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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3편 그들의 미래가 궁금하다.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9. 9. 22:46
첫 번째 인도네시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1월이 되면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인 우리 회사는 보통 홍콩이나 중국의 센젠 지사에서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고, 새로 시작되는 한 해의 목표를 위한 워크숍(Workshop)이 열였다. 미국 본사로부터의 임원진과 각 나라 지사의 리더들이 한 장소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것인데 주로 한 해의 목표를 세우는 1월과 중간 점검을 위한 6월, 일 년에 2번 정도가 정기 워크숍 모임이었다.
2010년도 초반의 어느 해, 1월의 워크숍에 참석하기 불과 며칠 전에 인도네시아에 큰 홍수가 났다. 워낙 비가 많은 겨울에 물난리가 많이 일어나는 인도네시아였는데 그 해는 몇 년 만에 또다시 큰 홍수가 발생했다. 수도인 자카르타도 여기저기가 잠겼다. 회사 인니 지사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생산 기지를 둔 한국 업체들도 많아서 며칠 동안 피해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사에서도 지사인 인니 사무실과 우리 직원들의 안전과 피해를 파악하니 직원들 중에 3명의 집도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글로벌 회사 차원의 협조가 이루어졌다.
이윽고 열린 워크숍 회의장의 첫날, 여러 나라의 리더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매번 만나는 인물들도 있었고, 새로운 인물들과의 첫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지사의 리더들 중에 한 명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피해 직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상황을 물어보니, 그 3명의 피해 직원 중에 한 명이 자신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괜찮냐며 다시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괜찮으니 이 자리에 있지 않겠냐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어느새 우리 대화를 듣고 주위로 몇몇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자기 집은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하는데 항상 비가 많이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가 된다고 하며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더욱 놀라서 그럼 이사를 가던지 무슨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곳에 오래 살았고 그녀의 두 딸들을 포함하여 가족들이 그 지역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자카르타는 워낙 배수 시설이 안 좋아서 어느 곳이든 문제가 되는 것은 거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기 집은 2층 집인데 비가 많이 올 때마다 1층이 문제이니, 안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걱정이 돼서 모여들었던 우리에게 마치 모험담처럼 이야기하며 우리를 되려 안심시키는 그녀가 대담해 보였다. 아무튼 홍수가 잦고 문제가 되는 배수 시설은 고질적인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그 후로 나는 2번째 인도네시아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는 대만에서 1일간 짧은 출장 업무를 보고 인니 자카르타에 도착하였고, 나의 인니 도착에 맞추어 한국으로부터 동료 2명이 와서 합류하였다. 인니의 출장 일정은 나의 첫 번째 일정과 유사했고 동료 2명은 인니 출장이 모두 처음이었다. 나는 먼 거리와 심한 교통 체증으로 인하여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빡빡한 일정이 될 것을 미리 알리고 잘 자고 잘 먹고 체력을 비축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나의 첫 번째 경험을 토대로 그간의 변화와 새로운 계획 위주로 생산 시설을 보기 시작했고 동료 2명의 처음 보는 시각을 최대한 확대시키고자 차 안에서 많은 대화와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는 각기 3명의 눈으로 관찰하고 확인하면서 인니 업체들에 대한 기록을 해나갔다. 3명이 함께 다니고 인니의 도로들이 굴곡지고 비포장 도로도 섞여 있어서 SUV 차량을 이용하니 시야가 넓어서 좋기도 했지만 장시간 달리니 몸의 피로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방문하는 업체의 공장에서 업무를 보고 그들이 준비한 한식으로 폭풍같이 점심을 해결했다. 강한 인니 커피 향으로 졸음을 쫓기도 하고 새로운 저녁 메뉴를 상상해 보며 차 안에서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하였다. 