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1편, 마닐라 오피스에서 6주간 근무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필리핀 1편, 마닐라 오피스에서 6주간 근무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7. 11. 23:16

    대학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회사 (Global Company)에 취업한 나는, 나의 세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다른 사람 대비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비교적 젊은 시기에 찾아왔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에도 대부분의 그 당시 한국 사회가 그렇듯 나는 부모님 그늘 하의 생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입사 후, 정확히 5년이 되었던 어느 겨울에 나는 승진을 하게 되었고 한국 직책으로 따지면 과장급이 되어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독립적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단계에 올랐다. 1996년 12월 말의 어느 겨울날, 갑자기 우리 한국 지사 오피스의 최고 책임자이신 지점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지점장님 방으로 향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면서 속으로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면서 괜히 긴장했다. 노크를 하고 지점장님 방으로 들어가니 항상 그렇듯이 온화한 미소로 환히 나를 반겨 주셨다. 우리 지점장님께서는 당시 그 업계에서 호인으로 정평이 나셨던 훌륭한 분이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분들 중에 한 분이시다.

     

    자리에 앉자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이내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지사 중 하나인 필리핀의 마닐라 오피스에서 그들의 비즈니스를 도와줄 경험 있는 직원 한 명을 파견 요청 해왔는데, 본사에서도 그런 도움을 줄 지사로는 똑똑한 직원들이 많은 한국 오피스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며 흐뭇해하셨다. 망설임 없이 지점장님께서는 수락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시면서 한국을 대표해서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네?!!" 어안이 벙벙했다. 이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서프라이즈 이란 말인가?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저는 승진 한지 고작 일주일도 안되었습니다.. " 하고 이어 말을 하려 하였는데, 지점장님께선 "그러니까 딱 좋을 때지요, 가서 실력 발휘를 마음껏 펼치고 오면 됩니다" 하셨다. 마치 정답은 이미 '나'라고 정해져 있고 나에겐 이미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하긴 입사할 당시에 인사부에서 입사 계약 서류를 정식으로 작성했었다. 그 계약 항목 중에는 해외 출장이나 근무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고 나는 이미 수락한다는 사인을 한 바 있었다. 나는 출국은 준비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적어도 약 6주간 머물러야 한다는 답변을 듣고는 자세한 기타 답변은 부서장이신 이사님으로부터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방을 나왔다.

     

    '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자리로 돌아와 들었던 말씀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우리 한국 오피스 직원들 명단과 달력을 번갈아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나' 여야 하는지.. 일단 내가 승진한 그즈음 필리핀 오피스에서 원하던 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추려졌을 것이었다. 때는 연말연시였다. 가족과 떨어져서 근무하기에 다소 자유로운 싱글인 대상자 중에 내가 확 들어왔다. 회사 입장에서 보니 내가 적임자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 자체도 딱히 거부할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후 이사님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연말연초를 가까스로 넘겨 이듬해, 1월 초에 출국을 하기로 했고, 우리나라 구정 연휴 전에 다시 귀국하는 조건으로 계산하니 약 6주간이 결정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워낙 여행과 새로운 나라의 경험을 선호하시는 아빠는 나보다 더 흥분하시며 바로 필리핀 마닐라에 대한 정보 수집에 들어가셨다. 물론 아직도 그저 어리게만 보이는 막내딸을 혼자 보내는 부모님은 걱정하셨지만 이런 것이 직장 생활의 단면이라고 여기셨다. 그 당시 3명의 언니들이 모두 결혼을 한 후, 이미 나는 4명의 조카가 생겼다. 아직 어리지만 그들에겐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막내 이모의 외국 생활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오래 사귀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혼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즈음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장기 출장을 이유로 대화를 시작하여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이별에 서로 동의를 했다. 서로 크게 상처를 주지 않았고, 잘 지내라는 끝 인사를 건네었다. 그의 나를 챙겨주는 마지막 인사말이 인상적이었다. 제지의 품질은 한국이 최고로 좋은데 한 달 넘게 타지에 있어야 하니 생리대를 잘 챙겨서 가라고 했다. 경상도 남자였는데 자상함도 나름 있었다.

     

    우리 가족은 모든 행사를 양력으로 하니, 1월 1일 가족 간의 새해 인사를 하는 가족 모임을 하고 며칠 후, 나는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에 장기 체류에 필요한 2개의 무거운 가방들을 끌고,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향해 떠났다. 질 좋은 생리대도 충분히 챙겨서.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1월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의 습하고 더운 기후가 훅 하고 느껴졌고, 이내 내가 6주간 머물게 될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마닐라 지사 오피스는 마닐라의 시내 한 복판의 안전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 도시를 가로질러 걸어서 15분 정도의 위치에 호텔이 있었다. 그 지역은 도시 한 복판으로 외국인들이 거리에 많아서 치안은 안전하게 느껴졌다. 당시에도 필리핀은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본사의 지침에 따라 가장 안전하고, 타지 음식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회사의 배려가 있었다.

