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윤리의 기본, 떡값 안받기 그렇게 어려운가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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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윤리의 기본, 떡값 안받기 그렇게 어려운가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0. 17. 22:17

    대학 졸업식을 2달 앞두고 12월 중순에 글로벌 기업(Global Company)에 입사하게 되었다. 12월 16일이 내 첫 직장으로의 첫 출근일 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회사 자체가 점차 연말 분위기에 휩싸였다. 미국 본사 직원들은 크리스마스 전 주부터 벌써 연말연시 개인 휴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나는 우리 오피스에 업무 관련으로 방문하는 한국 업체들과 첫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말연시에 맞춰 인사를 하러 방문하는 업체 담당자들이 많았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업체들과의 크고 작은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나는 그저 선배님들을 따라가서 맛난 식사를 함께 하였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부서장님께서 우리 부서원들 모두에게 작은 봉투 하나씩을 건네주시면서 수고했고,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라고 격려해 주셨다. 봉투 안에는 나의 첫 월급의 약 10%에 해당하는 금액의 현찰이 있었고 예기치 않은 것이라 다소 놀랐지만 이내 가족들의 선물을 좀 더 넉넉히 살 수 있어서 그저 기쁘고 이런 것이 사회생활의 묘미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이후 그것은 우리 회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느 거래처 사장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의 소위 거래처로부터의 '떡값'(이후, 현금뿐 아니고 모든 선물을 포함하여 지칭하겠다)이었던 것이었다. 이어 설이 되고 추석이 되면 어떻게 내가 사는 주소를 알았는지 과일, 와인, 고기, 굴비나 옥돔 같은 생선 등 각종 선물들이 도착했다. 역시나 거래처로부터 배달된 것이었다. 명절 준비를 하시는 부모님은 딸 덕분이라며 좋아하셨다. 이후 상품권 문화가 생기면서 명절이 되면 상품권 선물도 받았다. 항상 받으면서도 이렇게 받아도 되나 하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부서장님이나 선배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업체에서 선물로 무엇을 보내셨더라고. 다행히도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부서 팀원들의 대화는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기억한다. 아무도 몰래 뒤에서 선물을 받았다는 어두운 기분에서 벗어나고픈 심리였던 것 같다.

     

    여기저기 직원수가 많은 글로벌 회사로서 한 번 정해진 규정에 있어서는 아주 확고했다. 미국 본사와 각 해외 지사들마다의 문화가 다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 예외 조항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고 반드시 지키도록 했다. 회사는 철저한 연봉제이고 그 외의 선물이나 명절 보너스 같은 부수적인 것이 없었다. 회사 자체로부터의 월급 외에 기대할 것이 없으니 명절이 되었을 때, 거래처들로부터의 선물들을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도 인사부에서는 분명히 공식적으로는 거래처로부터의 선물은 사양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명절 시기, 한국의 이른바 '떡값' 문화를 도가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는 큰 문제로까지 가시화시키지는 않았다.

     

    점차 시간이 흘러 나도 회사 생활에 적응하여 익숙해지고, 거래처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도 무난해졌던 시점이었다. 회사 내의 여러 부서 중, 우리 부서는 본사와 함께 각 아이템(Item) 별로 적절한 업체를 선정하는 업무 담당이었다면 다른 부서는 그 업체가 생산한 제품들을 미국으로 선적하기 전에 검사를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거래 업체들은 우리 부서와는 아이템 선정과 수주를 위해, 다른 부서와는 생산된 아이템의 검사 통과를 위해 업무를 해야 했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생존 방식에서 보면 우리는 '갑'이었고, 업체는 '을'이었다. 명절 선물을 좋은 것을 보낸다고 어떤 특정 업체에게 유리하도록 업무를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판단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였다. 선물을 보내고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치는 업체보다, 선물 없이도 사고 없이 일 잘하는 업체가 당연히 누구에게나 선호 대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내 마음과 같지는 않았나 보다. 차츰 업체들의 뒷 제보에 의하여 비리를 듣게 되기도 하였다. 검사를 담당하는 부서의 일부 직원들이 한창 바쁜 여름철이 다가오면 여름 휴가비라는 것을 은근이 바라고 그것이 없이는 제때 검사를 해주지 않거나, 별 이상도 없는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서 한 번에 통과시켜주지 않고 재작업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너무 기가 막히고 놀랐다. 불의를 감당하지 못하고 선배에게 조용히 이야기하니 자기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부서장님께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다음에 어찌 처리되었는지는 어린 나로서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의 경력이 늘어가면서, 중남미 국가들로 2번째 출장은 나 혼가 가게 되었다. 과테말라(Guatemala)에 도착하여 한 업체의 공장을 방문하니 평소에도 나를 예뻐해 주시던 업체 사장님도 출장을 나와 계셨다. 사장님은 회장님을 모시고 나오셨다고 했다. 그 업체 공장 일정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사장님께서 뭔가 서류 봉투 같은 것을 주셨다. 업무 관련 서류인가 싶어서 얼떨결에 받고 차에 올라서 열어 보았다. 사장님께서는 손수 자필로, 회장님 모시고 와서 선약과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 식사 한 끼도 함께 못하게 되어 아쉽다며 안전히 출장 일정 마치라고 메모를 남기셨다. 그리고 비상금이라며 남기신 미국 달러가 동봉되어 있었다. 금액에 놀랍기도 했다. 평소에 그분의 인품을 알고 있었기에 자식벌 되는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주셨는지 이해는 되었지만 출장 내내 마음에 걸려서 고민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도 메모를 작성했다. 사장님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안전히 돌아왔다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비상금은 마음으로 잘 받았다고. 다행히 비상사태는 일어나지 않아서 돌려 드린다고 썼다. 손편지와 함께 미국 달러 그대로를 동봉하여 그 업체 직원 편에 사장님께 전달한 후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세월이 흘렀다. 점차 기업 윤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대두되었다. 우리 지사에도 변해가는 사회적 윤리 의식, 기업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간 어느 정도 받아들였던 명절 떡값, 선물들을 불편해하며 거부하고 업체들을 자제시켰다.  

