

    * Note : 우리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를 방문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면 그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사전에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라면 그저 어디선가 주어 듣고 본 것, 그것이 전부이다. 정확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으로 생긴 그저 느낌과, 막상 도착하여 직접 보고 알게 되는 것의 느낌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베트남은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의 나라였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도시, 더위 속의 나라였지만 왠지 막연히 낯설지는 않았다. 첫인상, 첫 느낌에도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아마도 그것이 그 나라와의 인연의 마지막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살면서 어디인지 모르게 끌리는 장소가 있다. 처음 가는 거리, 장소인데도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혹시 꿈속에서 가봤을까? 뭔지 모를 느낌으로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 기분, 나에게는 호찌민이 그러한 도시로 다가왔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