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en 이름의 탄생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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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en 이름의 탄생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6. 25. 16:09

    1991년 12월 16일 월요일,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회사 (Global Company)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1992년 2월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겨울 방학 시작 전인 12월 13일 금요일 사은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대학 4년의 학습을 마감한 때였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출근을 한 나에게 회사 선배님들은 따스한 관심과 호기심을 보여 주셨고, 회사의 모든 부서를 돌아다니며 그 해의 나를 포함 한 우리 신입 공채 6명은 자기소개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이후 배정을 받은 부서로 가서 내가 일하게 될 팀, 함께 일 할 직속 선배님들을 소개받았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글로벌 회사라서 그런지 타 한국 회사처럼 한국 직함이 따로 없었고, 영어로 된 Job Title 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함께 일하는 한국 거래처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영어 Job Title을 한국식 직함에 어색하게 끼워 맞추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잠시 후,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 본사와의 Email (당시는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우리 회사만의 컴퓨터 이메일 시스템) 등록을 해야 하고, 해외 직원들과의 업무 시 사용하는 영어 이름을 지어서 알려 달라고 했다. 다소 생소하고 갑작스러워서 고민에 빠졌다. 한 번 지으면 그래도 오래도록 사용할 것 같아서 나름 신중히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한국 이름의 영어 이니셜을 따라 K로 시작하고 싶었다. 고민하던 중, 직속 선배님이 다가와 나지막이 한마디 하셨다. 되도록 빨리 지어서 인사부에 넘기라고.. 아니면 내 이름이 타의에 의하여 꽃 이름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 부서에 Rose 도 있고 머뭇거리다 자신의 이름은 Lily 가 되었다고.. 순식간에 내 머리 안이 하얗게 되었다. 꽃 이름이라니.. 생각하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꽃 이름이 싫다기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내 이름에 예쁜 꽃의 이름은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K로 시작하는 간단하면서도 그 당시로는 무난해 보이고 왠지 스마트한 발음의 Karen으로 지어서 바로 인사부에 연락하였다. 다행히 한국 지사인 회사 내에 동일한 이름이 없어 바로 통과되었다.

    잠시 후, 우리 부서 이사님께서 나오셔서, 내게 "그래서 영어 이름을 뭐라고 지었어요?" 하고 물으셔서 Karen이라고 말씀드리니, "괜찮네.." 하고 지나가셨다. 인정의 의미인 듯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한 날, 뭐 한 것도 없이 점심시간이 되었고, 직속 선배와 식사를 하면서 영어 꽃 이름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이사님은 뭐든지 당신 마음에 들어야 직성이 풀리거나, 부서원들이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못하고 시간을 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다고, 그래서 당신이 물으셨을 때까지도 영어 이름을 아직 못 지었다고 하면, 당신 마음대로 지어서 통보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꽃 이름이 주가 되었다고 했다. Rose, Lily.. 등이 그래서 만들어졌고, 다른 때에는 입사 월에 따라 May와 June 도 탄생했다고 했다. 선배와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그 당시에는 선배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선배의 속삭임은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가 부서장이 되고 한국식 직함으로 이사가 되었던 어느 날, 미국 본사에서 젊은 직원들이 출장을 나와서 함께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 지사 직원들 대부분이 한국 이름이 별도로 존재하고 입사하면서 회사의 필요에 의하여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표시했다. 그래서 각자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며 Karen 은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고 거의 나이 든 아주머니, 할머니 같은 시니어 세대의 이름이라고 해서 웃었다.

    내가 나이 들어감은 생각지도 않고 알게 모르게 가끔 생각이 났다. 출퇴근 시 운전대를 잡으며 생각날 때마다 약간 고민을 했다. 이름을 바꿔?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인사부에서 번거로워할 것은 내 짠 밥으로 어떻게 부탁해 본다 해도 내 이름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단지 이름은 아니고, 회사에서의 나 전부였다. 그간의 내 커리어이며 상징인 것이었다. 한국 지사의 Karen으로 통했던 모든 것이었다. 변경 후 이름과 인물의 짝짓기를 발달한 IT 세상의 도움으로 자동으로 연결하고 표시해 주는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뭔가 개운치 않고 이름이 갖는 의미가 퇴색할 것 같아 그냥 생각을 접었다. 그러면서 만약 바꾼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만 해 보았다. 더 간단하면서도 트렌디하게.. K 이니셜을 고수하면서.. Kara 가 떠올랐다. 한 때 걸그룹 이름인 것이 좀 걸렸지만 그 당시 하얀색의 우아한 Kara 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혼자 멋쩍은 웃음이 났다. 예전에 그리도 손발 오그라들어했던 영어 꽃 이름 이라니... 내 자신이 웃겼다.

    다시 옛날 입사, 첫 출근 날이 기억에 소환되었다.

     

    * Note : 인생에는 크고 작은 고마움이 있다. 어렸을 때는 고마움에 즉각적인 감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그저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 직속 선배는 굳이 나에게 나지막이 알려 주었다. 내 이름을 내가 만들 자유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내게는 선택, 결정, 독립성 등 많은 것 일수도 있었다. 오랜 시간 내 커리어를 내 이름에 담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내 자존감이었다. 어떤 이는 선배 본인의 이름 탄생의 억울함과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겐 하나의 따스한 코치, 그 시작이었다. 지금 만날 수 있다면 선배에게, 정작 자신은 기억도 못 할 이 이야기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리라.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사람이 이따금 그립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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