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를 경험하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과테말라를 경험하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7. 29. 23:40

    2000년대 중반의 중남미 첫 출장, 천만다행으로 온두라스(Honduras) 공항에서 되찾은 내 2개의 가방을 소중히 생각하며 이번엔 2번째 출장지인 과테말라(Guatemala)행 비행기를 탔다. 그 당시에는 같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도 직항이 없었다. 온두라스에서 과테말라로 이동하려면 중남미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하는 엘살바도르(El Salvador)를 거쳐야만 했다. 아마도 서울에서 제주도 간 거리 정도였는지 온두라스에서 엘살바도르로 1시간가량 비행을 한 뒤, 다시 엘살바도르 공항에서 과테말라까지 1시간 정도 비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기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사전 예약이 제대로 되어 있었고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마치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갈아타듯 시간이나 절차에 어려움은 없었다.

     

    엘살바도르에서 과테말라로 향하는 비행기는 뜻밖의 경험을 안겨 주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상하게도 비행기 활주로를 걸어야 했고, 이내 후배와 나는 그것이 프로펠러 비행기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별 경험을 다한다고 이야기했다. 비행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기체는 마구 흔들리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기복이 심해서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머리가 비행기 천장에 거의 닿을 듯했다. 비행 내내 심하게 요동을 친 후, 기장의 착륙 방송이 나오자 나를 포함한 모든 승객들은 더욱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와 후배도 거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숨죽이고 있었다. 비행의 요란함에 비해 다행히 착륙은 얌전하게 이뤄졌고, 비행기 안의 모든 승객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기도를 끝낸 후 박수를 치며 안도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번에는 잘 따라와 준 가방들을 모두 찾아서 입국장 밖을 나왔다.

     

    우리는 이번에도 같은 브랜드 호텔의 리무진을 예약해 놓았는데, 그 호텔 이름을 찾기 전에 딱 봐도 한국 사람들 같은 무리가 역시 딱 봐도 한국 사람들 같은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아는 척을 했다.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중남미 국가들 간의 업체들은 이미 연락을 빠르게 취하고 있었고 온두라스에서의 우리의 일은 이미 공유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호텔 리무진이 예약이 되어있어도 공항까지 마중 나온 것이었다. 너무 미안하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엔 이변 없이 도착한 우리는 인사를 나눈 후,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준비된 차량을 이용하였다. 같은 브랜드였지만 과테말라의 호텔은 새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좀 더 세련되어 보였다. 차량 이동시 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도 온두라스보다 발전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시내라도 치안은 역시 위험하고 특히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쉽게 표적이 되니 절대로 우리끼리만의 행동은 자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호텔 도착 후 간단히 짐과 여독을 푼 후, 약속 시간에 맞춰 로비로 가니 예전부터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그 당시 중남미로 파견되어 일하고 있었던 업체 직원들과 정말 오랜만에 재회하였다. 우리는 서울에서는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일했던 사이였지만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타지에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 정겹게 인사했다. 

     

