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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잘하기 (by 바보 멍청이)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0. 31. 22:36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 때가 있다. 여자든 남자든 첫인상이 좋은, 호감이 가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잘 보이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원래의 자기의 모습보다도 뭔가 더 포장을 하고 꾸미게 되는 것도 포함된다. 원래의 내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가까운 사람들은 나의 실체를 이미 잘 알거나 알아가고 있는 사이이므로 그만큼 편하게 대하게 된다. 가족 관계가 제일 대표적인 예이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의 경우는 내 3명의 언니들은 아주 가깝고 나의 있는 그대의 모습을 드러내도 되기 때문에 편하고 그만큼 잘 보이려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특히 대부분 경우, 딸들은 엄마와 아주 가깝기 때문에 종종 싸우기도 하고 싸운 후 보통은 화해도 없이 지나간다. 그냥 서로 뒤끝 없이 지나가길 바란다. 나쁘게 말하면 너무 함부로 대하여 나중에 후회할 일도 많다. 나의 경우도 예민한 학창 시절과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짜증을 엄마한테 다 쏟아부었고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후회가 사무치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소홀할 수 있는 가족들에게 이제라도 쑥스러워하지 않고 자주 사랑한다고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이든 글이든 온갖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베프라고 할 정도의 오랜 친구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나 함께 고생한 사회에서의 지인들 모두 소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다. 가족만큼은 아니어도 나를 잘 아니까, 안다는 전제하에 계속 이어지는 관계가 편하고 좋다.
캄보디아 프롬펜으로 출장을 간 시기의 일이었다. 마지막 일정을 소화한 후 오후가 되었고 거의 자정 무렵의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출장을 떠나기 전에 캄보디아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던 업체의 오래된 지인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여 그가 시간이 가능하면 밤 비행기로 떠나기 전에 이른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해놓았었다.
그는 해외 업체로 발령이 나기 전까지 나와 10년이 넘도록 업무를 같이 한 사람이었다. 내가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업체와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그때부터 알게 되어 함께 일을 하였으니 사회생활의 초반기부터 일을 했었다. 업무로 만나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며 일을 하였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이미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 업체와의 비즈니스가 오래되고 점점 우리 회사와 함께 성장을 했으니 거의 한 회사의 직원 같았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 보면 업체는 을의 위치이고 인정하기 미안하게도 우리 회사가 갑의 입장이었으니 나에게는 좀 더 잘해주려고 신경 썼을 것이다. 또한 일의 상황으로 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내 성질을 많이 받아 주었던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고 해결해 가면서 사회생활에서의 동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담당 부서가 바뀌면서 이후 비즈니스 관계는 줄었을 시기에 그는 해외로 발령이 났다. 처음에는 중남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내가 중남미 지역으로 출장을 갔을 때 만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동남아시아 쪽으로 이동하여 캄보디아까지 가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다행히 저녁 식사를 할 여유가 생겨서 다시 연락을 취했다. 프롬펜 시내의 어느 한식과 일식을 섞어 놓은 듯한 국적 불명의 음식점에서 재회를 했다. 다시 만난 순간 두 가지로 놀라고 당황했다. 하나는 그의 수척한 모습에 놀랐다. 얼굴도 몸도 너무 말라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예전만큼 나를 아주 반가워하지 않아서 당황했다. 그 보다 앞선 몇 년 전, 중남미 출장에서 만났을 때는 서로 너무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손을 잡고 빙빙 돌며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프롬펜에서는 그저 미소로 인사만 했다. 나만 좋아서 마구 웃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는 그의 마른 모습이 너무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안부를 한꺼번에 쏟아 내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건강은 괜찮냐, 가족들은 잘 있냐, 가족들은 서울에 있냐, 여기 같이 나와 있냐, 와이프와 딸, 아들 안부 등 계속 질문만 해댔고 그는 나의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변만 했다.
서로 오랜만에 만나 저녁과 함께 간단한 반주를 하였다. 예전엔 일하면서 술과 담배를 많이 했던 그였다. 그래서 부쩍 마른 그의 안부가 걱정될 정도였다. 어느 정도 술기가 오르자 그가 나에게 원망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왜 예전에 자기가 전화했는데 그렇게 쌀쌀맞게 받았냐고 했다. 나는 뜻밖의 질문에 머릿속으로 재빨리 기억의 회로를 되돌려 보았다. '내가?' '언제 그랬지?' 하는 눈빛으로 다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자기가 중남미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재발령이 나면서 왔던 시기에 내게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아득한 기억 속에 희미하게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 중요한 회의 시간 임박하여 재빨리 자료를 만들고 가려던 참이었고, 내 자리에 전화가 울려서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 받았는데 그가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나는 바쁘다며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전화하라고 했는데 그는 너무 오랜만이라며 계속 이어갈 기세였고, 나는 급하여 바쁘다며 급히 끊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상황을 기억해내며 말했는데 그의 표정은 내내 밝지 않고 변명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화제를 돌리고 분위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건강은 정말 괜찮냐고 안부를 계속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근래 너무 피곤하고 쉽게 지친다며 안 그래도 조만간 휴가를 내고 서울 가서 건강검진을 받을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꼭 그렇게 하라고, 한시라도 빨리 그렇게 하고, 서울 도착하면 반드시 다시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 공항으로 향했다.
출장 후, 서울로 돌아와 정신없는 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나는 충격스런 소식을 듣고 잠시 넋 나간 듯 멍하니 있었다. 업체들의 소문으로 그가 서울로 돌아온 얼마 후 사망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먹먹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잘 알고 함께 일했던 몇 명과 함께 문상을 갔다. 그의 와이프, 아직 어린 딸과 아들을 보니 울컥했다. 오랜 관계의 업체 직원분들과 인사를 했다. 건강이 안 좋아 서울로 와서 건강검진 후 나쁜 검사 결과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치료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갑자기 그렇게 하늘로 갔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고 집에 와서도 눈물이 났고 지금도 그를 떠올리면 미안하고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내가 캄보디아 프롬펜에서 본 그가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쩌면 오랜 해외 객지 생활 속에서 나라, 고향, 가족, 지인들이 그립고 그래서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연락을 했는데 내가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쌀쌀맞게 급히 끊어 버렸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어쩌면 업체와의 관계로 만났어도 오랜 세월의 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마치 비즈니스가 없어져서 소홀히 대했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정말 오해이다. 오히려 나는 너무 친한 사이여서 내가 바쁘다고 하면 이해할 줄 알았다. 몸 건강 상태가 안 좋아서 더 예민하여 그랬을까? 별 별 생각이 다 났다. 어떻게 해도 내가 미안한 죄책감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바빠도 그깟 전화 한 통 살갑게 받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다시 한번 뼈에 사무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Note : 나도 인간인지라 살면서 후회되는 일을 많이 저질렀다. 내가 가장 나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후회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 인생에 관한 모든 결정은 나 스스로 내리는 것을 선호한다. 내 일에 있어서는 나 자신이 결정을 하고, 그 결과에 순응한다. 내가 한 결정이 잘되든 못되든 내가 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 핑계를 대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에 맞는 책임만을 생각하고 후회는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는 몇 번이 있는데 대부분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을 때, 가깝다는 이유로 잘하지 못한 기억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하라고 수없이 되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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