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량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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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2. 20. 22:04

    얼마 전, 뉴스 기사를 통하여 무알콜 맥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언제 처음으로 알코올이 제대로 들어간 술을 마시게 되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주 옛날, 초등학교 여름에 수영장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심하게 물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어린아이였던 내가 잠을 못 이루고 어지럽고 울렁거린다고 호소하자 놀라신 엄마의 걱정에, 아빠는 위스키 한 잔을 처방하여 나를 깊은 잠에 빠져 들게 하셨고 다음 날 나는 멀쩡하게 일어났다. 

     

    이후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조차 순진한 척, 모범생인 척하면서 술 한잔 안 마셨는데, 여학교의 지도 선생님들의 부지런한 감독 때문이기도 했었다. 대학에 입학하여 가입한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중식당에서 중국 요리들과 함께 강도가 센 고량주를 처음 마시게 되었다. 그 누구도, 선배들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나의 호기심으로 한 잔을 원 샷 한 후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는지 내가 눈을 뜨자 주위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내가 원 샷으로 마신 후,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자다가 일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깨어났을 때, 주위 선배들과 동기생들이  한껏 취해 있었다.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하여 친구들 모두 연애를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을 반복하고, 누구의 어떤 사연들로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하고 혹은 그 시대의 절절한 발라드 가사들로 인하여 풍부한 감수성에 빠지며 술을 마셨다. 하지만 나는 내가 주량이 너무 작고 술에 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엄마를 닮았더라면 좀 강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빠의 체질을 닮아서 한 잔 만 마셔도 피부가 붉어지기 시작하고 더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더 마시면 속이 안 좋아져서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그 분위기를 즐기고 분위기에 취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누군가 못 마시는 술도 계속 마시면 늘어난다고 했다. 나의 경우를 보면 아주 조금 늘기도 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직장이라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무조건 못 마신다고 버틸 수는 없었다. 물론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아서, 혹은 좀 더 솔직한 마음속 이야기, 실제 생활에서 맨 정신으로는 절대 못하는 말 한마디를 위해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분위기에 취하기도 하고, 술을 마신 후 더 친해지고 끈끈해지는 관계로 인해 마시기도 했다. 한창때인 20대, 30대 초중반까지 그렇게 즐겼다. 

     

    나의 한국 나이로 30세에 아빠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후 어느 날, 직장에서 술자리가 있어서 그냥 마시다 보니 많이 마셨다. 물론 아빠를 잃은 슬픔도 잠재되어 있었겠지만 술이 술을 마셨던 것 같았다.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는데 솔직히 머릿속에 정신은 아직 조금 깨어 있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사 후배 2명이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집에서 나온 엄마의 놀란 모습도 생각이 났다. 주말인 다음 날 오전까지, 침대에 그대로 뻗어있는 내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 엄마가 수시로 들어와서 내 얼굴을 살피고, 내 코에 엄마 손가락을 대어 보았던 것도 느꼈다. 내가 간신히 정신이 깨어 두통과 속 울렁거림을 호소하자 엄마가 약국에서 술 깨는 약을 처방받아 오셨는데(지금처럼 술 해독 음료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것을 삼키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위 안의 모든 것을 밖으로 쏟아낸 후에야 서서히 지독한 술 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엄마가 조용히 언니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가 아빠를 잃고 실의에 빠졌다며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술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직장 동료들과 거래 업체 직원들과 즐기느라고 혹은 친구들과 노느라고 종종 술을 마셨는데 그 최고의 절정은 역시나 2002년 월드컵 때였던 것 같았다. 그 시기를 정점으로 점차 내 마음과 정신, 신체적으로도 술을 감당하기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무척이나 술을 잘 마시는 사람 같지만 결코 아니다. 아빠의 체질을 물려받은 아빠 딸이 맞았다. 나는 많이 마셔봤자 다른 사람들의 반도 못 쫒아 갔지만 그저 그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아주 간혹 내가 술을 잘 마신다고 크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진짜 오해였다. 대학교 동아리의 신입생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초반에 약간 취했다가 잠시 쉬는 타임을 갖고 다시 깰 때쯤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한껏 취한 눈으로 다시 깨어난 내가 강해 보였던 것이었다.