나 혼자만의 첫 번째 출장보다 활기찼다. 인니에서 인니 음식과 인도 음식을 차례로 경험하고 마지막 밤은 호텔 스파에 모여 함께 피곤을 풀기도 했다. 그들 역시 새벽 4시경이면 이슬람 사원으로부터의 예배 소리로 잠시 잠을 깬다고 했지만 그것은 예배 소리 때문이기도 했고, 인니가 서울보다 2시간 늦으니 평일 서울에서의 출근을 위한 기상 시간 하고도 비슷하다고 했다. 습관이라는 것이 몸에 익숙해 있으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저녁 시간 한국행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일정을 계획한 대로 움직였다. 업체 시설을 방문하고 회의를 한 후, 이제 남은 일정은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우리 인니 지사에 들려 지점장님과 그 직원들과의 회의만 간단히 하고 공항으로 가면 되었다. 시내로 향하는 길에 세찬 비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예감이 안 좋았다. 장대비가 쏟아지자 얼마 후 도로는 거의 마비 상태가 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가 지나도 거의 조금씩 움직여 멀리 가지 못했다. 좀 더 상황을 봤지만 상태가 나아질 것 같이 않아서 차 안에서 지사 지점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렸다. 2010년대에는 모바일 폰 덕분에 바로바로 연락이 가능한 일은 다행이었다. 지점장님은 오늘 일기예보에 큰 비가 예상된다며 그러다 위험하다고 지사 사무실에 올 생각하지 말고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라고 했다.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로가 막혀 쉽지 않았고 차츰 차 안에서 조바심이 났다. 쏟아붓듯이 내리는 비 속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로 빠져나와 겨우 공항에 도착하여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 비행기가 이륙한 후 소식에 의하면 또다시 엄청난 비가 홍수로 이어져 공항 가는 길이 한 동안 통제되었다고 했다. 간 발의 차이로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2010년대 중반이 되어 내가 담당하는 아이템에 변화가 생겼고, 회사 조직에도 또다시 변동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새로 담당하는 아이템에 맞추어 인니에 다시 출장을 가게 되었고 이번에는 인니도 그리고 출장도 처음인 좀 젊은 직원 1명과 동행하게 되었다. 인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직원은 연신 궁금한 것을 나에게 물어왔고 첫 출장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나는 직원의 젊음과 패기를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며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인니 공항 도착 후 시내로 들어서자 교통 상황에 전혀 변함이 없음을 느꼈다. 오히려 도로는 더 복잡해진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이었음에도 도로는 계속 막혔다. 인니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지인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어김없이 늦었다. 겨우 우리 일행은 호텔 도착을 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해야만 했다. 직원은 말로만 듣던 교통 지옥을 처음으로 실감했지만, 우리는 높은 빌딩의 탑층에서 인니의 멋진 도시 야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저녁을 즐기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를 데리러 온 업체와 로비에서 만났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조식이 차려진 식당으로 가서 일행의 수 대로 봉지에 각종 빵과 먹기 편한 음식을 담고 커피도 포장 부탁을 하여 서둘러 차에 올랐다. 조식이 포함된 호텔비가 아깝기도 하고 이른 아침 출발해야 하는 우리 일행의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함이었다. 업체 담당자들이 여태 여러 번의 방문객들이 있었지만 이런 아침 포장까지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을 찡긋하고 배고프면 일을 못한다고 했다. 직원은 또 하나 배웠다며 웃었고 우리 일행은 일제히 커피와 빵을 입에 넣으며 행복해했다.
아이템의 변화는 있었지만 나는 3번째 인니 출장이어서 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파악할 수 있었고,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직원에게 전수해 주고 싶었다. 첫 방문이라서 볼 것도 많고 질문과 궁금한 것이 많은 직원에게 업체와 나는 번갈아 열심히 설명해 주었고 방문하는 업체 곳곳에서 만나는 우리 인니 지사 직원들의 견해도 도움이 되었다. 일정은 계획대로 이어 나갔으나 교통 상황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정이 이어지다 보니 또다시 호텔로 돌아오면 늦은 저녁 식사와 함께 바로 쓰러져 잠들고 마는 일정이 이어졌다.
