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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 되어버린 싱글로 살아가기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6. 27. 22:43
요즘은 급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한국이란 사회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일 민족임을 강조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기업에서 모바일 폰 모델을 바로 바꿔 출시하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빠르게 변화했던 것 같다. 단일 민족이란 말은 이제 예전에나 사용했던 단어가 되었고 그만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났고 거리에 외국인은 점차 많아졌다.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 나이 또래보다도 더 개방된 사람인 것 같다. 예전부터 외국인과의 관계, 성소수자, 종교 등..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하여 이질감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남녀가 만나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연인이 되거나 부부가 될 때도 "다름" 때문에 갈등이 생기게 마련인데, 하물며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어도 다른데, 지구 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어찌 다 내 생각, 내 마음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수밖에 없다는 그 당연한 이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기본적이 생각이다.
나도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대학 졸업을 한 후, (내 주관적 관점에서) 아빠처럼 키 크고 인물 좋고 착한 남자, 이왕이면 경제력까지 갖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3학년 정도가 되자, 졸업하자 마자는 좀 이른 것 같고, 내 리즈 생활을 좀 더 만끽하고자, 한몇 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며 그래도 그때까지의 학업이 헛되지 않게 경험을 한 후, 적당한 때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이 좀 바뀌었다.
졸업과 동시에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업무를 배워갔다. 이 일이 나에게 적합한지 아닌지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은 글로벌 회사를 다니게 되어 그 당시에는 좀처럼 없었던, 토/일요일 이틀을 쉬었다. 물론 공식적인 일이 있거나 미국 본사 사람들이 출장을 나와 피치 못할 경우 업무를 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 토요일도 휴무였고 주 5일제 근무를 하였으니 이것은 그 당시 분명 큰 장점이었다.
바쁘게 업무를 익히고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다 보니 나이도 한 살, 두 살 먹고 있었다. 당연히 주변에서 남자 친구와 결혼에 대한 주제와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행히 나의 부모님은 가끔 내 눈치를 살피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실 때도 있었지만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시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4 자매 중 막내였는데 위로 언니 3명이 제 때 결혼을 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미 75% 의 숙제를 마감한 상태였다. 3번 언니와 나의 나이 차이가 4살이었으니 3번 언니까지 결혼한 후, 부모님께서는 이제 하나 남은 것에 대한 약간의 안도감으로 다소 숨 고르기에 들어가셨던 것 같았다. 문제는 그렇게 좀 안도하다가 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내가 이렇게 혼자 계속 살게 될 줄 몰랐다. 이럴 계획은 아니었으니까. 사십 대까지만 해도 독신주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러다 자연스럽게 나와 맞는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친한 친구들도 친한 후배들도 거의 결혼을 하였고, 나와 관계된 모든 지인 그룹에서도 이제 싱글은 몇 명 안 남았으니 나 역시 소수자 그룹에 속해 있었다.
모든 집안 행사를 양력으로 하는 우리 가족들은 매 해 양력 1월 1일이 되면 가족 모두 모여 세배를 드렸는데 어느 시기부터 세배 드릴 때 부모님은 구체적인 덕담보다는 의미 가득 한 표정을 날리셨고, 또 어느 시기부터는 내가 먼저 엄마 손을 꼭 잡고 어쨌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선수를 쳤다. 언니들/형부들 포함 가족들은 그저 어이없는 미소로 답하였다.
오히려 나의 절친 그룹은 어떤 면에서는 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약간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들의 결혼 생활이 평탄할 때는 내 결혼의 시급함이 주제가 되고 나의 남자 보는 눈을 추측하며 비평도 했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이 가끔 갈등에 휩싸이면 결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고, 결혼했어도 외롭다고 했다.
그렇게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의 회사에서도 이건 너무 늦었다고 생각이 되었나 보다. 어떤 선배는 그냥 적당한 사람과 해라, 급기야 어떤 선배는 더 늦기 전에 일단 애부터 낳으란다. 하하.. 어느 날 테헤란로에 나가서 적당한 남자가 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당신!' 하고 결정한 후 급하니 애부터 낳자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또 상대방 생각은 무시하란 말인가? 그 당시 한국 회사를 다녔다면 결혼 후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혼을 하게 되면 바로 퇴사를 생각하거나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중압감은 더 심했고 그야말로 경력 단절이 되기 쉬웠다. 운 좋게도 우리 회사는 그 부분에서는 꿈의 회사였고 결혼에서도 임신/출산 휴가에서도 눈치를 받지 않았으니, 그 안에서의 싱글인 내가 의문 투성이의 존재로 남게 되었다. 막상 내겐 점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갔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상대를 만나고 결혼을 결심한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도 그렇지만 업무 관계에 있는 모든 한국 업체 담당자들은 당시 한국 문화와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나의 결혼 유무가 가끔 그들의 이야깃거리로 회자되었던 모양이었다. 삼십 대 후반 정도가 되었을 때, 어느 업체 담당자와 업무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상대방이 딸 바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앞으로 딸이 어떻게 컸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눈으로 이유를 물으니, 대학 졸업하고 이런 환경의 직장에서 자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워낙 농담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 그거 쉬운 것 아닌데요.." 하고 이내 나의 잘난 척을 사과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렇다고 인정해서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결혼과 임신/출산에 구애받지 않은 좋은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면서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냐며 왜 평범한 삶을 택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것은 자기만의 생각과 궁금증이 아니고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업체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어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왠지 내가 그들이 말하는 평범함 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안주 거리 정도의 화제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해졌다. 그는 더 나아가서 나에게 혹시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내가 멍~ 한 표정으로 대답을 못 하자 조금은 미안했는지 내가 꽤 괜찮은 여자인데 아직도 싱글로 남아 있으니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찾다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를 수 있지만, 나는 확실히 성 적으로는 남자에게 끌렸다. 꽤 괜찮은 여자라는 말에 쿨 한 척하며 아직 인연을 못 만났을 뿐이라고 하고 다시 업무 이야기로 돌아갔다.
