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2편, 마닐라에서 6주간 머무르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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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2편, 마닐라에서 6주간 머무르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7. 15. 23:38

    "필리핀 1편"에 썼듯이, 나는 1997년 1월 다니던 글로벌 회사 (Global Company)의 장기 출장 업무를 위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의 지사 오피스에서 6주간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 조식은 머무르는 호텔에서 먹었고, 출근을 한 후 점심 무렵이 되면 오피스에서 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여 먹었다. 그 당시에도 마닐라는 배달 음식이 발달이 되어 있는 문화였고, 다른 현지 직원들도 배달 음식을 이용하거나 각기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왔다. 나는 도시락을 준비할 수 없으니 매일 몇 가지의 다양한 음식을 돌아가며 배달 주문을 하였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그들의 도시락은 그야말로 소위 필리핀 가정식이었는데 맛 볼 기회를 주었고 주로 생선 요리가 많았다.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이 항상 풍성하였는데, 그들은 과일조차 구워 먹고 튀겨 먹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간식 또는 길거리 음식으로 즐겼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열대 과일들을 마음껏 즐겼다.

     

    하루 종일 습하고 더운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에어컨 바람 속에서 근무를 하고 난 후, 퇴근길에는 그래도 한 낮보다는 열기가 차츰 식어가는 마닐라 도시 날씨에 몸을 맡겼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걷는 것이 오피스와 호텔 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긴 했지만 며칠이 지난 후 알게 된 도심 속 공원을 통과하여 산책하듯 걸으며 퇴근길의 여유를 즐겼다. 호텔 부근으로 오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러 나라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메뉴를 보면서 교대로 여러 음식들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월~금요일이 지나면 주말이 찾아오고, 나는 호텔에 문의하여 하루는 관광코스를 잡아서 하루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 하루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호텔 시설을 만끽했다.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는 굉장히 유명한 폭포수 탐방이었는데, 한 배에 두 명씩 짝지어서 타고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심지어 폭포수 뒷면까지 돌아서 오니 모든 입고 있었던 옷가지들은 물에 흠뻑 젖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운 필리핀 날씨에 시원함을 느끼기에 최고인 인기 관광지였다. 나는 나처럼 관광을 온 여행객들 사이에서 무작위로 배를 타게 되었는데, 영국으로부터 출장을 온 약간 나이 든 영국 신사와 함께 배를 타게 되었고 물론 어색함은 있었으나 워낙 폭포 탐방 코스가 재미있다 보니 둘 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사진에 남아있게 되었다. 아직도 그 사진을 찾아보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으로 신나게 웃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누구냐고, 어떤 사이냐고 묻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면 관광 코스에 포함된 점심 식사를 자연 그대로의 야외에서 하게 되는데 역시 생선 요리 또는 닭고기를 구워주었다. 석쇠 같은 것에 구운 듯 맛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건으로는 어느 일요일 오후에 호텔 수영장을 처음 이용할 때의 일이었다. 직사각형의 수영장 밖에서 그저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수영을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에 수영장 왼쪽 가장자리로 내려갔다. 물의 깊이는 내 배 정도였다. 이내 잘하지는 못하지만 헤엄을 치다가 숨이 차서 일어났다. 방향은 왼쪽 끝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향했었다. 발을 딛으려 하니 내가 생각한 깊이가 아니었다. 숨이 차서 일어났는데 한없이 깊음을 인지했을 때 불현듯 두려움에 휩싸였다. 당황하여 허우적거리다 물을 많이 마셨다. 순간 이러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바로 몸을 돌려 배영 자세를 취하고 대학교 시절의 강사님 말씀대로 온몸에 힘을 뺐다. 슬슬 수면 위로 내 몸이 떠올랐다. 곁눈질을 해가며 가장자리 잡을 곳으로 가서 탈출하였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마치 나만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온 것처럼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수영장 바깥에 안전 요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눈치를 못 차릴 만큼의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태연한 척하며 내가 있던 자리로 와서 다시 선베드에 몸을 뉘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음료수를 마신 후, 수영장을 관찰했다. 수영장 바닥에 일부러 기울기를 심하게 두어 오른쪽으로 갈수록 상당한 깊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가장자리의 깊이 표시를 제대로 보지 않는 내 잘못이었다. 몇 초를 더 허우적거렸거나 내가 충분히 과장된 구조 요청 표현을 했더라면 근무 중인 안전 요원이 나를 구해주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내가 나타나면 모든 호텔 직원들이 장기 투숙객인 나를 더 많이 관찰했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 또한 알찬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론 그때의 물속에서의 허우적댐을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물에 대한 트라우마까지는 생기지 않았지만 순간의 공포감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곳을 가서 호텔에 묶고 수영장 시절 근처에서 즐길 때에는 항상 수영장 모양과 깊이를 파악해두곤 했다. 그리고 가끔 여행지에서 즐기는 놀이 중에 하늘이나 공중 위에서  행하여지는 것은 좋아하는데,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약간 머뭇거린다.  

