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또 다른 휴양도시, 달랏의 기억 1편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베트남의 또 다른 휴양도시, 달랏의 기억 1편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4. 13. 22:22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서 오랜 기간 재직했던 나는 2013년 12월 초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6개월간, 베트남(Vietnam)의 경제도시인 호찌민(Ho Chi Minh)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바쁘게 업무 생활을 하면서도 평온한 주말을 맞이하게 되면 베트남의 다른 지역으로 주말여행을 계획했다. 내가 출발한 12월에는 이미 알싸한 겨울을 맞이하는 한국과는 달리 계속 연이어 더운 날씨의 호찌민에서 근무를 한 지 몇 달이 지나고 나니 뭔가 정신 맑아지는 공기가 그리워졌다.

     

    베트남 관광책자를 읽으면서 그런 나의 바람을 충족시킬만한 지역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달랏(Da Lat)'이라는 지역이었다. 금요일 저녁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다시 여행 사이트를 보면서 숙소를 검색하는 내 마음은 이미 달랏으로 가고 있었다.

     

    주말여행 계획을 앞둔 일주일이 시작되면 왠지 신이 나서 뭔가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드디어 금요일 업무를 마감한 후, 호찌민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지만 공항에서 항공기 수속을 하면서 줄을 설 때마다 매번 한 가지 짜증 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겠으나 줄을 설 때 거의 밀리듯이 빼곡하게 붙어 서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앞사람 그리고 뒷사람과의 간격에 주먹 하나 사이도 허용치 않는 듯 가깝게 초밀착하여 줄을 섰다. 누군가 새치기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베트남 지사 책임자이자 나의 멘토인 G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도 같은 경험들을 했고 나처럼 아주 질색하며 싫어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나는 베트남 일반 여자들보다는 키가 커서 그나마 괜찮지만 남자들까지 밀착되면 아주 불쾌했다.

     

    베트남 항공사의 달랏행 비행기에 올랐다. 달랏은 호찌민보다는 북쪽에 있었으나 중부보다는 다소 아래였다. 하지만 워낙 고도가 높은 고산지역이기 때문에 연평균 18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를 유지한다고 했고, 내가 갔던 3월 중순까지도 건기로 습도가 낮고 아침저녁으로는 15~18도, 한낮에도 25도를 넘지 않는 선선한 날씨였다. 그래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었던 예로부터 유럽인들에게 발견되어 휴양지로 발전해 왔다고 했다. 베트남의 젊은 연인들의 휴가 또는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있다고 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그립던 청명하고 선선한 기후가 나를 반겨 주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예약한 호텔의 미니 리무진 버스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여 1시간 남짓 비행을 한 후 도착한 것은 밤 시간이었으니 빨리 일행이 모여 호텔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평온한 주말여행을 기대했던 나에게 짜증 나는 순간이 밀려왔다. 호텔 버스를 예약한 고객들 중에는 베트남 사람들도 몇 명 대기 중이었는데 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담배를 피우고 간단한 휴식을 취한다며 버스 출발을 한참 동안 지연시켰다. 몇 분 정도야 누구나 기다릴 수 있지만 수십 분이 넘어가자 모두 표정이 안 좋아졌다. 개인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에게 피해를 주는 그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지 않았다.

     

    고객 중에는 나 말고도 몇몇 소수의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모두들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결국 베트남 사람인 듯한데 유학파인지 영어 발음이 아주 좋은 아시아계 사람이 미국 사람 인듯한 동료와 대화를 나누더니 버스 기사에게 항의하듯 출발을 요구했고 드디어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도 그 피해를 줬던 베트남 일행은 시끄럽게 떠들기만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눈치도 안 보는 듯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의 짐을 보면 모두 골프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추정되었다.

