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취업 이야기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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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떼의 취업 이야기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1. 11. 22:53

    한창 공부하고 취업 전선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을 보면 내 마음이 안쓰럽다. 모두 내 조카들을 보는 기분이 든다.

    나 또한 20대 초부터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했으나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금이라면 내가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놀았던 기억이다. 3학년이 되어서야 막연히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심시간 등을 이용하여 교내에서 진행하는 강좌들을 들었던 기억이다. 그 당시만 해도 영어나 제2 외국어 그리고 컴퓨터 강좌들이 취업 준비를 위한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대학 4년을 인문대학에서 보낸 후, 4학년이 되자 점차 취업에 대한 조바심이 들었다. 당시 나의 전공과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취업에 거의 관심이 없으셨다. 그저 학문을 계속하여 석사, 박사의 꿈이 있는 학생들만 신경을 쓰셨다. 그나마 교내의 직업 보도실은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하였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학생들 본인의 몫이었다.

     

    나는 막연히 외국 계열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당연히 외국계 은행, 기업, 대사관등의 정보를 구해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도 시작 단계이기는 하였으나, 주로 출력한 이력서를 들고 발품을 팔아서 관심 있었던 외국 계열 회사의 인사부로 가서 직접 제출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일정한 시기의 공채 시험보다는 그저 빈자리가 생겼을 경우에만 인원 충원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이력서를 돌려놓고 무작정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4학년 가을이 되자 이력서를 돌린 몇 곳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준비한 이력서를 검토한 후 연락이 온 것이니 그 당시 소위 서류 심사는 통과가 거의 된 상태인 것이었고, 연락이 온 것은 실제로 대면 면접을 하자는 의도였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가서 면접시험을 보았다. 이력서에는 자신 있게 외국어인 영어도 잘하고 그 당시 필요로 하는 컴퓨터도 잘한다고 써 놓았으나 그것은 자신감 있어 보이기 위한 다소 과장이 섞인 상태였으니 실무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진짜 내 실력은 들통이 났다. 이어 몇 군데에서 진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좀 더 실력을 닦아 놓지 않는 나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쌀쌀함이 몸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초겨울 시기에 동시에 2 곳으로부터 다시 면접 약속이 정해졌다. 그간의 실패로 한껏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였다. 오전에 한 군데 먼저 면접을 보았고, 연이어 오후가 되어 다른 곳에서도 면접이 이어졌다. 오후에 간 곳은 외국계 회사였는데 나 혼자 면접실로 들어가니 6명의 면접관이 둘러앉아 계셨다. 모두 12개의 눈이 나만 바라보니 너무 긴장이 되어 내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없었다. 나의 긴장감이 느껴지셨는지 하나 같이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시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셨다. 그동안 나는 가슴을 좀 피고 고개를 들고 누가 무슨 말을 하나 둘러보았다. 여러 분들이 질문을 하셨는데 나는 일단 질문을 정확히 듣고 그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하려고 집중했다. 등에서는 땀이 날 지경이었으나 최대한 질문하는 분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무슨 질문이 오고 갔는지는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거의 질문이 끝 날 무렵에는 오히려 내 마음은 안정되고 있음을 느꼈다.

     

    회의실을 나와서 다시 그 회사의 인사부로 가서 인사부 책임자의 면접이 별도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이미 6명의 합동 면접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긴장이 되지 않았다. 긴장감이 없었다기보다 그때는 이미 나를 그냥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전 날 오전에 면접을 한 곳에서는 또다시 다음 면접 약속을 잡자는 연락이 왔다. 그 바로 이어, 오후에 면접을 한 곳에서는 연락이 와서 합격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전 날 이미 중요한 실무 임원진들과 인사부 면접까지 진행되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여러 분들이 모여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그 회사가 나도 정서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너무 기뻐서 또다시 면접을 해야 하는 곳에는 정중히 사양하는 연락을 했었다. 가끔 그곳에 취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날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후회하지는 않았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취업한 후, 나는 나를 뽑아준 회사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다시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출근 시간 전에 일찍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한 후, 출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선 취업, 후 준비가 된 셈이었다. 요즘은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 자신의 목표가 취업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 대학 신입생 때부터 학점 관리와 취업 공부 태세로 전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내가 입사하던 해에 6명이 뽑혀서 우리는 신입 동기가 되었다. 알고 보니, 면접관 6명이 함께 계셨던 것은 각 부서의 부서장분들로 각기 해당 부서에 1명씩이 필요하셨던 것이었다. 입사 후 몇 년의 세월이 지나자 6명의 입사 동기들은 어느덧 나 포함 3명이 남아 있었다. 어느 시기에 새로운 신입 사원들을 뽑는 면접의 경쟁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예전이 아니었다면 회사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서로 웃었다.

     

    자신이 노력했던 시기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인지,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 인구수는 감소하지만 사회 속에서의 경쟁은 심해져서 점점 취업 문턱은 높아지고 취업 준비 과정은 실제로 더욱 심각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취업된 기존 직원들은 하나 같이 '지금 같으면 아마 나도 취업 못했을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동시에 후배 예비 사회인들의 생존 경쟁이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생존 경쟁은 취업의 문턱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또다시 세월이 지나 내가 취준생들을 직접 면접해야 하는 부서장이 되었다. 어느 해 인가 회사에서 예전과 달리 인턴사원 도입제가 생겼었고 그 면접을 처음 하게 되었는데 면접관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어렸었다.

     

    긴장 가득한 얼굴로 정해진 인원이 순서대로 들어왔다. 취업 경쟁률도 높아지고 외국계 기업의 인턴 자리여서 그런지 너도 나도 경험을 위한 지원자가 많이 몰렸다. 어린 20대 앳된 얼굴들로, 하나같이 동생들 같이 보였다. 나는 한 명, 한 명 눈이 마주칠 때마다 최대한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의 웃는 표정으로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고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발휘하길 바랬다. 언니나 누나처럼 여기고 편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길 바랬다.  그 옛날 내가 면접을 보았을 때 나의 선배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이후 선발된 인턴 중에서 나의 호응하는 듯한 따스한 표정에 위안이 되어 나만 보고 답변했다고 고마워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면접관이 되어 면접을 하면서 과연 취업을 위해 진짜 중요하게 갖추어야 하는 자격이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

     

    * Note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다. 당연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알려주는 모든 이들,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례를 들어 나는 취업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도 했고, 취준생들을 면접하는 과정에서 배우기도 했다.

     

    나는 군대에 가 본 적이 없다. 여자이고 직업으로도 선택을 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군대를 갔다 온 많은 남성들은 자기가 겪은 군대 생활이 가장 힘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것을 견뎌냈다고 했다. 마치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실제로 누가 제일 힘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저마다 인생에서 겪은 아주 힘든 시기였던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군입대처럼 취업은 이제 모두에게 극도로 어려운, 기회의 문제가 되었다. 시대에 따라 사회가 원하는 소위 스펙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개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에 따라 우위가 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어디에서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기준이 공정하고 공평하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혹시 뭔가 억울함을 겪는 이가 바로 나 일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게 되고 분노와 좌절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는 사회 속에서 우뚝 서길 바란다.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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