     

    필리핀 사람들은 참으로 흥이 많았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흥이 많지만, 우리는 자리와 상황에 따라 흥을 표출한다면, 필리핀 사람들은 항상 춤과 노래가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었다. 춤과 노래가 생활의 일부가 된 그들은 대부분 노래를 잘했고 항상 즐겨 불렀다. 오피스에서도 점심 식사를 한 후 직원들은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일을 할 때도 연신 흥얼대는 직원들도 있었다. 힘 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냈고, 또 그들끼리 자연스럽게 화음을 넣어 함께 즐겼다. 그래서 그런지 열린 장소에 음악이 연주되는 식당도 많았다. 그 당시 그들만의 춤 문화가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들은 그것을 "살롱 댄스"라고 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노래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그 당시에 그런 춤을 함께 즐기는 댄스홀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취미 생활중에 하나 같았다.

    필리핀 생활의 거의 마지막에 필리핀 직원들이 나를 위해 데리고 가주었다.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과 방문한 댄스홀의 강사들에게, 나에게 춤을 알려 주라며 맡겼다. 나에겐 겨우 몇 개의 박자와 스텝만을 알려 주었는데, 그리고는 그냥 자기들에게 몸을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음악이 나오자 나는 시키는 대로 박자와 스텝을 따라 했더니 그다음은 나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정말 그들이 알아서 했다. 꽤 재미난 추억이었다. 한때 우리 한국에서의 회식 문화가 음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노래방으로 우르르 몰려갔던 것처럼 필리핀에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댄스홀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다. 주말이면 여자들은 마치 파티에 가듯 드레스를 차려입고 남자 상대를 즉석으로 만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을 보니 나름 놀이 문화이겠지만 자칫하면 소위 말하는 춤바람이 날 것 같았는데 동료 직원들 말에 의하면 실제로 춤바람이 나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아무튼 나도 그들의 댄스 문화를 즐겼던 시간이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6주가 흘러갔고 그렇게 마닐라에 머무르다 2월 구정 연휴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해외에 나갔다 귀국할 때면 항상 우리 가족 모든 멤버들에게 크건 작건 선물들을 알뜰하게 준비했다. 당시는 지금의 우리 집 막내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4명의 조카들이 있는 상태였고, 나의 3번 언니의 1번 아들이 당시의 막내였다. 오로지 엄마인 3번 언니만이 겨우 알아듣고 해석 가능한 옹알이 수준의 소리를 낼 시기였는데 한창 자동차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필리핀 기념품으로 필리핀 현지의 독특한 자동차 모양을 한 장난감을 주니 역시 좋아했는데 철제로 만들어져서 다소 소리가 요란했다. 놀면서 나를 바라보고 연신 뭐라고 옹알대는데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뭐 신난다, 고맙다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다시 추운 겨울의 한국으로 돌아와 연휴 끝에 한국 오피스로 출근을 하니, 본사에서도 한국 지사에서도 모든 분들이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고 그렇게 한 번의 새로운 경험이 마감되었다.

     

    * Note :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과 긴장으로 심신이 더욱 피곤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공적인 시간이 지나 주말이 되어 사적인 시간이 되면 충분한 휴식으로 피로감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또 언제가 될지 모를 그런 시기를 만끽하기 위해 여기저기 구경하고 현지의 문화에 다가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럴 경우는 그저 내 정신과 마음을 그냥 열어 놓아야 한다. 그들이 알려 주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처럼 그 삶의 일부를 그냥 따라 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의 음식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랬더니 그들이 점차 자연스럽게 다가와 주었다. 필리핀 근무 시기만 해도 나도 어렸다. 그래서 나도 낯을 많이 가리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방법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살다 보니 깨닫게 되는 일들이다.

     

    그리고 한 가지, 생존 수영을 배워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작년에 지금 우리 가족의 막내인 3번 언니의 2번 아들이 군대를 제대한 후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수영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였다는데 본인 말로는 거의 생존 수영으로 매우 힘들다고 했다. 나는 정말 좋은 선택이라면서 한껏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기회가 되었을 때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 또 다른 새로움에 대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더 충분히 즐기리라. 그 속으로 퐁당 빠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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