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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윤리, 직장내 성인지 교육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5. 5. 18:05
요즘 우리나라를 강타하는 문제들 중에 하나는 조직, 그리고 그 안의 개인 윤리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심각한 것 중에 하나는 성인지 문제이다. 계획에 없었어야 했던 지난 4월 우리나라 보궐 선거는 서울과 부산 모두 부적절한 성인지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막대한 자금뿐 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상당한 충격과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내가 25여 년 간 몸 담아 일했던 글로벌 회사(Global Company)에서도 그 중요성을 심각하게 여기고 정기적으로 교육을 했다. 이름하여 '성희롱(Sexual Harassment) 방지 교육'이었다.
아주 오랜 전 일이었다. 내가 서른 중후반의 일로 기억되니 15년도 넘는 이전의 일이었다. 회사 내 다른 부서의 리더는 미국 국적을 가진 교포였는데 업무에서 인정받아 나이 대비 빠르게 승진을 이어갔다. 승승장구하던 리더는 중남미 지역도 관할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중남미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팀과의 회의 도중에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교육받는 그는 탁월한 영어로 중남미 지사의 직원과 의사소통을 했는데 단 한마디의 말실수를 했다고 했다. 직원이 바로 문제 제기를 했고 그 리더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현장에서의 말실수, 문제 제기, 그리고 사직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진행되어 종결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멀리 우리 사무실에서는 궁금증이 폭발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말을 했길래 속전속결로 사건이 종결되었는지 무수한 소문만 낳고 마무리되었다. 분명한 것은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에 업무 중에 화가 나서 내지른 말이었더라도 언어폭력이었다. 직원에게 성적으로 호감이 가서 한 말이었다면 그야말로 성적 언어폭력이었다.
당시 삼십 대의 싱글 여성이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 참 멋진 회사라고 생각되었다. 만약에 성적인 저속한 표현의 한 단어였다면 그 말 한마디의 효과와 결과는 대단하고도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당시 한국 사회의 기업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과연 그와 같이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남성 리더가 업무 중에 팀원에게 성적인 저속한 비어를 날렸다. 직원이 회사에 문제 제기를 했다. 남성 리더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깨끗이 승복한 후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15여 년 전의 사회 분위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과연 그렇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절망적 결말이 예상되는 이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회사였으니 워낙 광범위하게 직원들이 퍼져 있었다. 미국 본사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지역에도, 해외 각지의 지사에도 같은 회사의 이름 아래 직원들은 다양하고도 많았다. 그 모든 직원들의 지성, 인성과 감성이 담겨 공식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모두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관리와 통제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조직은 기본적인 도리를 지켜야 했다. 기본적인 윤리 의식은 있어야 했다.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 평판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다. 회사는 외부 전문 기관과의 협업으로 직장 내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모든 직원들은 일 년에 정기적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수해야 했는데 그 과정의 마지막 부분은 테스트 문항이 있고 일정 점수 이상이 되어야 합격하고 마감이 되었다. 지정된 기간 내에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계속 알람이 떴고, 기간이 넘으면 해당 직원의 리더와 인사 관리 부서로부터 교육을 받으라는 연락이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회사로 입사할 당시에 회사와 개인이 서로 합의하는 내용이 있었다. 입사 당시에는 합격의 기쁨과 설렘으로 내용이 제대로 각인되지 않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분명 그 내용 중에는 기본이지만 아주 절대적으로 중요한 항목들이 있는데 도덕 윤리적인 부분들이었다.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시 바로 퇴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숙지하고 서명까지 했었다. 비윤리적인 행동에는 성인지 문제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온라인(On-line) 또는 오프라인(Off-line) 방식으로 매번 받는 교육이 식상하거나 문제의식이 결여될까 봐, 매 번 방식을 달리했다. 직원들은 내용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때로는 조금 지루하고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교육 이수를 해야 했으므로 모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배우들이 여러 형태의 상황극을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실제 생활에서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일과 소소한 대화도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상대방은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들기도 했다. 꼭 여자만이 아니고 남자에게도 예민한 단어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그렇게 자칫 무뎌질 수도 있고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들을 깨달아 갔다.
예전에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내의 성 스캔들로 탄핵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런 큰일이 이 사회의 어느 구석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다.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우리 회사 내에서도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는 남녀 간의 사건사고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 남녀들이 합의하에 일을 냈다면 당사자들이 그 결과에 대한 예측과 책임은 각오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합의가 된 일이 아니라면, 다른 성(Gender)과 직위, 유불리 한 위치에 의하여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언어 성폭력이든 행위에 의한 성추행, 성폭력이든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조직이 직접 나서서 대책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끊임없는 교육으로 인식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 관리 체계도 있어야 한다. 불미스러운 일이 결국 일어났다면 바로 손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직이 피해자 개인 편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피해를 가한 가해자는 법규에 의하여 즉각 처리되어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는 강력한 조치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만약에 내가 그런 부적절한 일을 당했다면? 나는 당장 고발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을 보호하고, 나와 같은 또 다른 피해가 없도록 방지하는 일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회사가 나를 위해 합당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의 힘은 크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세뇌라는 것은 은근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기적인 교육도 은근하게 주입되고 각인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노력이고, 그것을 통하여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이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과 신뢰이다. 벌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히도 벌어졌다면 바로 손들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어 전달해야 한다. 조직은 즉각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앞 뒤 상황을 보고 피해를 준 사람의 지위와 분위기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즉각적인 철저한 조치가 절대로 멋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이 사회는 어떤가 생각해 본다. 작년에 밝혀졌던 서울과 부산의 공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의 파렴치한 행동들, 정치적 유불리에 의한 몰지각한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들은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았다. 최근에도 기업 리더들의 언어폭력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사건 대책과 위기의식의 부재와 더 심각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문제의 재발 방지책은 매번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담함과 답답함이 밀려오지 않고, 믿고 살 수 있는 시절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누군가가 아닌 모두가 신경 쓰고 참여해야 하는 일이다.
* Note : 반 백 년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내가 여자인 것이 싫었던 적이 없었다. 다시 태어나도 여자인 것도 좋다. 이런 나만의 취향이 확고한 것은 아마도 무의식적으로도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이 좋은가 보다.
하지만 차별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절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그것이 다행히도 나에겐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피해로, 불행으로까지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자로서도 차별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여서 남자여서가 아니라 다름에서 오는 상대적인 차이라고 여겼다.
성인지 문제는 중대한 사회 문제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조금의 예외 없이 철저히 다뤄져야 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 일어나는 즉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행해진다는 대책과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도 보호받고 지켜진다는 믿음, 그래야 살만한, 살 수 있는 세상 아니겠는가. 사실 그래야 당연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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