     

    공항으로부터 거의 40~50분가량 점차 높은 지역으로 이동을 하는 듯했다. 한 밤 중이라서 자세한 밖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높은 고지대 지역의 도시임에는 틀림없었다. 어느덧 한 밤 중에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체크인을 했는데 호텔 로비에서도 문제의 베트남 일행은 목소리 높여 떠들어대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내 차례가 오자 체크인을 하면서 호텔 직원에게 그 문제의 일행들의 행동을 이야기하고 제대로 버스 출발을 하지 않고 지연시킨 관계자들에 대하여 불평했다. 호텔 직원은 내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그 일행의 행태를 관찰하면서 내게는 제대로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 직원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었으나 나는 점점 더 기분이 나빠졌다. 내 바로 가까이에 그 문제의 일행 중 그나마 말이 없던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가 듣고 보라는 식으로 짜증을 냈다. 그리고 바로 내 방 키를 받아 들고 화를 내며 걸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내 머릿속에는 그들이 그 지역의 거대한 조직, 거물급 인사들 혹은 소문난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인가, 그래서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휴양지에 한 밤 중에 도착하여 짜증을 내기는 처음이었다. 호텔은 역사가 깊은 건물 같았다. 건축 양식도 유럽식이었고 장식된 모든 것 또한 역사 깊은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마치 궁전 같은 로비의 아치형 계단을 천천히 올라 예약된 방 문을 열자 유럽 영화 속에 나올 듯한 장식으로 꾸며진 방 내부가 보였다.

     

    방 안의 모든 것, 침대, 창틀과 커튼, 작은 협탁과 의자 등 모든 것들이 중세 유럽풍 분위기의 디자인이었다. 이어지는 욕실의 욕조와 그 안의 샤워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피곤하고 짜증 난 성질을 자제하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토요일에 눈을 뜨고 커튼을 여니, 아름다운 초록의 정원이 보였다. 호찌민의 더운 듯한 기운이 아니라 청량한 기운의 바깥 풍경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 안의 이것저것을 구경하며 사진 속에 담아냈다.

    샤워를 하면서 점차 느낀 것은 중세 유럽풍의 장식들은 눈으로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사용하기에 최적화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달랏의 기온에 맞는 옷차림으로 준비하여 밖으로 나갔다. 조식이 포함되지 않는 호텔 내부를 구경했다. 프랑스식인듯한 레스토랑이 2개 있는 것이 전부였다. 겉에서 보기엔 성 같은 크기 대비 호텔 객실과 규모는 그리 크지 않는 듯했다. 그중 한 곳으로 저녁 식사 예약을 해 놓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의 건물은 그 호텔과 같은 계열이라고 했는데 그 1층에 비교적 캐주얼한 레스토랑이 보였다. 사실 그 근처에 역사가 오래된 베트남 가정식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을 관광책자에서 발견하고 그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그 시기에 공사 기간으로 휴업을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깨끗하고 깔끔해 보이는 그곳으로 그냥 들어가서 참치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레스토랑 안의 실내 디자인은 호텔 내부만큼 과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레트로풍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몇몇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맛은 괜찮을 듯하여 안심했다.

     

    그러나 주문한 참치 샌드위치를 보자마자 당황했다. 내가 호찌민에서 즐겨 먹던 참치 샌드위치와 달랐다. 나의 기대는 호찌민 수준이었는데 그곳의 참치는 캔 깡통에서 갓 나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름지고 맛도 실망스러웠다. 전 날 밤 공항에서부터의 짜증이 이어지는 것 같아서 그 여행의 시작 느낌이 왠지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여행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것 또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게다가 주말여행은 그간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맛있는 요리와 충분한 휴식이 기본이 되어야 했다. 사람으로 인한 짜증과 이상한 음식 맛으로 달랏을 대면한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괜찮아, 지금부터 즐기면 돼'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달랏에서 보고 즐겨야 할 것들은 관광책자에 의지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른 관광 예약 필요 없이 그저 택시를 이용하여 구경할 장소를 가도 택시 가격이 워낙 저렴하였다.

