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의 설맞이, 기업문화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2. 27. 18:21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서 오랜 세월 몸 담아 근무하면서, 2013년 12월 초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6개월 동안 베트남(Vietnam)의 경제도시인 호찌민(Ho Chi Minh)에서 파견 업무를 위해 살게 되었다.
12월 초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되고 연말연시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종교가 자유인 베트남은 표면적으로 불교와 가톨릭, 2가지 종교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도 석가탄신일도 법적인 공휴일이 아니어서 그대로 근무를 했다. 12월이 흘러가면서 젊은 세대들은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즐긴 후, 조용하고 차분하게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분위기였다.
베트남은 젊은 생산 인구가 주를 이루는 젊은 사회라고 했다. 아마도 그래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많은 나라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회사 내의 직원들의 가족 구성원들을 알아보면 여느 다른 나라 사회와 비슷하기도 했다. 모두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지사 직원들은 형제자매가 적지 않았다. 2~3명은 기본이고 종종 훨씬 많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와 비슷했다. 그러나 교육이 보편화되고, 교육열이 더욱 증가하고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지금 직원들 세대에는 1~3명 정도의 아이를 낳는 것이 보편화되어가는 듯했다. 물론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기도 했다.
연말이 다가오자 주로 나처럼 해외 파견 근무를 하는 외국인들이 머무르는 거주지 건물로부터 뜻밖의 연말 선물을 받았다. 어느 날 내 집 문 앞에 사이공 맥주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30개의 캔이 담긴 한 박스였다. 건물에서 입주자 모두에게 연말 선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신선한 선물이었다. 집에 냉장고가 있고 나는 물론 맥주를 아주 좋아했지만 나 혼자 동일 브랜드의 30캔을 공짜로 즐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짐(Gym)에 내려가서 운동을 하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다음 날 아침에 직원들에게 한 캔 씩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나누어야지 하고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하노이를 제외하고도 호찌민 지사 사무실에는 그 당시 나를 포함하여 대략 22명 정도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인원수에 맞춘 무거운 맥주 박스를 질질 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고 내가 다 마시기로 했다. 사무실 도착 후, 아직 출근 전인 직원들 책상 위에 한 캔 씩 놓아두었다. 그리고 바로 이메일을 전체에게 보냈다. Good Morning 아침 인사로 시작하여 맥주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이유와 낮 근무 시간 말고 퇴근 후 시원한 상태로 해서 즐기라고 써서 보냈다. 나름 경쾌하고 재미나게 짤막한 메시지의 형태로 보냈다. 그들은 출근 후 이메일을 보면서, 12월 초에 도착하여 합류한 나로부터의 깜짝 메시지로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사 책임자이자 나의 멘토인 G가 제일 좋아하면서 맥주를 넣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모두들 저마다의 연말연시를 보내고 새해 1월의 첫 출근일이 되었다. 나도 왠지 다시 처음 출근하는 기분으로 원피스를 차려입고 새로운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여직원들이 모두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Ao Dai)'를 입고 출근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한복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잘 입지 않는다. 특별한 날에만 기념하기 위해서 한복을 차려입는다. 하지만 베트남의 거리 곳곳에는 평소에도 아오자이 입은 여성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실생활에 아오자이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었고, 거리와 시장 곳곳에는 아오자이 의상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곳들이 많았다.
평상복을 즐기던 직원들도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왠지 새로운 마음으로 일종의 관례로 아오자이를 입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전 직원이 모여 사진 촬영을 했다. 특히 여자 직원들은 그들끼리 마치 패션쇼라도 하듯 어울려서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모두 젊고 예뻤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북적거렸던 거리는 연말연시에는 다소 차분해졌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한 달가량이 지나 다시 구정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베트남은 공휴일이 아주 적었다. 한국에 비하면 공식 국경일이 정말 적은데, 일 년에 한 번 제일 긴 연휴가 바로 설이었다. 베트남 용어로 그들은 '뗏(Tet)'이라고 불렀다. 달력에 공휴일을 표시하는 빨간색 글자로 치면 며칠이지만, 대부분의 기관과 기업들은 공식적인 공휴일 외에도 앞 뒤로 며칠씩 더 쉬는 것이 관례였다. 거의 10일 정도는 쉬거나 2주를 쉬는 곳이나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개인 휴가를 연이어서 사용하여 더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위아래로 긴 나라인 베트남도 뗏 기간 동안에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호찌민은 경제 도시인만큼 호찌민 태생보다 여러 산업과 경제 활동으로 유입된 타 지역 사람들이 많았다. 혹은 젊은 세대는 호찌민에 거주하나 그들은 부모님이 계신 타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에 기차가 없었던 베트남 사람들은 본인의 오토바이나 차량 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고향 방문을 했으니 최대한의 휴일이 필요했다.
나도 그 기간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구정, 설 연휴 기간은 베트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았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조금 더 여유 시간을 갖은 후, 다시 호찌민으로 돌아갔다. 내 생각보다 지사 직원들이 대부분 더 오래 연휴를 즐기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급히 며칠간 여행을 계획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계획인, 호찌민에서 아주 가까운 캄보디아(Cambodia)의 그 유명한 앙코르왓(Angkor Wat)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Siem Reap)을 그 시기에 방문했었다.
