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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에 대하여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5. 1. 22:02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의 첫인상에 대하여 잠깐 고민에 빠졌었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매 년 3월 2일 개학을 하고 새로 배치된 반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과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그 어색한 분위기가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 중에 하나였다.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때에는 더욱 힘들었다. 처음 찾아간 낯선 장소에서 더욱 낯선 인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입학식 전에 신입생 환영회이자 오리엔테이션 자리에 가서 처음으로 우리 과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역시나 아주 어색했지만 선배들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어서 그나마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당시에는 주로 인근 지역에서 배정받아 모인 초/중/고등학교와 달리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이 그저 신기했다. 내 또래의 학생들이 나에겐 익숙지 않는 여러 지방의 사투리를 써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척 흥미로워서 일부러 따라 하기도 했었다.
학생 때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어쩌다 보면, 사회성 좋은 몇몇 친구들 덕분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사회성이 아주 좋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차가운 인상이었는지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부정적인 단어를 직접 언급해 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내 주위 학생들이 모두 순진하고 무난한 성격들이었나 보다.
사회로 나와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입사원으로서 회사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쁘게 인사만 잘했어도 붙임성 있다는 말도 듣고 긍정적인 첫인상을 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아무에게나 인사를 건네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긴 복도의 저 끝에서 누군가 오는 것을 발견한 후,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에는 어색함에 괜히 갖고 있는 서류를 뒤적거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른 것을 하며 스쳐 지나갔다. 이후,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는 인사성 좋은 사람에게 눈길 한 번 더 가고,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기본적인 사회성도 없었던 나였다.
점차 시간이 흘러 나도 경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회사 내에서 팀원들과 밖의 여러 거래처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알아가고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가끔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업무를 떠나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나 지내고 겪다 보면 알게 되는 성향 등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웃으며 농담도 하고 장난도 쳤다.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나의 첫인상은 무척 차가운 듯했다. 특히나 웃지 않고 말도 안 하고 그냥 있으면 상당히 가까이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아마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긴장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말수도 자연스럽게 없었을 것이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나름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을 텐데 그런 나의 무표정이 그렇게 쌀쌀맞았다니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런 말을 몇 번 듣고 나니, 왠지 조금은 고치고 싶었다. 중요한 회의를 할 때는 의도적으로 진중한 표정을 하기도 했고, 집중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나왔을 무거운 표정을 애써 고치지는 않더라도 첫인상은 꽤 중요한 사회적 표정 언어인데 그래도 신경 쓰고 싶었다. 되도록 부드러운 미소를 많이 짓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애쓰는 표정에는 왠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을 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표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성향은 어느 정도 타고난 것이라면 교육과정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도 했다. 나는 알고 보니 어느 정도 리더의 성향 기질도 조금은 있는 듯했다. 어느 시기가 되자, 오히려 답답한 상황을 못 견뎠다. 처음 보게 되는 그룹, 상황에 따라 만나게 되는 그룹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모두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 되면 그냥 내가 나섰다. 먼저 인사와 소개를 하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대화 주제를 꺼내기도 했다. 고맙게도 누군가 먼저 나서 주면 나는 굳이 나서지는 않더라도 그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해 주며 분위기를 도왔다.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리더의 자리에 오르자 그런 역할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여전히 표현이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경력들로 인해 조금은 여유로웠고 나의 표정들도 자연스럽고 다채로워졌다. 상황에 따라서 계획한 표정이 어렵지 않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시기에 나를 처음 대했던 사람들로부터 듣게 된 나의 첫인상은 더 이상 차갑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탕한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푸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리스마(Charisma) 또는 아우라(Aura)가 풍긴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했다. 그 당시는 이미 동일한 업계에서 오랜 세월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잠시 전혀 다른 업계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카리스마는커녕 매일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이, 경력, 위치 등과 더불어 여러 사회적 경험들이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도 나의 영원한 숙제가 있었다. 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Poker face)가 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순간적인 감정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나보다 노련한 그 누군가에게는 어김없이 들켰을 것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장난을 치거나 놀릴 때의 나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도 친해진 사람들과의 농담과 장난은 스트레스 쌓이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웃고 떠들 수 있는 활력소였다. 그럴 때는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갔다.
충분히 생각한 끝에 25여 년 간의 직장 생활을 일단락 지었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심신이 휴식에 들어갔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 정신도, 오래된 숙제처럼 안고 살았던 내 신체 일부의 이상도 다시 좀 더 건강해지도록 돌보기 시작했다.
연이어 작년 2020년부터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꼭 필요한 활동 외에는 소극적 생활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전의 사회생활과 대비되어 나 혼자만의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외부 활동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되도록 몰아서 하면서 외출 횟수도 줄여나갔다. 나 혼자만의 공간,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는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게 되니 얼굴에서의 신호는 거의 눈으로만 가능했다. 가족, 잘 아는 친구나 지인 등은 쉽게 알아보겠지만, 처음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이나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되는 사람의 인상착의는 더욱 신경을 써서 보아야 각인되고 인지되었다.
한 편으로는 이따금씩 나누는 사람 간의 대화는 그 깊이를 떠나서 반갑기도 하다. 집에 뭔가 이상이 있어 수리를 해야 하거나 정기 점검을 위해 서비스를 오시는 사람들에게도 이 두려운 시기에 애써 와 주시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하고 음료수라도 챙겨 드리게 된다. 밖에서도 되도록 친절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그런 나 자신의 표현 방식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오지랖이 넓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예민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조심하여 배려하고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반쯤은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나의 인상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마음가짐의 변화 속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어도 그런 바람이 생긴다.
* Note : 그 누군가의 인생도 어려서부터의 사진들을 순서대로 보면 느껴질 것이다. 마냥 귀여운 시절, 고집만 세던 시절, 호기롭던 시절, 자신감 있던 시절, 실망과 번뇌 속에서 괴로워하던 시절, 아파하던 시절, 체념과 포기의 시절, 또 다른 희망의 시절.. 등 그 모든 순간순간을 살아내 오면서 수많은 순간만큼이나 사람의 인상들은 변해왔을 것이다. 그 어떤 시기에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이냐에 따라 첫인상의 느낌 또한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제부터의 내 삶에서 나의 첫인상이 어떻게 표현되고 만들어 질지 또한 전적으로 나 자신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부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면서 조금이라도 부드럽고 우아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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