     

    문제는 주말을 보내고 호찌민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호텔에서 비행기 예약 시간에 맞추어 또다시 호텔 미니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일행 중에는 지난번에 있었던 베트남과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2명의 남자가 보였다. 달랏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3번이나  비행기 이륙이 연장되었다. 비행기 점검을 위한 것이라고만 해명했으나 달랏 공항에서 자정이 되도록 출발하지 못했다. 공항에는 호찌민으로 가야 하는 다수의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대책을 요구했다. 나도 마음이 바빴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에 출근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날은 사무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업무였으나 출근은 해야 했다.

     

    거의 자정을 넘기는 시간이 되자, 베트남 항공사에서는 이제는 출발이 불가능하다며 모든 고객에게 달랏의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공항으로 모이라고 했다. 난감했다. 이상한 숙소일 것 같아서 묶었던 호텔로 연락을 했으나 갑자기 방도 예약이 되지 않았고 공항에서는 한 번에 버스로 달랏에 제공된 숙소로 사람들을 이동시키니 혼자만 밤늦게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다.

     

    한 밤 중에 다시 달랏 시내까지 다수의 승객들이 버스로 이동되었다. 밤 중에는 몰랐는데 일요일 오후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니 달랏 시내와 공항을 연결하는 도로들은 험난하고 옆이 낭떠러지 같아서 꽤 위험해 보였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숙소는 역시나 형편없었다. 침대도 담요도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옷도 벗지 않고 그냥 쉬었다. 모기도 있어서 앵앵 댔다. 밤 새 거의 잠을 못 자고 아침에 로비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베트남 항공사 측은 제대로 된 정확한 정보나 계획 없이 간단한 빵과 음료를 제공하고 또다시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다. 이른 새벽에 나는 호찌민 지사 사무실과 G에게 나의 상황을 알렸었다. G는 베트남에서 그런 일은 가끔 일어난다면서 무사 귀환을 바란다고 했다.

     

    숙소 로비에서 보니 예상보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았는데 다들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어디론가 가야 해서 연결이 안 되면 난감한 듯했다. 그중엔 어느 중년의 영국 부부가 있었는데, 호텔 버스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인 듯한 남자가 그들의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다른 관광버스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주말 골프를 즐긴 듯 한 그 남자와 그의 일행 미국인이 얼마나 그 지역 사정을 잘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관점에서는 그냥 좀 기다려도 비행 편이 나을 듯했다. 차량을 이용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거의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숙소 로비에 남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공항으로 가서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11시 반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에 도착하니 낮 12시 반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서 영국 부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그냥 비행기 편이 빠를 듯했는데 좀 걱정이 되었다.

     

    짧은 주말여행 동안 별 일을 겪으면서 월요일 낮에 호찌민에 도착하였다. 오후에 사무실로 출근하니 모두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공항도 베트남 항공사도 사무실 직원들도 그런 일은 그냥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천재지변도 자연재해도 아닌 그냥 그런 일이었다.

     

    달랏의 기후는 선선해서 좋았지만 무더운 호찌민에 도착하자 마음이 안정되고 익숙함에 안도했다. 베트남에서의 나의 집에 안전히 돌아왔다고 하는 마음, 그것이 더위를 잠시 잠깐 잊게 해 주었다.

     

    * Note :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고 언제나 평탄할 수는 없다. 반 백 살 넘게 살아보니 그러했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도 생겼다. 언제나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이해되도록 설명해 주거나 계획대로 진행되거나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인생의 대부분 나날들은 감당 가능한 소소한 정도의 의외의 일들을 대면하면서 흘러갔다. 그러면서 가끔 특별히 좋았고, 또 가끔 심하게 놀라고 두렵고 괴로웠다. 아니, 어쩌면 그때그때의 내 마음가짐의 상태가 실제보다 강도를 세게 또는 약하게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의외의 순간 벌어졌다. 예측도 준비도 할 수 없이 찾아왔다.

     

    여행도 그러했다. 좋으면서도 이상한 일들도 벌어졌다. 긴 인생이란 여행이 짧은 여행의 기복과도 닮아있었다. 다만 그 어느 순간에도 나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