     

    그때부터 다소 화려한 나의 마닐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한창 도약을 향해 비상하려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의 수도, 시내 한 복판에 있는 호텔이니 얼마나 좋았을 것이며 6주라는 장기 체류의 이점을 안고 한국의 젊은 여자가 혼자 호텔 생활을 했으니 상상해보라. 아침마다 샤워를 한 후, 잘 차려진 조식을 먹으러 호텔 로비로 내려간다.

    매일 마주하는 호텔 직원들은 아시아에서도 다소 하얀 피부를 한 여자가 오래도록 머무르니 당연히 관심을 갖고 주시하였고 이후 며칠이 지나니 내 식성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즐겨 먹는 메뉴들을 잘 알고 매일 그날 아침의 식재료 신선도에 따라 권해 주었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공주 대접을 받아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더 좋은 것은 아무래도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호텔이다 보니 직원들도 약간 다문화 혈통으로 키가 크고 체격도 좋고 남자들이 참으로 인물도 좋고 미소도 멋졌다. 당시 젊은 여성이던 내 눈이 호강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나는 최대한 땀이 적게 나는 여유로운 속도로 도시를 가로질러 마닐라 오피스로 향했다.

     

    내게 맡겨진 업무는 한국에서 내가 하던 일과 흡사했다. 단지 취급하는 아이템이 다르고, 현지 직원들과 거래처가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니 모든 것은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업무는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의사소통이 다소 힘들었다.  과거의 역사로 인해 필리핀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교육만 받아도 제법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단지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섞이다 보니 발음을 알아듣는 것이 나 같은 외국인에겐 특히 어려웠다. 마닐라 오피스의 지점장님은 과거의 영어 선생님 경력이 있어서 수월했으나 현장 직원들과 거래처 직원들의 발음은 여러 번 들으면서 상황에 따라 거의 유추를 해야 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듣기 힘든 것이 인도계 발음이 섞인 강한 엑센트인데, 어느 날 회사 직원이 연신 "오리딕 오리딕"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도무지 오리딕이 뭔가 하다가 대화 속에서 "오리지널 (Original)" 임을 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자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했다. 모든 진행 상황을 미국 본사와 내가 직접 소통을 하면 좋은데, 프로그램의 주체 (Ownership)이 필리핀 오피스에 있으니 나는 필리핀 직원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소통해야 했다. 당연히 의사소통에 또 다른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여 답답함과 함께 나 자체가 업무로부터 가려져있는 듯하였다. 마치 우렁각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아직 어려서였는지 그때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 Note : 사회로 나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별안간 뜻밖의 제안을 받는 순간이 있다. 물론 말이 제안이지 거의 지시 사안일 경우가 더 많다. 생각지도 않는 일이어서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숨을 한번 길게 들이쉬고 잠시 쉬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왜 나일까?' 등등 교차하는 만감을 정리해 보면 된다. 가만히 생각을 하다 보면 스스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윗 분들, 선배님들과 대화로 조율하는 것도 가능하다. 괜히 미리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내가 이해되는 부분과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부분,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잘 정리하여 되도록 감정을 섞지 말고 최대한 예의 있게 다가가면 된다.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도 잘 안되었던 부분들을 뒤돌아 보면서 반성하고 되새기며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나도 그렇게 불완전하고 좀 모자랐던 사람이었다. 깨달음과 끊임없는 배움은 현재도 물론 진행형이다.

     

    그리고 절대 안되는 상황이나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한번 의외의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고 예상 밖의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항상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경험도 나만의 가치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그 당시 해외 근무 경험을 한 후, 회사 내에서 나는 졸지에 한동안 글로벌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니 업무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당시 아무리 주체가 필리핀 오피스에 있었더라도 관계자와 잘 의논하여 의사소통의 주체를 간접적이 아니고 직접 내가 할 수 있도록 건의해 보았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그렇더라면 좀 더 본사와의 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짧은 기간이나마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내가 더 내 의사 표현을 했더라면 어쩌면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었을 것인데 내가 표현을 하지 않아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었다. 분명히 주어진 역할은 무사히 마감하고 돌아왔고 귀국 후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나 어쩌면 그 일부는 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한국인들의 기대치가 좀 높을 수도 있으나 더욱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영어 단어로 말하면 Good Enough 나 Great에 머무르지 않고, Amazing, Excellent 하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