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Social Media) 세상의 이면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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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셜미디어(Social Media) 세상의 이면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2. 2. 5. 18:47

    요즘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같은 소셜미디어(Social Media)를 통한 소통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IT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점차 좋은 기능이 빠른 속도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초기 인터넷(Internet)이라고 하는 기술의 시작을 기점으로 지금 이렇게 전 세계가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세상으로 가능하게 될 줄 몰랐었다. 예상보다 빠른 발전 속도와 수요가 맞물렸고, 게다가 2020년 초부터 본격화된 세계적인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하여 그 필요성의 절박함과 계기가 더욱 앞 당겨진 것이었다.

     

    2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바이러스의 팬데믹 상황은 사람들이 실제 생활하는 (Off-line) 공간보다 SNS를 통한 온라인(On-line) 상황에서의 만남과 소통을 자연스럽게 했고 당연스럽게 만들었다. 개인은 제한된 사회생활의 갈증을 SNS에 사진과 사연을 공유하는 것으로 풀기 시작했다. 게다가 많은 궁금증과 정보들을 손쉽게 검색 기능과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들로부터 얻고 참고하기 시작했다.

     

    점차 서로의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자료에 의존하게 되었고 보이는 데로 믿기 시작했다. 반면 SNS에 오른 사진과 제한된 표현은 상황과 사연의 단 면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올린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고 보는 사람은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올리는 입장에서는 어쨌든 제한된 표현의 영역 속에서 점점 최상의 것만을 선택하여 표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 면들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대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보편적인 부분들이 선택된 최상의 상태로 가려지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변형되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입장은 극히 좋은 모습과 긍정적인 면만 참고하게 되었다. 최상의 상태만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뜻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인한 심신의 피로, 각기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질 우려가 그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들을 보면서 남들은 다 저렇게 성공한 삶을 살거나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면서 자신의 절망적인 현실과 비교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과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보면서 쉽게 비교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으로 자극을 받게 되어 더욱 노력하게 되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부분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힘든 현실의 무게에서 부정적 요소로 반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한 편 요즘 MZ 세대는 사회의 부정적 측면에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불평등, 불공정, 불합리 등의 민감한 문제는 비단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 해결해 나가야 하는 숙제들이었다. 나 또한 실제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여러 측면들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불만이 생기고 화가 날 때도 많았다. 미래가 창창한 세대들이 나보다 많은 날들 겪게 될 사회 문제들이라서 더욱 신경 쓰이고 안쓰럽기도 했다.

     

    갈수록 경쟁이 심한 사회 속에서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는 것도 힘들고 독립적인 경제생활의 기반을 다지는 것도 버거운 상황 속에서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까지 더하여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불난데 기름을 붓듯이 온갖 사회 경제와 정치권에서의 부조리를 보게 되면서 불만은 쌓이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치닫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SNS 속의 또 다른 모습은 마치 딴 세상이 있는 것 같고, 희망을 품기보다는 자신은 초라해지고 더욱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실제로 스스로 비관적 선택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극단적인 행위까지 발생하게 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실체가 있는 모든 생활을 함께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뒤 전후 상황과 사연은 모른 체 일부의 모습으로 오해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런 선입견과 편견을 갖은 체 예전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본인이 정신을 다잡고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가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세상이라는 확신이 없어져버린 것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는 상태를 이용하여 너무 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버리는 것을 뛰어넘어 평소의 자신과는 또 다른 공격성을 띠게 되었다. 마치 가면 뒤에 숨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막무가내식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하는 연예인이나 알려진 공인을 상대로 사실에 기반두지 않는 거짓을 유포하거나 화풀이식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그 공격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정치, 문화, 종교, 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자신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부러워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요즘 그것의 부도덕과 부조리를 잡기 위하여 공인이든 개인이든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마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던 참견 정도가 점차 자라나서 공격 성향이 강해졌던 사람들이 법 망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저 쉽게 시작했던 잠깐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깨달은 다음에 후회하기도 했으나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의 중독에 빠지고 범죄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무감각에 빠진 것이었다.

     

    실례로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을 이유 없이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였더니, 물론 그중에는 잘못을 뉘우친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는 사연이 공개되기도 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 편리하게 하고 많은 교류를 목적으로 했던 소셜미디어에 의하여 마치 전쟁이 시작된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편리함 뒤에서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자각도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현상을 바로 잡고 그로 인한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할 상황이다.

     

    만약 실생활에서처럼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고 실명으로 직접 글을 주고받는 상황이라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대부분 아닐 것이다. 이제 소셜미디어 영역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도 실생활처럼 이뤄져야 할 때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가볍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 지켜간다면 그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가 해낼 수 있다. 

     

    우리가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발전된 세상에서 우리도 발전된 모습으로 있길 기대해 본다.

     

    * Note :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고도 그만큼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 마음이 내 마음과 같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과 다른 우리 인간들은 기본적인 도덕과 예의라는 것을 교육받고 사회화되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예의는 실제로 마주치는 세상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인간인 내가 알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인간답게 행동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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