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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좌절을 겪을 때, 멈추는 시간도 필요하다.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2. 5. 18. 16:11
신문에서 정신의학자의 글을 읽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팩트(Fact)라고 했다. 그러면서 좌절했을 때 극복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잘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예기치 않게 상처가 생기기도 하는데 상처가 아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부연 설명을 함께 담았다.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세계적인 골프 여제로 등극했었던 박세리 선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창 선수로서 물 오른 기량을 발휘하다가 하루아침에 슬럼프(Slump)에 빠졌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끊임없이 목표를 위하여 성실하게 노력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는데 이유도 모른 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에 스스로 당황하고 혼란스러웠고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마음을 내려놓고 귀국하여 그냥 쉬었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부상도 없지만 그렇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결코 스스로를 탓하거나 과도한 압박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잠시 멈춤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운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리프레시(Refresh)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실생활 속에서 실망과 좌절 속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쉽게 말하곤 한다. '뭐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누구나 스트레스(Stress)는 있어, 좀 더 힘을 내.. 파이팅, 넌 반드시 극복할 거야.. ' 등의 때로는 진심 어린 말이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그저 말로만 하는 위로와 격려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식의 말들이 다른 한 편으로는 과도한 자아 반성이나 숙제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아, 내가 좀 부족해서 인가, 다른 사람 대비 내가 나약하거나 엄살을 피우는 것일까, 부족한 나는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에 부응하여 극복해야 한다, 이 정도의 슬럼프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못난 사람이다..' 등으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본질을 떠나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길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가만히 나의 경우를 뒤돌아 보게 되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글로벌 기업(Global Company)에 입사한 후 25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리더십(Leadership) 발휘에 문제가 있었던 때였다. 세월과 함께 업무도 계속 변화되었고 그에 맞는 책임이 부과되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었다. 특히나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서 다양한 팀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는 나에게 항상 무거운 숙제였다. 회사와 직원은 결국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뭉쳐진 집단이었다. 각기 입장이 다른 다양한 팀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주장했다. 일의 분배와 역할, 책임 그리고 업무 성과 등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만을 주장했다. 개인과 회사 모두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모인 이익 집단이지만 그래도 서로 관계 조율로 원만한 팀워크(Teamwork)가 중요한 집단이었다.
리더의 위치에 있었던 나는 대화와 조율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한 편으로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인정하기 어려웠다. 글로벌 기업답게 당시 회사에서는 팀원들로부터 리더의 자질을 평가하는 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했었다. 결과를 받아 든 나는 좌절감에 허우적댔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나를 혹독하게 평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원 10명이 있다면 10명이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그중에 몇 명은 긍정적이고 나머지 몇 명은 정반대로 부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것일까. 결과에 대한 원인 파악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글로벌 기업에서의 리더십 평가는 향후 나의 커리어(Career),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 하나였다. 나의 리더십에 관한 역량에 대하여 회사가 의구심을 갖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당시 업무에서의 나의 리더와 회사에서 맺어준 글로벌 멘토(Mentor) 등 몇몇에게 조언을 구했다. 업무상 직속 상사인 나의 리더는 평소의 나에 대하여 느낀 대로 견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일부러 포장하거나 우회하지 않은 직접적인 의견이었다. 그야말로 뼈 때리는 듯한 말들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 모두 사실이라는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라고 했다. 더욱 마음이 아팠다. 좌절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실망 속에 빠져들었다.
글로벌 멘토에게는 내가 처한 상황을 영어로 최대한 잘 설명해야 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급하고 일부는 억울한 마음에 별소리를 다 했던 것 같다. 아마 내 마음을 영어로 표현해야 하니 내 마음대로 지껄여서 무슨 말인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물리적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나를 꽤 잘 진정시켰다. 그야말로 나를 다정하게 멈추게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 모든 것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단순한 격려는 아니었다. 리더도 그저 사람이라고 했다. 똑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누구는 완벽한 리더냐고, 그런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무엇이 그렇게 급하냐고 했다. 지금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라고 했다.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되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협조로 리더로서의 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어느덧 25여 년 간 다녔던 글로벌 기업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한국 회사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사고방식, 인식과 체계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오래 못 가고 그만두었다. 바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심신이 급속도로 황폐해진 것을 느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기업의 윤리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충격받았다. 분노와 실망이라는 감정이 꽤 오래갔다. 회사의 기업 윤리 수준과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없었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좌절감이었다. 그런 감정을 치유하는데 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렇게 이른바 과거의 흑역사 같은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요즘도 가끔 후배들의 상황 이야기를 듣는다. 승진, 이직, 앞으로의 사회생활 경력의 도전에 관한 고민들이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서 질타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한껏 주눅 들어서 실패와 좌절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말해주고 싶었다. 잠시 멈추라고.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스스로 작고 미미한 존재라고 느끼지 말라고. 모든 것이 본인 잘못만은 아니라고. 인생은 어차피 구불구불, 높고 낮은 길의 연속인데 뭐 그리 급하냐고. 무슨 운을 타고나서, 그럼 혼자만 늘 평탄한 대로만 걷겠냐고, 그렇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공평한 것이라고. 잘 풀리지 않을 때 억지로 안간힘 쓰며 이겨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잠시 멈추고 재충전하는 방법도 있다고. 당연히 나도 아직도 겪고 있는 중이라고.
* Note : 예전에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매 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해서 음미하면서 다시 읽곤 했었다. 다행히 나는 어느 정도 운이 따르는 인생인 것 같았다. 내 주위 사람들이 결국은 내 생각을 해주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손을 들고 표현을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몰랐다. 그들은 때로는 직접적으로 격하게, 때로는 다정하고 따스하게 생각을 나눠 주었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은 또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하마터면 미성숙되었을 뻔한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 주었다. 결국 모든 말들을 종합해 보면, 잠시 멈추는 것도 방법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할 시간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맞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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