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vs 듣기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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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기 vs 듣기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11. 14. 23:40

    라떼의 취업 시절을 생각하다가 문득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기, 쓰기가 자신을 표현하는 요소라고 하면, 듣기와 읽기는 어떤 것을 나 자신에게 입력하고 이해하는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그 기능들을 물리적으로 무리 없이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기능상으로 저하될 것임을 각오하고 잘 관리하고 노력해야 함을 깨닫기도 한다.

     

    말하기는 하는 즉시 즉각적으로 반응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조심스럽다. 여자 음성으로는 좀 낮은 톤(Tone)을 갖고 있는 나는 노래를 할 때, 음치와 박치는 아니지만 고음불가이다. 예전에 어느 예능인들이 고음불가라는 설정을 표현했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웃으면서도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일반적으로 말을 할 때나 누군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발표를 할 때는 저음인 것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때는 아나운서나 성우의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쓰기 또한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어의 맞춤법과 특히 띄어쓰기가 어렵다. 그것도 시대상을 반영하여 조금씩 허용되는 기준이 변화한다고 하니 그 변화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여 표현하는 것, 글을 쓰는 것도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요즘은 여러 방법으로 의도치 않게 글이 개방되기도 하니 혹여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또한 글은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읽기에 있어서 나는 속도가 느리다. 아마 동시에 시작하여 시간을 재보면 나는 남들보다 좀 늦게 읽을 것이다. 집중하여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읽으려면 더 시간이 걸린다. 많은 것을 다독하기보다는 흥미 있는 것 위주로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 것을 좋아한다.

     

    듣기, 이것은 매우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집중도와 이해도가 아주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말하기와 듣기를 생각해 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일 그리고 순간순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의사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몇 번의 고배 끝에 취직한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었다. 여러 분의 면접관 앞에서 나는 혼자였고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계셨다. 각기 궁금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 순간 내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누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였다. 질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답을 해야 하고 시선은 그 질문을 했던 분의 눈을 바르게 쳐다봤다. 간혹 동시다발적으로 질문이 들어오면 내 마음속으로 순서를 정하여 차근히 답변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누군가를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직 어린,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중에서 누군가만을 선택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면접을 하다 보면 나와 우리 부서, 우리 회사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가리는 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의외로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럴 때는 내 표현의 문제로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다시 상세히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시 시도를 해도 원하는 방향의 답변이 나오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다른 면접관들에게 내 질문에 문제가 있냐고 확인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경험 뒤에 느낀 것은 너무 긴장하여 자신이 준비한 것만 생각해 내려고 집중하다 보면 상대방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에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더라도 너무 예상 밖의 질문이 나와서 딱히 답변을 못하겠거나 질문 자체의 의도를 이해를 못했을 경우, 그냥 전 날 내가 공부한 내용 위주로 시험 답안지를 채우고 나왔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경우 결과는 극과 극, 두 가지로 나왔다. 동문서답을 한 죄로 가혹한 점수 또는 그나마 뭐라도 공부한 노력이 가상하여 소소한 가산점이었다. 물론 담당 교수님 재량이었다. 

     

    요즘은 워낙 취업난을 겪으면서 입시 공부를 하듯이 취업을 위한 학원 수업과 강좌도 많다. 너무 일률적인 답변과 말하기 화법이 오히려 눈에 띠지 않고 덮일 수도 있다. 평소와 다르게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한 과도한 말과 몸의 표현은 오히려 거부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고 그런 개개인의 색채가 눈길을 끈다. 적어도 내가 면접관이 되어 보니 그랬다.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한 것도 중요하다. 조심한다고 사물까지 존칭으로 표현하는 것도 듣기 불편하다. 사람은 나의 잘못 보다 남의 실수가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나쁜 마음이 있나 보다. 그리고 아무리 긴장해도 역시 AI처럼 답변하는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정도 매력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 상태을 쉽게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종합해보면 인물보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면접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며 최종 결정을 할 때도 각 면접관의 개인 성향에 따라 선호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거의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회사 생활 중, 부담스러운 일 중에 하나는 작게는 소그룹부터 크게는 많은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었다. 실제로 우리 회사 미국 본사로부터 리더로 키우기 위해 발표 기술을 위한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본사 교육 프로그램 내용 중에, 너무 긴장이 되면 청중들을 사람이 아닌 그냥 '호박(Pumpkin)'으로 여기라고 했다. 교육을 받은 후, 첫 대중 앞에서 발표 실행 후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투정 섞인 불평으로 본사에서 나온 교육자를 어이없이 웃게 만들었다. 나는 호박은 무슨, 그냥 다 사람들이 모두 두 눈알을 굴리며 나만 바라보더라고 했다.

     

    나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누군가 중요한 발표를 할 때가 되면 항상 발표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연스러운 긍정의 표정과 가끔 호응의 고개 끄덕임을 해주었다. 지금 발표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믿었다. 나의 그런 태도가 알려지면서 이후 많은 발표자들이 나에게 사전에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청중 좌석의 어느 부분에 앉아서 자기를 봐달라고 했다.

     

    개인과의 업무 대화중에 가장 까다로운 순간은 인사고과 시기이다. 또는 회사 내의 특별하지만 어렵고 번거로운 업무를 배정할 때이다. 일종의 협상의 시간이다.

    나 또한 어릴 때일수록 불만 사안 때문에 얼굴을 붉히거나 억울한 감정 때문에 제대로 표현을 못하거나 내 의도와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 순간이 지나고 곱씹게 되면 좀 더 감정을 다스리고 먼저 잘 듣고 생각 좀 해 본 후에 나의 의견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말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갑작스럽게 놀라움과 혼란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순간적으로 즉시 답을 해야 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경솔하게 답변을 하는 것보다 숨을 고르고 잠시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낫다. 급하면 감정적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듣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게 되었다. 말을 잘하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한다. 어쩌면 모든 문제와 갈등은 잘 듣지 않아서 생기는 부분이 많다. 듣지 않고 내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고 서로를 이해 못하게 된다. 혹은 잘 들으면 그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공과 사의 대화, 모두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본인은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귀로 건성으로 듣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반면 사람들은 말하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의외로 많이 간접적으로 흘린다. 따라서 차분히 듣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해답의 힌트를 알아낼 수도 있다.

     

    남은 인생은 좀 더 듣는 것에 집중하고자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 Note : 나이가 들수록 자기보다 젊은 사람들과 교류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은 귀와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 어쩌면 그렇게 허를 찌르는 정확한 이야기인가.

     

    코로나 19 사태가 이어지면서 절친들과 랜선 모임을 갖었다. 각자 사는 장소에서 저녁에 좋아하는 술을 한 잔 놓고 모바일폰으로 영상 통화를 시작했다. 반가움에 저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난리가 났다. 정신을 수습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말을 하고 급하게 끼어들 질문이 있을 때는 손을 들어 표시했다.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리움은 배가 되었다. 차선의 방법, 랜선 만남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알게 되었다. 일단 들어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오고 가는 정을 더욱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듣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의사소통의 의미와 관계 형성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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