    중남미 음식들은 내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지난 세월의 역사적인 이유로 스페인, 포르투갈 언어와 음식들이 중남미 문화로 재탄생되었고 나는 스테이크, 샐러드, 닭튀김, 수프 등의 음식들과 무엇보다도 그 소스들이 입맛에 맞았다. 특히 토마토와 야채가 많이 들어간 수프는 속도 풀리고 좋았다. 과테말라 수도, 도시의 날씨는 온두라스보다도 기온이 약간 낮았지만, 과테말라는 지역의 높낮이, 고도가 달라서 지역별로 느껴지는 기후도 다르다고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온두라스의 날씨보다도 조금은 알싸하지만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1월이어서 가장 추운 때라고 했지만 준비한 얇은 가죽 재킷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 일행은 재회를 축하하며 약간의 술을 곁들인 식사를 시작했다. 도착해서 알고 보니 중남미 지역은 커피 말고도 와인과 보드카, 스테이크의 맛이 일품이었다.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들끼리 서로 자기 나라 생산이 더 좋다고 경쟁이었지만 나는 중남미 전체가 다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빡빡한 일정으로 처음에는 좀 주저하였으나 오랜만의 만남으로 와인에 이어 레몬, 소금, 커피를 약간 곁들인 데낄라까지 맛을 보니 금방 자정이 넘었고 그날은 그렇게 침대로 돌아와 바로 숙면을 취했다. 얼마 후 울려대는 알람에 힘겹게 깨어나 과테말라에서의 첫 일정을 위해 서둘러 준비하여 내려가서 그동안 이메일로만 주고받으며 일했던 과테말라 우리 회사 지사 직원들과 첫 대면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직원이 준비한 차량에 올랐는데 그렇게 그 지역 현지인들과 다니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다고 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고 했지만 나는 처음 도착해서는 잘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직원의 차량이 출근길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구부러진 도로 위에서 속도를 내니 이내 속이 매스꺼웠다. 본래 차멀미가 없는 나는 약간 고통스러웠고, 지사 사무실이 있다는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약간 토했고 이후 차츰 괜찮아졌다. 직원은 높은 고도 탓 때문이라고 걱정스러워하며 나에게 알약을 주었는데 나는 고맙게 받아놓고 먹지는 않았다. 직원은 어젯밤 일을 모르겠지만, 나는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숙취해소 음료가 그리웠다. 아마도 남아있는 술기운 탓이었을 것이고 이후 회의를 시작하며 마신 그윽하고 깊은 맛의 과테말라 커피에 정신이 버쩍 깨어났다.  

     

    일정대로 업무를 이어나갔다. 방문하는 한국 기업들의 생산기지, 공장들마다 보안은 철저했고 규모나 생산 업체들의 수도 온두라스보다 훨씬 많고 생산도 안정적이었다. 우리는 업체별로 공장별로 장/단점들과 객관적인 평가들을 기록하며 향후 비즈니스를 위해 더 발전하기 위한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중남미 업체를 방문하면서 또 하나 발견한 것이 있었다.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생산을 하는 직원들은 현지 인력을 대거 뽑아서 직접 훈련하였으나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직들은 거의 대부분 파견된 한국인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관리도 현지화 작업을 시도하였으나 내가 방문했던 시기만 해도 거의 관리직은 한국인들이었는데 그들의 식사 해결을 위해 업체들은 한국으로부터 거의 식당급 수준의 인력을 투입했다. 관리자들의 근무 환경과 편의를 위해 구내식당을 마련하고 초기에는 한식 조리사들을 투입하여 음식을 담당하게 하고 현지인들을 숙달시켰다. 일정상 점심은 항상 방문하는 공장에서 그들과 함께 했다. 덕분에 출장 중에도 한식을 그리워하지 않고 현지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하긴 그 머나먼 나라까지 가서 고생하면서 산업전선에서 일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식사 정도는 회사의 배려가 많이 필요로 했을 것이었다.

     

    금요일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낸 후, 주말을 과테말라에서 보내게 되었다. 예전에 중남미에서 잠시 근무했던 서울 지사의 선배님의 사전 정보로 주말을 과테말라에서 유명하고 비교적 안전한 곳에 머물기로 예약을 하였고, 현지 지사 직원들도 우리의 일정을 듣고 그들도 안심하였다. 이제는 꽤 유명해진 "안티구와"와 "아띠뜰랑"이라는 곳이었다. 업무 일정을 마친 후 금요일 저녁에 안티구와로 이동하였다. 비교적 안전하고 온화한 기후인 안티구와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별다방에서도 그 지역의 커피 원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인접한 중남미 지역이다 보니, 미국의 부호들이 그 지역에 별장을 가지고 있어서 주말이 되면 전세기로 와서 각종 파티와 결혼식 등도 한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은 안티구와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 있는 역사 깊은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마치 미술관처럼 꾸며놓은 호텔 내부 장식도 훌륭했지만 로맨틱한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향초와 아름다운 정원 같은 호텔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왠지 프러포즈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연인들이 눈에 띄었고 그 속에서 우리 일행은 맛난 음식들을 극찬하며 음미했고 긴장을 풀고 축배를 들기에 바빴다.

