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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중남미..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1. 7. 19:47
2000년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2번의 중남미 지역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로부터 워낙 먼 거리이고 직항 항공편이 없으니 항상 미국 본사 출장길에 앞 혹은 뒤 일정으로 중남미 지역 출장 일정을 넣곤 했다. LA, 마이애미(Miami), 휴스턴(Houston)이나 달라스(Dallas) 공항 같은 경유지를 통하곤 했다.
2010년대 초반에 다시 한번 중남미 출장을 가게 되었다. 또다시 미국 본사 출장에 이어 옆 부서의 친한 동료이자 후배와 함께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업체들까지 참석하는 행사에 참석한 뒤라 해당 한국 업체 담당자들도 중남미 지역 출장에 동행하게 되었다. 여러 명이 그룹을 이뤄가게 되니 한결 마음의 부담도 줄고 안전에 대한 우려도 서로 나눌 수 있었다.
나 혼자 만의 긴장감과 예전 그대로의 답보 상태인 업무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2번째 출장보다 마음이 여유로웠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맞는 후배와 잘 알고 지내는 업체 담당자들이 동행하여 다행이었다.
2번째 출장 이후, 또 다른 분위기의 회사 업무 변화와 거래 업체들에 대한 목표와 기대치가 높아졌던 시기였다. 이제는 업체들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자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해야 했다. 항상 미국 본사와 그들 사이에서 중간자 입장을 해주었던 우리 한국 지사의 담당자들을 믿고 의지한다는 미명 하에 너무 의존하였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몇 년 동안 단계별로 목표를 세우고 각 업체별로 생산 나라, 지역, 공장별로 그 눈높이에 맞는 업무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따른 진행 상황, 성과와 결과를 기록해 나갔다. 각각의 장/단점, 특히 취약점과 문제점에 대한 수정 보완 과제를 파악해 나가기도 했다. 그것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한국 서울 오피스와 각 중남미 지사 오피스 직원들과의 콘퍼런스 콜 회의 (Conference call meeting)를 통해 유기적 관계를 이어 나갔다.
어느 정도의 성과 기록이 쌓인 시점에 3번째 중남미 지역을 방문하니 다시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앞선 1~2번째의 출장 업무 일지를 나름대로 꼼꼼히 기록해 놓은 터라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방문하는 업체마다 인사를 했다. 그 먼 지역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을 기억하고 한 마디라도 기억에 근거하여 인사말을 건네면 의외로 더 반가워하는 동시에 고마워했다. 말 한마디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관계 형성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서울에서도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나 급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 현지 분들에게 이메일을 직접 보내면 좀 더 빠르고 상세한 상황 설명과 함께 결과가 나오곤 하여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다.
미국 출장 뒤에 니카라과(Nicaragua)에 먼저 도착했다. 후배와 나는 서울에서 출장을 떠나기 전부터 모든 업체와 공장별로 업무 성과 기록을 준비하여 정리해 갔다. 회의 시간을 통하여 그들에게 간략 정확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역할 분담도 철저히 해갔다. 일정에 맞춰 도착한 업체마다 모든 관련된 사람들과 회의를 해 나갔다. 그곳에는 업체와 생산 담당자, 서울에서 함께 출장 간 업체 서울 담당자, 우리 중남미 지사 직원들도 참석하였으니 그야말로 모든 관계된 사람들이 참석하여 그 어디에서도 다른 뒷 말이 나올 수 없게 똑같은 이해도를 원하는 취지였다.