중간 일정에 나는 혼자 인니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여 "스마랑"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고, 직원은 나와는 다른 일정을 갖게 되었다. 스마랑에서는 그 당시 우리 회사와 첫 거래를 하게 된 업체에 첫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젊고 열정이 넘치는 직원들로 모여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그 업체는 정직하고 열심히 우리 회사의 모든 기준을 준수하고 색다른 시스템으로 효율을 창출하고 있었다. 먼 지역이라서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기동성이 좋아서 오히려 내 몸의 피로도 적었다. 그 날 늦은 저녁 호텔에서 만난 직원은 그날도 교통 체증으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이어지는 날은 업체에서 내가 인니 첫 방문 때 신기해했던 방법, 지역 순찰차를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직원은 이건 무슨 방법이냐며 역시 신기해하면서 내게 귓속말로 이상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방법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이제 3번째 출장으로 모든 이상하고 새로운 그들만의 방식들을 그냥 받아들였다. 우리와 업체 공장 방문에 함께 한다며 한국으로부터 온 업체 담당자와 처음으로 차량 이동 시간과 식사 시간의 오랜 시간을 통해 그간 못 나누었던 대화를 주고받았다. 생산 현장에서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누는 대화는 한국 사무실의 책상에서 나누는 대화보다 심도 깊고 서로의 마음과 머리에 오래 남는 것 같았다. 요즘은 IT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화상 회의를 통하여 연결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생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본 것 그대로 그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생산 현장의 직원들도 우리가 직접 찾아가 얼굴을 대면하고 현재 비즈니스 상황과 앞으로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법 등을 현실에 맞춰 있는 그대로 논의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 형성을 통한 비즈니스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여러 의견들을 주고받으니 한국 업체에서 출장 나온 담당자는 그런 기회의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나는 그의 한국행 저녁 비행기 시간을 의식하며 계속 시계를 보다가 거의 등을 떠밀어서 공항으로 보냈다. 서울에서 다시 이야기 하자며 서둘러 공항으로 가라고 했다. 아직 인니의 교통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사히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하였다는 그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직원과 나는 마지막 날까지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해 갔다. 원래 야행성인 나는 주로 늦은 시각에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인니의 출장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도로의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첫 번째 출장부터 줄곧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지기는커녕 체감으로는 더 심각해졌다. 시내의 거리에 보이는 한국 업체의 간판은 더 많아졌고, 대기업 "L"사는 시내 중심지에 한국과 같은 마트 영업을 시작하였고 곧 백화점도 들어선다고 했다. 2010년대 중반 젊은 직원과 함께 한 출장에서는 나는 이미 젊지 않았다. 젊은 직원을 보며 나는 그저 정신력으로 견뎌냈다. 인니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감한 후, 저녁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니식 식사를 맛볼 수 있었다. 인니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민 2세인 한국 업체 직원이 소개해 준 요즘 핫 하다는 인니 음식점에서 소위 인니 가정식을 맛보았다. 인니어, 한국어, 영어 모두 잘하고 열심히 일하는 인니 사회 속의 한국 젊은 이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뒤, 젊은 직원은 지난 며칠간 인니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생각이 많은 듯했다.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자기도 모른 체 처음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것도 있고, 누군가 먼저 겪은 선배가 옆에서 알려 주는 것도 있고.
그것이 내 마지막 인니 출장이 되었다. 그 이듬해 나는 25여 년 간의 직장 생활의 쉼표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출장으로부터 돌아오면서 교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는 다시는 인니를 업무 관련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공사다망하던 차에 몸 컨디션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심신이 지쳤다 싶었는데 나이 들면 걸리기 쉽다는 대상포진이라는 병까지 40대 후반인 나에게 찾아와서 일주일 동안 고생했다. 즉,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리하면 안 되는 나이에 서서히 들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젊은이의 체력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 Note :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직감, 예감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냥 그런 것들이 부질없는 느낌이나 걱정으로만 지나가면 다행으로 여기고 이내 잊힌다. 하지만 상당수가 맞아떨어진다. 물론 가끔은 좋은 방향인 것도 있고 종종 나쁜 방향인 것도 있었다. 그래서 간혹 그런 직감과 예감이 아무 근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언젠가 겪었던 경험이나 다른 감정에 의한 무의식 세계로부터의 나름 근거 있는 예고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일부러 아무리 예측하고 계획해도 안 되는 것도 있었다. 계획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어느 시점에는 빨리 포기하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깨달음도 생겼다. 어쩌면 그렇게 그냥 흘러가듯이 놔두라고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인니라는 나라는 나에게 여러 가지 환경을 경험하게 했다. 기대와 인내심, 희망과 포기 등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나의 이전 글에서도 피력했지만 인니는 젊은 인력이 풍부한 역동적인 나라이고 그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 역시 그런 인물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실제로 실현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똑똑하고 좋은 지도자가 바르게 이끌고 잘 성장시키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 자연재해로부터의 피해를 줄여 나가길, 그리고 교통 문제를 비롯한 도시와 각 지역의 여러 사안들을 좋은 인프라 투자와 구축으로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나는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해질 때, 출장 말고 여유로운 사적인 여행으로 인니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 그 성장세를 몸으로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나라, 그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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