    우리는 현지인들만 알 수 있다는 한적하고 코지(Cozy)한 호텔에 묶었는데 침실도 아늑하고 스페인풍 색채의 예쁜 타일들로 꾸며놓은 욕실도 마음에 들었다. 각종 꽃으로 장식해 놓은 높지 않은 호텔의 옥상 정원에서 주말 아침의 햇살로 일광욕도 했다.  이어 작은 마켓들이 즐비한 거리로 가서 중남미 색채가 묻어나는 기념품 쇼핑을 했다. 가성비 좋은 쇼핑이었는데 가족들과 지인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로 좋았고, 나는 아직도 색채 뚜렷한 중남미 장식품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점심으로 현지 치킨 집을 탐방하기로 했다. 미국의 그 유명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아저씨가 상륙했다가 유일하게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중남미였다. 기억되는 브랜드 이름은 아마도 "뿌요깜베오?!"이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닭 모양의 간판이 쉽게 눈에 뜨였는데 중남미 지역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역사 있는 치킨 집이었다. 상부 조직에는 마피아 갱단이 결부되어 있다고 하니 외부 세력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일단 가격이 대중적이고 맛은 유명 브랜드에 뒤지지 않게 좋았으니 우리는 그냥 그대로를 즐겼다.

     

    과테말라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기후도 온화하니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유학생들이 값비싼 유럽행의 차선책으로 안티구와를 택하기도 했고, 때로는 커피를 공부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에 안티구아를 떠나 거대한 호수, 아띠뜰랑으로 향했다. 차로 거의 2시간 넘게 달렸던 것 같았다. 안티구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녁이 되어 어두운 시각에 도착하여 일단 예약해둔 호텔로 갔다. 넓은 객실이었지만 시골스러운 풍경이었고 시설도 소박했다. 우리 일행은 준비해 간 삼겹살과 여러 음식들로 바비큐를 해서 맛있게 먹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하늘의 별도 많고 신선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호수 탐방에 나섰다. 말 그대로 호수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거대한 사이즈나 파도 같은 물결도 마치 그냥 바다의 일부 같았다. 그 넓은 호수를 제대로 맛보려면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물살을 시원스럽게 가르는 보트에서 내려다보면 그 색채와 깊이에 압도되어 조금은 두렵기까지 했다. 여기서 자칫 빠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끝날 것 같았다. 지도를 보면 열 개도 넘는 마을들이 드문드문 호수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보트로 질주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에 내려서 잠시 둘러보고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호수 구경만 하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렸는데 오염되지 않는 그야말로 청정한 자연 그대로 같았고 마을들도 소박했다.

     

    늦은 오후 다시 수도인 과테말라시티 도시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도심에 있는 퐁뒤 집을 갔는데 너무나도 맛있는 맛에 반했다. 질 좋은 고기와 풍미 깊은 치즈의 만남, 그리고 중남미 밴드의 연주가 흥겨워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했다. 이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중남미 출장을 갔을 때도 그 퐁뒤 집을 일부러 찾아 방문했었다. 일요일 밤이 지나면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다음 출장지인 니카라과(Nicaragua)로 떠나야 했다. 알고 보니 그 당시는 비즈니스 출장자들이 많은 새벽 이른 그 비행기를 타야 롤러코스터급의 프로펠러 비행기를 피할 수 있었다.

     

    * Note :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딱 맞는 듯했다. 그 시절에 이미 어떻게 알고 그 머나먼 나라의 휴양 도시인 안티구아까지 가서 어학연수를 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업체 소속으로 파견된 것도 아니고, 그 기업들의 직원들을 위해서 그 험한 여정을 뚫고 식당업을 할 생각을 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우리 회사에 취직하고 일하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갔을 많은 일들과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먼저 빨리 새로운 가능성을 파악하고 시도하고 바로 실행한 도전자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TV에서 중남미에 머무르며 커피 농장을 일구고 배우고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흥미롭게 시청하였다.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보다 결코 작지 않은, 또 다른 경이로움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태어나서 두 발로 밟고 있는 그 땅이 아니고 또 다른 세상을 접하고 새로움에 도전하고 삶의 터전을 개척한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