나름 성공적인 방문을 한 후, 후배와 나는 금요일 저녁을 호텔에서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다. 니카라과는 중남미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경제 성장 대비 같은 브랜드 호텔 체인인데도 의외로 제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에 이어 계속되는 출장 일정 속에서의 긴장감을 금요일 저녁부터 이어지는 주말에는 좀 풀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호 없이도 마치 '불금'을 보내듯이 별 다른 일정 없이 둘이 호텔 내의 수영장 옆,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치맥', 치킨 요리와 맥주를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도 덥고 습한 니카라과 기후는 쉽게 식지 않았다. 우리 둘은 계속 그간의 출장 일정 속에서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더우면 수심이 낮은 수영장에 잠시 들어가 발로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흥이 많은 중남미 지역도 밤이 깊어가니 여유로움 속에서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마시고 놀았는지 기억에 없었다. 토요일 해가 중천에 떠서야 침대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그 출장 일정 중에 처음으로 자유로운 주말 시간을 맞이 하였다. 후배와 나는 워낙 친해서 간 밤에 술을 같이 마시며 여러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았다. 우리 둘은 죽이 잘 맞아서 둘 만으로도 주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서울에서 함께 출발한 업체 담당자들도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그룹 모두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 모두 왁자지껄 놀며 니카라과에서 볼 만한 관광지를 가기로 했다.
일단 와플이 유명하다는 브런치 가게로 향했다. 마치 역사적 성곽 같은 건축물이 바로 앞에 보이는 거리에 있는 카페에 넓게 자리를 잡고 잘한다는 와플, 팬케익 등 브런치 메뉴를 골고루 주문하여 일행 모두 골고루 맛을 보았는데 소문대로 다 맛있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함께 각종 베리류가 듬뿍 얹어진 와플 맛이 일품이었다.
다음으로는 니카라과의 호수를 방문했는데, 앞선 첫 번 째 출장에서 방문한 과테말라의 아띠 뜨랑이라는 거대한 호수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물도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더구나 보트 투어를 하는 중간에 원숭이만 산다는 무인도 섬을 지날 때는 습관적으로 먹을 것을 바라는 원숭이 떼의 큰 소리와 적극적인 동작으로 버거웠다. 예전에 방문한 커다란 분지 같은 곳의 깊은 호수가 훨씬 나았고 그것이 니카라과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니카라과에 가면 경험해봐야 한다는 화산 지역으로 향했다. 나는 너무 더워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행이 원했고 그때가 아니면 또 언제 볼 기회가 있을까 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발아래로 화산 분화구를 내려다보니 회색빛 분진들과 뜨거움으로 뭔가 두려움이 생겼다. 급히 기념 촬영을 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의 차량들은 모두 화산 폭발 시를 대비하여 바로 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름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화산 주변은 항상 화산 상태를 관찰하고 주시하면서 나름 대비 태세를 세우고 관광객들을 맞이 한다고 했다.
더위에 지친 일행은 잠시 더위를 식히고 니카라과에서의 마지막 만찬 저녁을 하기 위해 예약된 야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질 좋은 중남미 스테이크를 맛본다고 생각하니 군침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모두 스테이크를 좋아하여 스테이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체의 사이드 메뉴를 등한시했다. 온스 단위로 각자 주문한 스테이크를 각기 원하는 술과 함께 탐닉했다. 특히 후배는 상당한 양을 즐겨서 우리 일행은 물론 그 레스토랑 직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중남미 국가들은 각기 그들만의 스테이크와 커피 외에도 보드카에 베리를 넣은 칵테일로도 서로 경쟁적이었다. 니카라과에서 맛 본 스테이크와 보드카 맛을 음미하며 취해 있을 때, 다음 행선지인 과테말라에 가서 똑 같이 맛을 본 후, 어디가 더 맛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다소 유치하면서도 흥미로운 경쟁이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 과테말라(Guatemala)로 향했다. 이제는 엘살바도르(El Salvador)를 경유하지 않고 직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중남미 지역만 운행하는 항공사 기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막기 위해 잠시 담요를 맨다리에 덮었다. 후배와 동행한 업체 서울 직원들과 함께 안전히 도착하여 일단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현지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 가서 전 날의 숙취를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로 날려 보냈다.