긴 베트남의 뗏 기간을 마감한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제 다시 평상시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 출근일이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1월 1일처럼 아오자이를 입은 여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은 붉은색과 흰색 계열로 같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 직원들 또한 전통 의상들을 입기 시작했다. 남자는 머리에 쓰는 모자도 있었다. S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나를 위해 마련한 아오자이를 들고 있었고 역시 그들과 같은 색, 동일 의상이었다. 그들은 뗏 기간이 지나 첫 출근날, G, P 그리고 나까지 포함한 3명의 외국인 리더들에게도 같은 의상을 입혔다. 우리도 모르게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나의 옷 치수를 대충 가늠하고 모두 동일 의상으로 대여했다고 했다.
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처음으로 입어 보았다. 그들의 센스에 호응하듯 옷 사이즈가 딱 맞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흐뭇함, 그 자체였다. 내가 옛 베트남 왕실의 여성같이 아름답고 잘 어울린다며 괜히 한껏 비행기를 태웠다. 지사 책임자이자 나의 멘토인 G도 남성 의상을 입고 수줍게 나타났다. 베트남 지사에서 G와 나보다 오래 근무하고 있었던 P는 처음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그 날은 밖의 날씨가 건기 치고는 무척 덥고 습했다. 몸에 달라붙고 긴 팔의 의상을 입고 있으니 아무리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사무실 건물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외부로 나가니 너무 더워서 쉽게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예의 바르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G와 나는 서로 눈빛으로 너무 더워 죽겠다는 표현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행사를 마친 후, 재빨리 시원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베트남 지사 사무실에서의 이벤트 사진이 글로벌 회사 전체에 보도되었고 호응이 제법 좋았다. 어쨌든 또 한 가지의 재미난 경험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 모두 예약된 베트남 식당으로 이동했다. 연말 파티에 이어 뗏 기간 이후에 본격적인 새해를 맞이하며 전 직원 회식 점심 식사였다. 벤탄 시장 근처였는데 북적거리는 식당이었지만 맛은 기막히게 좋았다. 우리나라의 떡국처럼 그들의 메뉴에는 쌀로 만든 떡 같은 형태의 고유 음식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우리나라 기업인 '오리온' 지사도 입주해 있었다. 이후, 우리 회사는 다른 건물로 이사를 했지만, 그 당시는 오리온이 같은 건물에 있었다. 어쩐지 처음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에 타면 왠지 한국인 같은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었다. 그 건물로 출근하는 모든 입주사 직원들에게 초코파이를 포함한 오리온 제품의 선물박스를 나누어 주었다. 평소에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리운 맛으로 반갑고 고마웠고 같은 나라 사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그 당시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한국 제품을 좋아하고 특히 한국 먹거리 제품을 좋아했다.
뗏 기간을 보내고 온 후, 거의 1주일 동안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새해를 기념하느라 바쁜 눈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레스토랑을 가면 우리 회사도 회식을 했듯이 여기저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배를 하고 식사를 했다. 우리나라처럼 저녁 회식 문화를 즐기기보다는 대낮에 점심식사로 회식을 했다. 술로 반주도 같이 하고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그들끼리 전통 가요인 노래도 불렀다. 저녁에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여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인 듯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퇴근 후, 길거리의 꼬치 전문점 같은 식당에서 술도 마시고 삼삼오오 모여 즐겼다. 우리 회사처럼 글로벌 기업은 연말 파티처럼 저녁에 회식을 하기도 하지만, 직원들은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이벤트성의 예외적인 모임으로 여겼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사회 곳곳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함을 느끼게 되었다. 글로벌 기업인 우리 회사가 그리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기업 문화 속에는 그들만의 습관 같은 의식들이 있었다. 내가 입주하여 거주했던 건물에서 연말에 모든 입주민에게 맥주 박스를 선사하듯이, 오리온 기업이 같은 건물 입주사 직원들에게 선물 박스를 돌리듯이 그들만의 이벤트가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날, 그들만의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서로 새해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전체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마치 우리나라에는 다소 경건한 시무식이 있듯이 그들은 고유의 이벤트를 하면서 새해를 열었다. 나는 그저 자연스러우면서 정감 있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즐겼다.
* Note : 어느 사회나 그들만의 문화가 분명 존재한다. 물론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문화는 변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그저 그렇게 그들만의 문화를 존중하면 된다.
우리나라 문화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고, 새로운 사회의 문화를 느끼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사회에 자연스럽게 물들면 되는 것이다. 온전히 다양함을 배우고 느끼면서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묘미이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하롱베이를 감상했다 2편 (0) 2021.03.06 베트남, 하롱베이를 즐기기 위한 여정 1편 (0) 2021.03.03 베트남, 호찌민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 (0) 2021.02.24 나의 주량 (0) 2021.02.20 뉴욕의 남사친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