     

    점차 글로벌 회사 전체의 기업 윤리를 강화하는 시기가 왔다. 최고의 회사를 향해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 목표인 회사로서는 당연히 사회적 가치와 이미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본사 내에서부터,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나라의 지사에도 기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분위기를 쇄신해 나갔다. 회사는 외부 기관의 자문을 받기도 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윤리 부분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와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모든 업체로부터의 그 어떤 금전적 가치가 있는 금품, 물품 등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 돈 1달러라 할지라도 돈으로 가치 매김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른바 '떡값' 안 받기 문화는 상당히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회사의 모든 직원은 그 어떤 금전적 가치도 취하면 안 되었고, 발견 즉시 자진해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실제로 이후, 본사와 몇몇 지사에서 그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던 사례들도 있었으니 얼마나 강하게 실제로 시행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시행되었을 당시는 곳곳에서 문제 제기와 질문도 많았다. 한국 포함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명절이 되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예의와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고, 중남미 지역의 나라들은 형성된 관계들과 자유롭게 파티를 개최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거래 업체와의 부수적인 금전적 요인이 발생하는 일체의 행위 모두를 금지하였으니 본사에 질문도 많고 건의 사항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소한 것들을 예외적으로 허락해 주면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어느새 조금씩 한계를 벗어난 것들이 곧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잘 알고 있었다. 방지 차원에서 어떤 예외 조항도 금지하니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적응해 나가고 업체들을 계도하는데도 스스로 적극적이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한국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기본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처음에는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나 보다. 때가 되면 상품권을 들고 찾아왔고, 완강히 거부하니 직원들이 없을 때, 책상 위 컴퓨터 자판 아래, 서랍 같은 곳에 몰래 숨겨 놓고 갔다. 직원들은 어느 순간 발견하면 놀라서 돌려주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서 실랑이가 오갔다. 직원들의 주소지는 절대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인사부에서 단속했다. 혹시나 도착하는 물품들은 바로 업체로 되돌려 보냈다. 과일이나 유통 기한이 있는 선물이 도착해서 시간차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느 업체인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을 소요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한 경우, 회사에서 지정한 사회 복지 단체에 기부하고 회사의 거래 업체들이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몇 번의 명절이 갖가지 웃지 못할 사연을 남기고 지나자 비로소 제 자리를 잡아갔다. 업체들 사이에서도 우리 회사는 이제 그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차츰 굳어져 갔다.

     

    직원들은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믿고 싶다. 대부분은 그 예전부터 관행처럼 이어 오던 소위 '떡값' 문화가 사실 더 부담스러웠다. 업무에서는 철저히 객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업체마다 강/약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가시화되는데 어떤 개인의 감싸기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것도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훌륭한 업무 성적으로 우리 회사에도 기여하고 업체 스스로도 성장하는 것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임을 알기에 소위 떡값을 금지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 갔다. 그것은 이상적이고 건강한 기업 윤리 문화의 시작이었다.

     

    * Note :  25여 년 간 큰 틀에서 보면 한 회사에 종사하여 일하면서 나도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 걱정과 고민 속에서 단 며칠도 무난하고 평탄하게 넘어간 시간이 없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울타리 조직 안에서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계속 생각하고 되뇌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사회 속에서 불평등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들에 분노한다. 객관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투명하게 가시화된 것을 믿는다. 개인적인 사사로움으로 이득과 금전적 이윤을 챙기는 것에 화가 난다. 그리고 이익에 편승되지 못함은 물론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면 그 화는 어느 시점에 폭발한다.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윤리를 논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 기업 이미지와 회사 브랜드 평판을 위한 마케팅의 일종으로만 선전하고 실제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직원들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완전 범죄는 없듯이 사적으로 사사로운 이윤을 챙기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고, 사람이라면 불의나 부당함의 대상이 언젠가는 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당당하다. 성공하려면 그 조직 안의 팀원들 모두 바르고 정직해야 하고, 그러려면 회사가 먼저 팀원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이 바르고 정직해야 한다. 말로만 보여주기 식이 아니고, 직접 실행하는 기업이 성공한다. 그 안에는 기업 윤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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