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때문에 재수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첫사랑 때문에 재수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7. 8. 23:16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아련함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진하고도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먼저 '첫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고민해 보았다. 어린 시절,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분명 가슴 떨리게 하는 이성 친구가 있었다. 거의 매 학년, 같은 반 친구 중에 호감 가는 남자애가 있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뀌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성격상 좋은 감정을 마음속으로만 묻어두고 짝사랑을 하는 편이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하도록 은밀한 작업에 들어가거나, 제 풀에 죽거나 다른 아이로 갈아타거나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 가슴 벌렁이는 순간도 있었고 어떻게 하면 나만의 매력 발산을 하여 그 아이의 관심을 끌까 고민도 했었겠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몇몇 초등학교 동창들이 기억에 희미하게 나지만 첫사랑이라도 논하기엔 좀 가벼운 듯하다.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모두 여학교에 다녔는데 차례대로 수학, 미술, 윤리 선생님들을 연이어 한껏 좋아했으나 그분들과의 추억을 첫사랑이라 하기엔 좀 무리인 듯싶다.

     

    나의 첫사랑은 하필이면 학창 시절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3 때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나는 내 절친과 함께 학교 길 건너 독서실에서 방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등록을 했다. 그 건물 1층은 몇몇 가게들 중에 한 개가 햄버거 가게였고 2~3층이 독서실, 그리고 독서실 위층이 당구장이었다. 친구와 나는 매일 아침부터 독서실로 가서 공부를 하고 점심때가 되면 집에 돌아가기도 했으나 귀찮을 경우 1층 햄버거 가게를 갔고 오후에도 공부를 한 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 점심에 친구와 그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5~6명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들어와서 그 가게 주인 부부와 아주 친한 듯, 형과 형수라고 부르며 대화를 했고 다시 우르르 당구장으로 올라갔다. 호기심 천국인 내 절친이 주인 부부에게 그들에 대해 물으니 그들은 모두 대학생들인데 예전부터 단골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몇 번 그 무리를 마주치니 그 무리 중에 한 명이 서서히 내 눈에 들어왔다. 당시 고3인 내 눈에 대학생 오빠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오빠가 생겼던 것이었다. 그는 당시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교에 다녔고 2학년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주 마주치니 그 무리들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귀여운 시선으로 봐주고 우리는 서로 눈인사를 했다. 웃는 모습이 선해 보이는 그 오빠를 나는 짝사랑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이젠 아침에 눈을 뜨면 공부하기 위해 독서실에 가는 것이 아니고, 독서실에 갔다가 언제쯤 햄버거 가게를 가야 그 오빠와 마주치느냐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고 나는 고3인 나의 상황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햄버거 가게에서 그 오빠 무리들을 만나 가슴이 다시 콩닥거렸는데 그때 가게 문을 열고 어떤 여자가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었고 나의 첫사랑 대상 오빠는 유난히 환하게 웃었다. 알고 보니 그 오빠의 여자 친구였다. 독서실로 다시 올라가는 나는 목이 따끔하게 아프고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휑한 것을 느꼈다. 슬픔, 분노, 질투..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와 한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어서 나는 이제 학교를 다니며 주말에만 독서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눈 앞에서 멀어지면 오빠 생각이 덜 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움은 더해졌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그 햄버거 가게 건물이 보이는 복도 쪽에서 창밖으로 그 건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멍 때렸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정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날인가 그 오빠가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오빠와 대학 캠퍼스에서 마주쳐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 오빠는 손꼽히는 명문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의 여름 방학을 보낸 나는 성적이 더 떨어졌다. 그 실력으로는 그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드디어 학력고사 (그 당시의 대학 수능평가 시험 명칭) 보는 날이 되었고, 역시나 나는 원래 실력보다도 시험을 못 봤다. 어느 정도 대학은 갈 수 있었겠지만 그 오빠가 다니는 명문대는 갈 수 없었다. 그 시기에 우리 가족은 고등학교 근처의 주택에 살다가,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그 오빠가 다니는 대학에 못 갈 것이니 바로 재수를 결심하고 (그 당시에는 대학이 1차, 2차로 나뉘어 있었다) 무리하게 1차에 오빠가 다니는 대학에 지원을 하였고 당연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아마 당시 고3 담임 선생님과 우리 가족은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그 대학을 고집한 이유를. 나는 2차 대학을 지원조차 하지 않고 바로 그 당시 유명한 재수 전문 학원에 등록을 했고, 그렇게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수를 결심한 막내딸이 되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추운 어느 겨울날, 1차 대학에 낙방한 후, 2차 대학 원서로 담임 선생님과 실랑이를 한 후, 혼자서 이사 간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혼자 안는 좌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겨울바람이 휘익하고 들어와 내 뺨을 쳤는데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간간히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사람들이 나를 힐끗 보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 시선들이 안중에도 없었다. 내 인생에서의 첫 번째 실패임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 이후, 1년간은 정말 성실한 생활의 나날이었다. 나는 첫사랑 오빠를 만나기 위해 그 대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학원에서 몇몇 친구들이 생겨 쉬는 시간에 대화를 간간히 나누기도 했지만, 친해지고자 다가오는 남학생들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내 첫사랑 오빠만 생각했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재수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조금 올랐다고 해도, 한번 낙방한 경험 때문에 안전 지향의 지원을 해야 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우리 부모님의 결혼과 자식 농사가 늦었고 더군다나 나는 4 자매에서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으니 부모님 연세가 많으셨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수를 한다고 하니, 가족들 모두 마음속으로 안쓰러우면서도 탐탁스럽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냥 대충 대학을 가도 되는데.. 했을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즈음이 되자 스스로의 깨달음이 생겼다. 나의 첫사랑 오빠를 만나려면 굳이 그 대학 캠퍼스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나는 고민 끝에 내가 가고픈 대학을 결정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기억도 아직까지 또렷하다. 당시 대학과 과를 지원한 후, 그 대학에 가서 시험을 치른 후 대강당 앞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하루 종일 시험에 지친 몸을 가누며 학교 정문 앞에서 엄마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고민할 때,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초겨울 하늘이 더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나에게 언니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다. 시험을 본 후, 발표가 있기까지 거의 1 달반을 백수로 살아가는 나에게, 언니들은 긴장하고 있는 내가 가여웠는지 돌아가며 재미난 일들은 함께 하거나 좋은 곳에 데리고 가 주었다. 밤안개가 자욱했던 어느 겨울날, 나는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첫사랑 오빠 때문에 감행한 나의 재수 생활이 시작과 좋은 마무리로 마감되었다.

