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사태,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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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가니스탄 사태,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9. 1. 16:33

    8월에는 전 세계 언론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약 3개월 전, 미국은 거의 20여 년 간 주둔했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이후 '아프간'으로 줄여 표기) 내의 미군을 8월 31일부로 완전히 철수시킨다는 발표를 했다. 그 이후로 아프간 내의 상황은 급속도로 변했고 미국이 예측했던 시나리오(Scenario)와 시나리오별 시기는 놀랍게도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미국 자체도 당황하게 되었다. 

     

    매일 TV로 아프간의 상황이 보도되었다. 가끔 미국 CNN 방송을 보면 필수적인 뉴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24시간 아프간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간략한 뉴스로 보던 사태가 CNN에서는 좀 자세하고 많은 실시간 상황을 보여 주었다. 아프간의 수도인 카불(Kabul)마저 무장 이슬람 정치 세력 단체인 탈레반(Tailban)에 의하여 함락이 임박해지자 두려움과 공포에 몰린 아프간 시민들은 자국을 탈출하기 위하여 공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초반에는 미군 수송기에 올라타려고 매달렸던 사람들이 그대로 추락해서 사망하거나 다쳐 나갔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프간 현지의 우리 한국 대사관 직원들도 한국의 장관과 사태를 논의하던 도중, 우방국으로부터 위험 신호를 받고 서둘러 탈출해야만 했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위급한 상황을 보는 듯했고, 그 당사자들 또한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탈레반이란 위협적 존재들에 대하여, 왜 아프간인들이 자신들의 고국까지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알려지면서 다시 조명되었다. 그간의 그 분쟁 지역에서의 긴 역사가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사실 아프간 지역의 지난 역사들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 몇 년 전에 지인이 건넨 소말리아 내전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소말리아 내전에 관한 우리나라 영화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는 정치, 종교, 문화, 집단 간의 이익과 이해관계 등에 따라 전쟁을 시작하고 분쟁이 오래 지속되고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끊임없는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었다. 

     

    1970~80년대의 아프간의 옛 도시 모습이 담긴 기사도 보도되었다. 여자 대학생들이 자유로운 헤어 스타일, 짧은 치마를 비롯한 트렌디한 옷차림을 하고 도시를 활보하고 있었다. 여자도 교육을 받고 자유로운 활동이 그 시기에도 이미 가능했었다는 증거였다. 1990년대 후반의 사회상은 확 달라졌다. 같은 종교임에도 이슬람 문화를 극단적으로 이해하는 탈레반의 집권이 강해졌던 시기였다. 여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모를 철저히 가린 채로 남자와 동행하에만 외출이 가능했고 중학교 조차 갈 수 없이 교육에서 배제되었다. 사회의 모든 활동에서 여자는 존재 자체가 없어진 것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세력을 응징하기 위하여 공격한 후,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아프간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로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탈레반의 잔혹성을 실제로 당하지는 않아서 잘 모른다고 했다. 여성들은 다시 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온 미군 철수 발표와 함께 탈레반 세력이 다시 점령하기 시작했으니 아프간의 미래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아가서 다시 암흑기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한 편 내가 어린 시절에 일어났었던 베트남 전쟁에 관한 사실을 들은 적은 있었으나 그 실상을 잘 몰랐다. 단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여러 영화나 자료 속 장면들로 그 참혹한 참상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 후, 글로벌 기업(Global Company)에서 일하면서 베트남 호찌민에서 잠시 6개월간 거주하게 되었다. 통일궁, 전쟁 기념관과 박물관 등을 방문하면서 그들의 역사와 더욱 생생하게 기록된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군인들도 참전했던 베트남전으로 결국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베트콩이라는 북쪽의 공산당들에게 정권을 내어 주고 후퇴하게 되었다. 주축으로 나섰던 미국으로서는 잊고 싶은 전쟁의 기록 중에 하나였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종종 베트남 전쟁과 함께 뼈 아픈 미국의 철수 선언으로 엮이어 보도되었다. 철수 초기에 탈레반은 베트콩 만한 실력이 안 된다고 오판을 내렸던 미국의 예상이 잘못된 결과로 나타나자, 전 세계가 미국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미정부는 미국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정치적 위기로 내몰렸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전 세계를 향하여 미국이 다시 돌아왔다며 자국 이기주의에서 탈피하여 국제적으로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려 하였으나 아프간 사태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연합국들은 결국 미국 이기주의에서 비롯되어 되려 또 다른 분쟁, 인권 탄압과 학살이 벌어지고 수많은 난민 피해가 예상된다며 연일 비판했고, 미국의 경쟁국들 또한 더 세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어서 동맹이라는 것은 이익에 따라 친하다가도 바로 내쳐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 하나이고, 6.25 한국 전쟁 이후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에 우리는 계속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며 끼여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우위를 선점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패권 경쟁 속에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실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세계가 놀라고 존경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고, 우리가 선택한 자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가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 가운데 과연 자국의 이익을 먼저 따지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아무리 인도주의에 입각한 매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먼저 잘 살고 잘 살 수 있어야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나눔의 마음과 여유도 생기고 세계 평화를 고려하게 되는 이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간 사회의 지금 이 순간의 몰락의 아픔은 과연 무슨 이유 때문일까. 미국과 연합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수많은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어 나라의 재건을 도왔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의 책임자들은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고 했다. 군대의 숫자도 허수가 많아서 파악되는 군인은 실제로는 1/6 정도라고 했다. 게다가 누가 누구 편인지도 신원 파악도 정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원조로 들어간 자금은 부패한 정부 관료들이 중간에서 빼돌려서 이익을 챙겼고, 심지어 무기까지 팔아넘겼다고 했다. 이제는 탈레반에게까지 넘어간 미국의 군장비들이 어쩌면 북한에게까지 팔릴지도 모른다는 보고도 있었다. 급기야 거의 모든 지역과 수도인 카불까지 함락 직면에 이르자 아프간의 대통령은 수많은 현금을 지참한 체 해외로 도피했다. 빼돌린 현금이 많아서 비행기에 다 싣지도 못했다며 혼자만 살겠다고 탈출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딸은 미국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서 부를 유지하며 한가롭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했다.

