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호찌민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2. 24. 18:52
25여 년 간 몸 담아 일했던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서의 해외 파견 업무로 인하여 2013년 12월 초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6개월간 베트남(Vietnam)의 호찌민(Ho Chi Minh)에서 살게 되었다.
2013년 12월 초에 호찌민에 도착하여 지사의 협조로 구한 거주지에 입주를 하고, 바로 같은 지역에 있는 회사의 지사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며 정신없이 바쁜 생활이 시작되었다. 12월의 호찌민은 여전히 더웠지만 그나마 일교차가 큰 건기라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기분 좋은 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낮에는 30도 안팎까지 올라갔으나 아침저녁으로는 25도 안팎, 경우에 따라 22~24도 정도 되면 나로서는 정말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12월 중순이 지나자 호찌민 지사에서도 연말 파티를 준비하였다. 연말이 다가오면 직원들이 하나둘씩 개인 휴가를 사용하기 시작하니 20일 전후로 날을 잡아 저녁 시간에 이벤트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당시 베트남 지사의 책임자이자 나의 멘토인 G, 나와는 다른 업무를 하는 P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3명 모두 베트남 직원들에게는 외국인들이었다. 우리 포함 거의 25명쯤 되는 직원들과의 연말 파티를 위해 회사 근처에 있는 베트남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곳의 야외 옥상, 루프탑(Rooftop) 공간 전체를 사용할 수 있었고 레스토랑 측은 우리를 위해 제법 그럴싸하게 파티 장소로 꾸며 주었다.
젊은 남녀 직원들은 평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항상 헬멧을 착용하니 얼굴에 화장을 하거나 많이 꾸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젊음이 있기에 싱그럽고 보기 좋았다. 연말 파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화장을 제법 진하게 하고 한껏 꾸민 패션으로 등장하였다. 우리 3명의 리더들은 그들의 변신에 일부러 더 크게 환호하며 흥을 돋웠다.
모두가 모여 각자 좋아하는 맥주나 와인 등의 주류로 건배를 했고, 베트남 요리들이 순서대로 나왔다. 베트남 고유의 채소와 야채류, 생선 소스를 곁들인 고기와 해산물 요리들, 쌀국수와 볶음밥, 탕 요리 등 이어지는 메뉴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다. 건물의 루프탑 공간에서 저녁의 선선한 야외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니 모두가 여유로운 마음이 되었다. 12월 초에 도착한 나에게 마침 그런 자리가 마련되어 자연스럽게 직원들을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에 좋은 기회였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사전에 준비한 게임을 하고 게임의 결과로 선물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며 단체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호찌민의 시내에서 장소까지 빌려서 한바탕 놀았는데도 전체 비용이 아주 가성비가 좋다고 G가 알려 주었다. 베트남 물가 덕이었다. 모두 만족스러운 추억을 만들면서 연말을 맞이하였다.
12월 중순이 되면서 백화점과 각종 쇼핑센터들이 몰려있는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사실 베트남은 25일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린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은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25일 오후가 되자 직원들은 서둘러 업무를 마감하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위해 나섰다. G와 P도 이미 연말연시 개인 휴가에 들어갔다.
나는 25일은 그냥 호찌민에 머물며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사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와 1월 1일에 가족 모임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12월 초에 호찌민으로 파견이 되었고 날짜를 보니 구정 설에 맞추어 서울로 휴일을 보내기 위해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베트남은 일 년 중에 구정 설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구정 설에 맞춰 서울을 가기로 하고, 연말연시는 베트남 북쪽의 유명 관광지인 하롱베이(Halong Bay)로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그 기간 동안 서울의 가족들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그렇게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호찌민 도심 한 복판에 나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오후에 퇴근을 한 후, 집으로 가서 가장 간편하고 시원하면서도 나름 화사한 옷을 입고 밖으로 구경을 나갔다. 저녁이 되어 가는 시간에도 그날은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지만 도심은 사람들로 넘쳐흘렀다. 호찌민 동상이 있는 광장 주변의 호텔들과 백화점, 쇼핑센터들은 특히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들로 붐볐다. 노트르담 성당 주변은 크리스마스 미사를 위한 신도들로 넘쳐났다.