     

    내 첫사랑을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짝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누군가에게 미리 말하였고 그 누군가가 그 오빠를 만나기 위해 꼭 그 대학 캠퍼스를 갈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해주었다면?

    그런데 나는 그 첫사랑 오빠를 그 후 만났을까? 내 관심은 서서히 다른 사람, 다른 것으로 옮겨졌고, 나는 그 오빠를 만나기 위해 막연히 그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거나 다른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운명이란 것을 믿는 나는, '만날 운명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겠지..' 하고 생각하였고, 고3 겨울 이후로 한 번도, 스쳐 지나가면서라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후, 그 대학을 다니던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몇 번 그 대학을 간 적은 있었지만 그 오빠를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그 오빠가 내 첫사랑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고, 그 사람은 내가 자기 때문에 재수한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하필이면 고3 때 그놈의 첫사랑이 오다니.. 그것이 인생인가 보다.

     

    * Note : 나는 인연, 운명 등을 중요시한다. 맹신한다기보다 그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믿는다. 재수는 아무나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러나 반드시 하고 싶다면 해야 한다. 긴 인생에 있어서 일 년, 아니 그 이상의 시도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짧은 투자 일수도 있다. 내게 있었던 인생의 첫 번째 패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고했던 재수라는 선택과 의지, 그것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일 년의 재수 생활 이후, 내가 다시 대학 원서를 위해 고등학교를 찾았을 때 내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놀라고 긴장하셨다고 했다. 내 겉모습은 그대로이고 내 성적은 안정적이며 내 눈빛의 깊이는 범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뜻대로 원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아무 말 없이 진행해주셨다.

     

    우리 집 막내는 고집이 세고 결국 지맘대로 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 관한 것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 결과에 전적으로 내 탓을 하고, 남 탓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내 결정에 후회하는 것을 아주 많이 싫어한다.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만한 상황이며 그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라고 믿는다. 1년간의 재수 생활을 통하여 또 다른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재수를 겪고 들어간 대학에서 내 인생 최고의 절친들을 만나게 되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꼭 나처럼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내 인생 결정의 주체는 나, 스스로여야 한다는 것이고 모든 것은 내 탓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