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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일 취향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3. 13. 17:28
맛있는 과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과일 없이 살 수도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과일은 귤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주택에서 살았는데 안방의 한편에 다락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냉장고가 아니어도 그 다락방 위에 과일을 보관해 두면 충분히 시원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 포함 6명인 우리 가족은 겨울이 되면 귤을 박스로 사서 다락방 위에 올려 두고 먹었다. 귤을 먹으러 다락방 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면 다락방 특유의 냄새가 났지만 좁은 그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 특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잔병치레가 많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집 근처에 박소아과라는 개인 병원이 있었는데 감기에 자주 걸려서 박소아과를 내 집 드나들듯이 갔다. 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편도선이 붓고 열이 났다. 병원 진료로 받은 약이 너무 써서 입맛을 잃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귤을 자주 먹으라고 했다. 감기에는 비타민 공급이 중요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새콤달콤한 귤이 입안의 쓴 맛을 없애주어서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바나나는 귀한 과일 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바나나 가격이 저렴하여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사다 놓고 먹고 귀한 줄 모른다. 그 당시는 귀한 과일이어서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소풍 갈 때나 운동회 때, 한 개 정도 도시락과 함께 넣어 주셨는데 워낙 귀해서 부모님께 감사했다. 오히려 요즘에는 영양에 좋다고 바나나를 권하고 있지만 어쩌다 한 번 먹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자라면서 점차 과일 취향이 확고해졌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 나는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달기만 한 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음식 맛에 있어서 그렇고 과일도 당연히 그렇다. 새콤한 맛이 첨가되어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덜 익거나 다소 단단한 과일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같은 과일이라도 너무 익어서 물컹한 상태의 맛보다 바로 이전 단계 상태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모든 과일을 고를 때 일부러 단단한 것을 고른다. 원래 단단해야 하는 사과, 배뿐만 아니라 귤, 자두, 복숭아와 키위 같은 것도 단단한 상태의 맛을 즐긴다. 그래야 새콤한 맛이 살아있는 달콤함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 영양에 좋다는 바나나는 좀 덜 익어서 푸른빛이 남아있는 상태로 구입한다. 그래도 금방 익으니 되도록 빨리 먹는다. 딸기도 새콤달콤한 종자를 고른다. 파인애플도 마찬가지이다. 감을 먹어야 한다면 역시 단단한 감이 더 낫다. 단 맛만 강한 홍시는 별로 안 좋아하고 그나마 얼린 상태나 곶감은 조금 먹는다. 멜론도 좋아하지만 너무 익은 것보다는 약간만 익은 맛이 좋다. 너무 더울 때는 수박을 먹지만 단지 수분이 많아서 먹는 것이다. 새콤달콤한 포도를 좋아한다. 나의 이런 과일 취향을 가족들도 참 특이하다고 여겨왔다.
단 맛만 있는 과일을 선호하지 않아서 망고에 대한 감정이 별로 없었다. 예전에는 망고가 원래 동남아시아 지역에만 생산되어서 성인이 되어서야 망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나마 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 맛을 보았다. 달기만 하고 독특한 향이 있었다. 있으면 조금 먹었지만 특별히 찾아서 구매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지금도 내가 딱히 자주 찾는 과일은 아니다.
이런 망고에 대한 취향이 조금 바뀐 때가 있었다.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 다녔던 나는 2013년 12월 초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6개월간 베트남(Vietnam)의 호찌민(Ho Chi Minh) 지사로 파견 업무를 나갔었다. 일 년 내내 더운 호찌민 지역은 각종 과일이 풍부했다. 위아래로 긴 영토를 갖고 있는 베트남의 전 지역에서 수확되는 각종 과일이 경제 도시인 호찌민 지역으로 왔다. 신선한 상태의 동남아시아의 과일들이 많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국에서는 수입해야 볼 수 있는 다양한 과일 맛에 신기했다.
호찌민 도심 한복판에 있는 지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길거리에서 망고를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과일도 있었지만 망고가 월등히 많았다. 아침 출근 시간보다 점심시간부터 오후까지 발견되는 것은 새벽부터 베트남 각 생산지에서 과일이 이동되어 도심 거리에 도착하여 직장인들의 간식거리로 당일 상품이 판매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망고에 대한 나의 반응은 미지근했으나 사무실 직원들이 즐겨 먹는 간식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권해주는 것을 먹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단단한 상태였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잘 익은 복숭아 같이 말캉한 상태의 망고를 선호하지만 베트남의 길거리 망고는 단단했다. 마치 단단한 단감 같았는데 자주 먹으니 그 맛에 익숙해졌다. 그냥 달지만은 않았다. 참외와 단감의 맛이 혼합되고, 약간의 새콤한 맛과 향이 있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나도 자연스럽게 간식 과일로 망고를 즐기게 되었다.
가끔 오후에 나른해질 때쯤 사무실 위에서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며 망고 수레가 있는지 확인했다. 직접 내려가서 사온 망고를 직원들에게 권하며 잠시 모여 이야기하며 함께 먹는 재미가 있었다. 항상 망고와 함께 마른 고춧가루 같은 것이 섞인 듯한 소금을 담아 주었다. 나는 처음에 의아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모든 과일에 소금을 뿌리거나 찍어서 먹곤 했다. 과일 자체의 맛을 즐기지 않고 왜 그러나 싶었다. 그들은 소금 뿌려 먹으면 과일의 단 맛이 극대화되어 더욱 맛있다고 했다. 게다가 더운 기후에 약간의 염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 번 시도해 봤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새콤달콤한 과일 맛을 선호하는 나에게 일부러 단맛을 극대화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의 부모님이 베트남의 먼 지방에서 제법 큰 과수원을 하신다고 했다. 직원 고향이 그곳인데, 부모님께서 호찌민에서 근무하는 자녀들을 위해 제철에 따라 엄청난 양의 과일을 보내주신다고 했다. 나에게 맛을 보라며 부모님이 재배하여 보내주신 패션후르츠와 망고스틴을 많이 가져다주었다. 호찌민 시내에서 파는 망고스틴은 단맛이 많았는데 막 수확하여 보내주신 그 맛은 새콤달콤하면서 과즙도 더 풍부해서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일반 사람들은 신맛이 너무 강해 눈을 찡그리는 패션후르츠를 나는 좋아했다. 내가 매우 좋아하며 맛에 감동하자,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꼭 전달하겠다고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한동안 뭔가 허전한 느낌 중에 하나는 열대과일들이 생각날 때였다. 요즘에는 수입 과일들도 많이 보이긴 하지만, 베트남 현지에서의 그 추억의 맛은 아니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먹던 그때 그 맛을 찾을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단단한 망고를 먹고 싶다는 것은 그 시절의 추억, 베트남 직원들과 함께 한 그 시절이 떠오를 때이다.
* Note : 과일 취향이 독특한 나는 아마 인생을 살면서도 나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까지 별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평범하지만도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부터의 삶은 큰 욕심 없이 그냥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이왕이면 좀 더 노력하여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좀 더 가치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해 보기도 한다. 싱그러운 과일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맛처럼 새콤달콤한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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