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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 바보인 나, 이모의 내리 사랑 방식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4. 3. 22:03
나에게는 5명의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있다. 1번 언니의 외동딸, 2번 언니의 아들과 딸 그리고 3번 언니의 아들 둘, 이렇게 여자 조카 2명과 남자 조카 3명이다.
나의 부모님은 딸 넷을 낳으셨는데 그중에 내가 막내딸이고, 언니들이 모두 적절한 시기에 평탄하게 결혼을 하였지만 나는 아직도 미혼인 상태로 남아있다.
나는 위로 3명의 언니들과 나이가 차이가 좀 있다. 나의 대학 시절 5월의 푸르른 날, 한창 대학 축제 속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11일 간격으로 1번 언니의 딸과 2번 언니의 아들이 태어났다. 나와 딱 20년 차이였다.
2명의 갓 태어난 신생아 조카들이 11일 간격으로 우리 집, 즉 언니들의 친정 부모님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반갑고 놀랍고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조그마한 생명체가 꼬무락거렸다. 때가 되면 울었고, 밥이나 생리현상 처리가 되면 방긋방긋 웃었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은 천사 같았다. 그저 무조건 예뻐했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20세 대학시절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2번 언니가 딸을 낳았다. 3번 조카였다. 1번 2번 조카들과는 또 다르게 예뻤다. 앞 서 2명의 조카들은 앞뒤짱구 머리에 솜 털 같은 머리카락이 있는 수준으로 거의 대머리로 태어났다. 그래서 아기들은 원래 대머리로 태어나는 줄 알았다. 3번 조카는 짱구인 것은 동일하지만 머리털이 이미 많이 나서 태어났다. 가족들 모두 2번 언니에게 임신 중에 대체 무엇을 먹은 것이냐고 농담하며 웃었다.
3번 언니가 결혼을 하고 4번과 5번인 아들 조카들이 3년 간격으로 태어났다. 4번 조카가 태어날 때는 내가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직장 생활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 나이에 갓 태어난 아기를 보니 또 다른 감동이 생겼다. 그리고 5번 조카인 우리 가족의 영원한 막내가 태어났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가 우리 가족의 막내가 되었겠지만 결국 5번 조카가 이제는 영원히 우리 집의 막내 꼬맹이로 불리게 되었다.
세월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1,2,3번 조카들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4과 5번은 군대를 제대한 후 이어서 학업 중이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지 그들을 바라보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는 4 자매 중 막내이다. 우리 아빠와 엄마는 그 세대가 그렇듯이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의 차남, 차녀로 태어나셨다. 당연히 우리에겐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들, 고모들 그리고 그분들의 배우자들, 그리고 외삼촌들, 이모들과 또 그분들의 배우자들이 많았다. 친가와 외가 어디를 가든 가족 구성원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아들 없이 4명의 딸들만 있었지만, 친가도 외가도 절대적으로 딸보다는 아들의 숫자가 많았다. 다행히 어려서 친척들이 모이면 우리 4명의 딸들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가까이 사는 이모들과 왕래가 많았다. 언니들이 어렸을 때는 고모들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모들 중에 두 분과 그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정착하셨다.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 다녔던 나는 미국 본사로 처음으로 출장을 갔을 때 업무를 마친 후, 막내 이모 댁을 방문했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아주 가끔 한국 방문을 하셨을 때만 만났었으니 상대적으로 다른 가족들보다는 만남의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 이모와 이모부는 매우 기뻐하셨고 나와의 시간을 즐기시는 듯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나와 딱 붙어 다니셨다. 맛있는 것을 챙겨서 계속 권하셨고, 구경을 가거나 쇼핑을 하게 되면 무엇인가 계속 사주려고 하셨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속으로 '아니, 가끔 만났던 조카인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잘해 주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주 만나지도 않았던 그저 조카딸 중에 한 명인 나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넘치는 애정을 쏟아 주셨다.
20대의 나는 조카들이 태어날 때마다 그저 신기하고 예쁘게만 느껴졌다. 객관적인 잣대로 판가름이 불가능했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그저 나의 조카들이란 이유만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이들 편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어려서 기억할 수 없는 그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 담고 있고, 그들과의 추억이 마음속에 정겹게 남아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폭풍처럼 성장하였고, 이제는 어쩌면 나보다도 어른스러운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항상 내가 챙겨 주어야 할 것 같고 사소한 그 무엇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대상들이다. 그것은 마치 부모 눈에는 자녀들이 나이를 먹어도 항상 어리게만 느껴진다고 하는데 내가 부모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심정일 듯했다.
이제 좀 있으면 내가 출장 중 막내 이모를 방문한 그 시절의 이모 나이가 될 것이다. 이제는 이모가 그 시절에 내게 한 행동과 표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다른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와 또 다른 우리 조카들 세대는 점차 결혼하는 사람,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줄어가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이다. 내 조카들만 해도 각기 외동딸 혹은 한 명의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나의 5명 조카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고 다행히도 그들은 잘 지내고 있다.
조카들이랑 저녁 식사와 술을 함께 즐기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의 자리를 가끔 만든 적이 있다. 적당한 알코올의 힘을 빌어 자연스럽게 내가 그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표현했다. 그리고 이모의 마음은 그저 온전히 받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들 또한 그다음 세대가 생기면 이모가 그랬듯이 고스란히 그 사랑을 그들에게 쏟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내가 사랑을 받았듯이, 나 또한 내 조카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을 받은 그들도 다음 세대를 그렇게 또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모인 나는 어차피 조카들 바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마음이 그렇게 시켰고 나는 그렇게 그대로 행동하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내리사랑의 표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진심이다.
* Note : 사랑하는 내 조카들아, 언제 어디서나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심신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지낼 수 있길 항상 기도한다. 이모는 언제나 한결같이 너희들 편이야. 그리고 너희도 똑같은 방식으로 미래에 너희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해 주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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