베트남의 젊은 사람들은 더운 기온에도 진짜 겨울용 털 실로 된 스웨터와 모자 등,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그들만의 패션을 장착하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보기만 해도 땀띠가 날 것 같은 복장들이었으나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연예인들의 연말 시상식 등이 개최되는 장소도 그 주변 지역이었는데 이른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거리 축제를 하는 것처럼 붐볐다. 가족 단위, 혹은 삼삼오오 그룹을 이룬 학생들, 젊은 연인들로 인산인해였다. 따뜻한 나라로 연말연시 휴가를 즐기러 온 외국인들은 더운 날씨에 최소한의 옷만 걸쳐 입고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며 다녔다.
여러 백화점과 쇼핑센터들 중에서도 해외 유명 브랜드와 명품을 취급하는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연말을 맞이하여 대폭 할인을 하더라도 베트남의 물가로 보면 일반 사람들이 구입하기에는 비싼 가격들이었으나 나와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한국에는 매장이 없지만, 호찌민에 들어선 미국이나 유럽 브랜드의 가격 할인 상품들을 잘 골라서 구입을 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연말에 혼자 외국에서 근무하는 나 자신에게 뭔가 보상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의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하고 싶었다. 몇 군데 후보군을 정해 놓았었는데 평소에 기웃거리기만 하고 가보지 않았던 프랑스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다. 쇼핑센터와 집 사이의 거리에 그리 크지 않은 아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혼자 들어가니 역시나 사전 예약 없이도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도심의 밖 거리와는 달리 아늑한 실내는 꽃과 그림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예상대로 경륜 있어 보이는 프랑스인 세프가 있었다. 다소 나이가 든 주인인지 지배인인지 보이는 사람이 메뉴를 보여 주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던 나는 특별한 날인 만큼 그가 권해주는 그날의 질 좋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화이트 와인도, 스테이크와 사이드 디쉬도 모두 훌륭한 맛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나만의 만찬을 즐겼다. 혼자 즐기는 나를 다소 신기하게 관찰하는 듯했으나 귀찮게 궁금증을 해소하지 않는 센스를 발휘했다. 아주 매너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특별한 날 가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평소에 자주 가기엔 외국인인 나에게도 가격이 다소 비쌌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호찌민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연말 며칠 동안 베트남에서 시작한 업무와 나의 원래 자리인 서울 업무의 마감할 일들을 처리했다. 이후 주말과 이어진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새해의 첫 날을 베트남 북쪽의 문화유산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하롱베이에서 보내기로 했다. 화려하고 북적거렸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호찌민의 도심은 오히려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구정 설 연휴를 공식적인 베트남의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나 사람들은 어쨌든 저마다의 방법으로 가족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 Note :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그렇게 가족들과 떨어져서 보낸 적이 없었다. 호찌민 지사로 잠시 발령이 났던 그 해의 겨울이 내겐 가족들과 떨어져 나 홀로 연말연시를 맞이 한, 첫 해였다. 집안에서 막내인 나 한 명 없었는데 다른 가족들도 평소와 다르게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루틴(Routine)을 깬 예외의 상황이 되었다. 양력 1월 1일을 기념하는 대신 내가 서울로 가는 구정 설 연휴를 기약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 혼자 외국에서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이 낯설었지만 또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시각에서는 외국인들인 그들의 기념일을 즐기는 방식, 그들의 가족 행사를 바라보면서 나의 가족들을 다시 한번 애정 어린 마음으로 떠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 날씨가 아닌 후끈한 더운 날씨 속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마주하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루틴이 아닌 다른 상황 속에서 또 한 조각의 추억이 만들어진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하롱베이를 즐기기 위한 여정 1편 (0) 2021.03.03 베트남의 설맞이, 기업문화 (0) 2021.02.27 나의 주량 (0) 2021.02.20 뉴욕의 남사친 (0) 2021.02.17 어깨 통증, 석회화 건염 치료 진행중 (0) 202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