     

    아무튼 30대까지는 그래도 지금보다야 잘 마셨고 회복 능력도 빨랐던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너무 취해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아도 머릿속으로는 다 보고 듣고 기억했다. 더 취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잠이 든 적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택시에서 깨어나 집에 제대로 도착했다. 귀속 본능이었나 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신발도 제대로 신발장에 가지런히 넣어 두고, 화장도 다 지우고 옷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적이 대부분이었다. 화장조차 못 지운 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뽑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끊기는 부분이 생기고 또 늘어나고, 그 기억의 일부분들,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야 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끝내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생겼다. 이제는 정말 자제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었다.

     

    그래도 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소주만은 못 마신다. 맥주와 소주를 섞은 폭탄주는 그나마 마실 수 있다. 붉은색 계열의 과실주에는 더 약하다. 레드와인과 복분자주에 약하다는 말이다. 와인을 마셔야 한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샴페인은 그나마 괜찮다. 소주를 제외한 깨끗한 술은 오히려 좀 마신다. 보드카, 사케 등. 위스키 같은 양주는 컨디션에 따라 조금. 막걸리는 마시긴 하지만 다음 날 두통이 심해서 꺼려진다.

     

    시원한 탄산이 가득하고 쌉쌀한 맛의 맥주를 아주 좋아한다. 어느 음식에나 술을 같이 한다면 나는 맥주가 좋다. 어떤 이유로 약을 복용해야 할 때, 맥주와 커피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겐 고통스러운 일이다. 커피는 그나마 디카페인 커피로 가끔 대체한다. 맥주는 어쩌나 하는 순간 이제는 무알콜 맥주를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 무알콜 맥주가 얼마나 전파되고 보급되어 있는지 잘 모른다. 어쩌면 이미 대중화되어 내 예상보다 훨씬 많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이 되어버린 2020년 12월 초에 건강 검진을 했다. 술 관련한 직접적인 문제는 없지만, 나잇살 때문에 늘어난 몸무게, 특히 배 주위 살 관리, 과체중은 아니지만 근육이 줄고 체지방이 늘어난 책임을 지기 위해 칼로리 관리를 해야 한다. 술은 칼로리가 높다. 술과 함께 하는 음식들은 가속도를 붙인다. 검진상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나는 술의 양은 적절함을 유지하고 있으나 사람마다 기준이 다름을 알고 있다.

     

    이제 나는 내 주량이 겨우 한 잔임을 인정해야 한다. 술의 종류가 달라도 그에 맞는 술잔으로 한 잔, 그것이 내가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나의 주량이다. 간혹 즐겁고 행복할 때는 2잔까지는 용납될 수도 있겠다. 3잔부터는 다음 날 어떤 식으로든 뒤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아주 간혹,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즐거운 자리가 생기거나 떠들썩한 분위기에 취하면 나의 적절 주량보다 초과하여 마시게 되지만 한 편으로는 소심하게도 안전하게 집으로 가는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추하게 나이 들면 안 된다는 자제력 때문이다. 그리고 취한 나를 돌봐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다.

     

    * Note : 사람은 다 때가 있다. 술과 주량도 마찬가지이다. 그 시기에 맞는 정신적, 신체적, 마음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이 있다. 나이에 따라 한껏 오르다 정점을 찍고 바로 하락세를 탄다. 그리고 오름세보다 하락세는 빠르고 가파르게 진행된다.

     

    그래도 건강히 허락하는 범위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술과 주량을 알고 접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작은 행복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제 장을 보면서 맥주 코너를 두리번거리며 무알코올 맥주를 찾았다. 최근에 광고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브랜드의 맥주로 0.0%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제 어제 구입한 무알코올 맥주는 다른 일반 알코올 맥주들과 함께 내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다. 시원하고 쌉쌀한 그 맛뿐만 아니라 약간의 알코올이 필요하기 때문에 맥주를 찾게 되지만, 경우에 따라 무알코올이어야 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나마 대체품의 존재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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