시대가 아무리 급변해도 아직도 명절 때가 되면 대중 매체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가족 모두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 서로 스트레스를 주는 대화들을 삼가기, 그중에 취업과 함께 혼사 이야기가 있다. 그럼에도 혼자 만의 명절을 즐기기도 한다고 했다. 좀 웃기는 일은 어느 집안이든 잘 살펴보면 항상 목표물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싱글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것 같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꽤 보수적이었던 우리나라가 왜 이리 빨리 변했는지 의아할 만큼, 결혼을 하는 연령과 아이를 갖는 나이가 점점 높아졌다. 소위 이십 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비교적 빠른 것에 속했다. 더 적응이 안 되는 것은 가족 중심 (Family oriented) 사회인 다른 나라 직원들은 거의 이십 대에 프러포즈를 못 주고받으면 초조해진다고 했다. 이제 나는 한국에서 싱글로 살아가기가 아니고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싱글로 살아가기 자체가 도전이 되어 버린 심정이 되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오래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주 가끔 역차별을 받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외국이 더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소위 적절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는 것도 일종의 정상적인 인간관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예를 들어 정치나 어떤 형식의 그룹에서 리더십을 논할 때에도 원만한 가정생활은 흠 잡힐 일이 적지만, 싱글은 좀 더 흠집 내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그를 통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더 성장하고 성숙한다는 의미 이기도 한 것 같고, 이 부분에 있어선 나 개인적으로는 반박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하겠고, 그 점을 존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싱글인 나는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처음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을 나처럼 싱글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대화중에 '아, 결혼을 했구나, 자식이 있구나..' 하면서 퍼즐을 맞춰간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반대였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결혼한 아줌마로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필요에 의하여 내가 아직 싱글임을 밝히면 대부분 의외라는 표정으로 놀란다. 기준점이 자기의 주관적인 시점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사회 통념까지 더하면 나는 절대적으로 모든 추측에서 불리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작년 연말에 오랜만에 지인들과의 모임 장소에 갔다. 그 모임에 뜻밖의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술자리에서 들려오는 폴 킴의 노래에 취해 있었다. "요즘 핫한 폴 킴.. 하긴 거의 아들뻘이지.. " 하고 웃자 누군가 내게 질문을 했다. 나를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이 아이들은 몇 살인데 그러냐고 묻길래 얼떨결에 싱글임을 커밍아웃하였다. 바로 다시 훅 들어왔다. "아니, 대체 뭐가 문제이길래 아직도 혼자이냐고, 처음부터 싱글이냐 아니면 갔다 왔냐" 고 되물었다.
기분이 괜찮을 때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할 때도 있지만, 아직도 내 심사가 뒤틀려 있을 때는 약간 화가 난다. '아니 왜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넘겨 집을까? 내가 뭐 문제라도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뭐 어쩌겠는가. 내 삶이 이렇게 흘러온 것을.. 그래도 불만은 없잖아. 솔직히 말해서 어떨 땐 즐기잖아. 나만의 특별함을. TV 프로그램 중에 "나 혼자 산다"가 있다. 좋아하고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대중이 모르는 일반 사람인, 나도 매일 현실판 "나 혼자 산다"를 찍고 산다.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 Note : 어쩌다가 혼자 사는 것도 도전이 되어 버렸다. 근데 솔직히 좋을 때가 더 많다.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다음 생에 태어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 있었다. 어쩌면 안 해 본 것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생길 법도 한데, 난 솔직히 내가 여자인 것이 좋고 싱글인 점도 좋다. 다시 태어나도 또 여자로 싱글로 살아도 된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영원한 비혼 주의자도 아니다. 아직도 남자와의 연애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더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 결혼보다는 나 자체가 더 능력 있고,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노력 여부에 달려 있고 아직 그 노력이 부족하여 현재 이런 상태로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와 잘 맞아서 손 잡고 함께 할 내 편이 있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나의 의도이든 아니든 다소 평범하지 않은 도전인 상태에 있게 되더라도, 소위 뜻밖의 소수 그룹에 있게 되더라도 내가 그 상황에 만족하거나, 불행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까? 물론 가끔 편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현 상황의 삶이 불만스럽지 않다면 괜찮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그리고 그 정답이 무엇이라고 누가 감히 논 할 수 있겠는가.
단 한 가지, 간혹 부모님 중에 "네 능력만 된다면 혼자 사는 것도 상관없어"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믿지는 말길.. 그 혼자 사는 것도 상관없을 능력이라는 것이 언제쯤에 생길지.. 대부분 부모님의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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