     

    아프간 국민들은 배신감에 실망하고 분노했겠지만 우선순위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탈출이 먼저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프간 정부의 이 같은 몰락은 베트남전의 실태와도 유사하다고 했다. 그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정부를 위하여 온갖 물자를 지원했으나 부패한 정부와 군인들은 심지어 적인 베트콩에게 미국의 군장비까지 팔아넘겼다고 했다. 결과는 베트콩의 공산주의에 함락되어 버렸다.

     

    한 편, 우리 대한민국의 정부는 지난 며칠간 숨 막히는 비밀 구출 작전을 해왔다. 결국 아프간에 남아있던 한국인은 물론 우리 정부를 위해 일했던 아프간인들의 탈출을 도와 한국으로 이송하는 데 성공했다.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대사관 직원들은 우방국의 긴급 연락을 받고 그 위험 지역을 마침내 탈출했으나 그동안 함께 일했던 아프간 직원들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그 위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갔던 것이었다. 그동안 성도 이름도 몰랐던 아프간 주재 한국 대사관 사람들의 위험을 무릅쓴 책임감과 인도주의적 희생정신은 고귀한 인류애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밝혀지자 그들을 알고 함께 일했었던 예전 직원들은 그들의 책임감과 인격에 대한 믿음과 감사를 표현했다. 국가와 국민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간 아프간 대통령과 첨예하게 비교되는 인간성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작전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들렸다. 반 면 일본 또한 구출 계획을 하고 수송기를 급파했으나 자국민 1명 만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일본인들이 아프간에 남아있으며 그들을 위해 일했었던 아프간인들의 구출은 전혀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실망스러운 성과에 지금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그들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의 선배들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우리는 그런 선배들의 후배들인 것이었다. 세계는 지금 아프간 사태를 저 지경으로 몰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동맹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까지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 나라를 세계의 어느 나라가 계속 돕기만 하겠는가. 하늘도 스스로 지키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다.

     

    반 면 북한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핵실험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잡히고 있다. 실로 오랜 세월 약속 한 번 지키지 않고 있어서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런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벌써 몇 해 동안 한미 연합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가상의 컴퓨터 시뮬레이션(Simulation)으로 실전 훈련의 효과는 불가능하다. 동맹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위하여 내 편을 갖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믿음을 깨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북한은 언제 어디서든 비정상적 행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를,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그 냉혹한 현실 세계의 상황을 이번 아프간 사태를 통하여 배워야 한다.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 누구도 우리를 쉽게 보지 않고 누구 편에 서라는 요구도 함부로 못할 것이다. 

     

    * Note : 이제 우리 세대도 전쟁을 겪어보지는 않았다. 전쟁을 고통스럽게 겪은 우리 부모 세대만큼 실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 중에 하나는 북한이다. 같은 민족 운운하면서 약속도 지키지 않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어차피 동맹도 서로의 이해관계로 필요할 때만 내 편이고 관계 지속이 가능하다.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필요한 동맹 관계를 갖고 유지하는 것도 우리의 힘이다. 그것이 이번 아프간 사태를 통하여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하는 마음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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