비행기 안에서였는지 밖에서였는지 맨 살이 보인 부분에 뭔가로부터 여러 군데 물린 흔적이 발견되고 매우 많이 간지럽고 가려워서 자꾸 손이 가고 긁어대자 점점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사람들이 보더니 그 지역에만 사는 곤충에 물린 것 같다며 현지 약을 발라야 한단다. 급히 공수한 물파스 같은 약과 연고 타입의 약을 발랐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계속 너무 가려워서 후배와 둘이서 계속 서로 '약''약' 하며 찾고 발라댔다. 마치 마약 하는 사람들이 약 찾는 것 같다며 서로 웃어댔다.
중남미 지역에서도 과테말라 지사가 가장 크고 직원도 여러 명이고 그곳에 우리 회사 중남미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상주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지사 사무실에 모여 모든 중남미 지역의 그동안의 성과와 결과를 분석하고 앞으로를 위한 계획들을 함께 의논하는 회의를 갖었다. 다소 정체된 상태의 2번째 출장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2010년대 초반에는 이제 좀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생산적인 논의들이 오고 갔다. 이제는 서로 관계가 형성되고 친해진 지사 책임자를 비롯한 직원들 모두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어 과테말라에서도 역시 업체들 생산 시설을 돌아보며 그동안 준비해 온 자료들을 토대로 회의를 이어갔다. 초기에는 어디부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경쟁에 맞서 계속 나아가거나 도태되거나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 당시는 이미 여러 한국 업체들이 중남미 지역의 대안이 될 만한 다른 나라들을 개척하려고 하고 실제로도 점차 이동을 하기도 했으니 중남미 산업 자체로서도 이미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할 시기였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쓴소리들도 기꺼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물론 각 업체마다의 체감은 다르기도 했다.
업무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한 후, 어느덧 과테말라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첫 번째 방문 당시,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과테말라 시내의 퐁뒤 집을 다시 찾았다. 그 자리에서 수년간 계속 버텨주며 있는 모습이 좋았고 예전 맛 그대로 풍미가 있었다. 퐁뒤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 흥겨운 중남미 음악이 바로 옆에서 라이브로 연주되었다. 후배와 나는 맛난 음식을 항상 잘 먹었고 알고 보니 우리가 스테이크와 더불어 보드카도 잘 즐긴다는 소문이 니카라과로부터 이미 과테말라로 도착해 있었다. 우리보다 소문이 먼저 와있었어 어이없었지만 둘 다 배시시 웃으며 있는 그대로 제대로 즐겼다. 그들은 각기 자기 나라가 더 맛있다고 경쟁했으나 후배와 나는 그저 둘 다 좋다며 즐겼다. 그런 것들이 중남미 지역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지인들을 위한 색채가 선명한 과테말라의 기념품을 구경하며 고르는 것도 일종의 소확행이었다.
업무로서도 음식으로서도 이전보다 만족스러운 중남미의 3번째 출장 일정이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이어서 마음으로도 풍요로웠다.
* Note : 그렇게 인연이 닿아 방문한 중남미 국가들이 부디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아 막연히 이름만 아는 다른 나라들보다, 내가 직접 두 발을 내딛고 도착하여 경험한 장소, 기억 속의 사람들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갖가지 자연재해, 인재로 인한 사건 사고 등 횡횡한 슬픈 소식들을 접하게 되면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무사히 어려움을 견뎌내고 이후 건전한 산업과 함께 성장하길 바라고 기대한다. 치안과 인간적인 삶도 안정화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중남미 지역을 다녀온 후로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니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중남미 지역 상황을 접하게 되면 소중했던 지사 직원들과 여러 업체 관계자들의 안부가 진심으로 걱정되고 궁금해진다.
그야말로 예고 없던 불청객인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발생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 속에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2020년이다. 가끔 CNN 방송을 보면 세계 각 나라의 코로나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 사진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은 물론 내가 알고 방문했던 나라들 장면에서 눈길을 멈추게 된다. 그 장면들 속에 과테말라와 니카라과 등 중남미 지역도 보였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는지.. 이제는 업무로서의 욕심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오로지 그들의 안녕만을 기원한다.
그 후로도 중남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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