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소 더딘 사람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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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다소 더딘 사람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7. 18. 22:57

    우리나라의 학기는 3월에 시작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시기부터 현재까지 동일하다. 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3월 태생부터 다음 해 2월까지 태생의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 되었으니 11월 중순에 태어난 나는 앞선 3월생보다는 약간 성장이 늦었을 수도 있었겠다. 물론 12월~이듬해 2월까지의 태생보다는 내가 조금 유리할 수는 있겠다.

     

    학교에 다닌 이후 나는 산수/수학에 소질이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유년기 구구단은 무리 없이 외웠고 이후 여러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독 수학적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괜히 기가 죽고 그런 사람은 유난히 존경하게 되었다. 확실히 개개인에 따라 능력이 달랐다. 대학 입시 준비를 할 때 국어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적절한 점수가 안정적으로 나왔다. 반면 수학은 항상 미적분 중간 단계 이후로는 거의 포기를 했었다. 어려워지는 적분, 통계와 확률 부분은 자연스럽게 안~녕~

    영어는 그 당시 입시를 위한 문법은 외우면 되었지만, 이후 사회로 나와서 실제 직장 생활에 필요한 영어는 거의 초심으로 다시 공부해야 했다.

     

    학창 시절의 공부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 그리고 평생 살면서 필요한 지혜로움은 가깝고도 먼 사이랄까?

    요즘은 생활에서 워낙 짧고 때로는 긴 문장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전화로 해결하기보다 문자로 주고받은 것이 습관이 되면서 단어 선정과 문장의 완성도를 생각할 필요가 생기기도 했다. 같은 내용의 문자라도 주고받는 상대에 따라 격식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대면이나 음성으로 주고받는 대화의 기술도 그렇고 문자, 단어와 문장을 이용한 글의 방식도 그렇고 각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 때는 국어를 그리 힘들게 공부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는 능력 하나하나가 만만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나의 3번 언니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했었다. 지금도 우리 4명 자매들의 문자 단톡 방에서 우리는 때로는 3번 언니의 지적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솔직히 뭐가 맞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솔직히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창피한 것보다는, 친언니에게 지적받는 것은 고맙고도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항상 혼동되는 단어는 배워도 쉽게 잊고 다시 혼동된다. 요즘은 띄어쓰기도 참 어렵다. 언니는 트렌드를 반영한 그 해의 표준말 변화도 잘 파악하고 있다. 역시 그 부분에 소질이 많다.

     

    회사에 입사한 후, 영어로 쓰기/읽기가 먼저 많이 사용되고 이후 말하기/듣기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되었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 외에 따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금방 한계가 드러났다. 소위 글로벌 회사 (Global Company)에 입사하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시급함을 몸소 느끼자, 아침 일찍 출근 시간 전에 영어 학원을 등록했다. 집에서 강남역에 있는 영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한 후, 다시 삼성역의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별로 실력이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고, 잠시 쉬면 바로 잊어버리니 언어적 능력(Sense of Language)이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부모님의 명석하심을 물려받았다면 더 똑똑했을 것인데.. 나는 왜 이럴까?' 하고 나 자신의 노력보다 유전적 요소를 의심해 보기도 했다.

     

    솔직히 내 IQ를 지금도 정확히 모르는데 분명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정도라면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가끔 나 자신에게 흔히 말하는 '구멍'이 발견되곤 한다. 가벼운 예로, 어느 날 나의 직장 선배와 함께 이집트를 거쳐 인도와 방글라데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경유지가 많아 두바이 항공을 여러 차례 이용하게 되는 고생스러운 일정이었는데 사람들이 그 지역 마시는 물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배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했다. 나보다 음식과 물에 예민한 선배는 극도로 조심하는 눈치였다. 기내에서도 밀봉된 물만을 마셨는데, 나는 어느 순간 탄산음료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주문했다. 탄산음료와 함께 얼음을 원하냐는 말에 나는 선뜻 Yes라고 답했다. 뭐니 뭐니 해도 얼음 동동 뜬 탄산음료가 제격인지라.. 곧 선배는 나에게 귀속말로 속삭였다. "그 얼음은 어떤 물로 얼린 건데?"... 흠... 다행히 안전한 기내식이라서 그런지 나는 별 탈 없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나의 눈치나 센스의 정도에 헛갈릴 때가 있었다. 이것은 교육이나 노력으로 극복되기 힘든 부분이다. 어느 경우에 나는 기발하게 머리가 돌아가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고 웃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따분한 일상 중에 가벼운 장난은 나의 취미이자 특기로 순간적으로 나오는 연기력과 재치가 있었다. 가끔 회사 내의 회의나 정기적인 콘퍼런스(Conference), 워크숍(Workshop) 같은 장이 열리면 나는 가볍게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상황을 봐서 실제로 표현하곤 했다. 다소 경직된 첫 만남이나 차가운 첫인상을 타파하기엔 좋은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업무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 모르는 것으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능력, 직장 내의 다소 정치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회사 정책과 연결되어 복잡한 이해관계가 관련된 문제들이 생기면 순간 나의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 이후, 누군가로부터의 실타래 푸는 것을 관찰하고 이해한 후, 그것을 토대로 모방 또는 모방에서 발전된 응용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존경하는 리더들, 선배들 혹은 동료나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좌절하기도 하고 그들이 마냥 커 보이고 나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회의 중에 똑같은 사안으로도 각기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을 보면서 이따금 나의 존재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나이를 떠나 똑똑하고도 절제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발언과 처신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경이롭다. 또 한 가지,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처리, 때에 따라서 울그락불그락 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도 길들이고 싶은 능력 중 하나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제일 답답하게 생각할 때는 누군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일을 만들 때이다.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센스가 있고 분위기 파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어떤 상황에서는 영 분위기 파악이 힘들 경우에도 직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판가름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듣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 혹은 그룹의 대화를 잘 듣다 보면 거기에 답이나 힌트가 있고,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분위기 파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 의하여 잠시 그 대화에 동참하지 않았거나 잠시 다른 생각을 했거나, 잘 듣지 않고 다음에 내가 이야기할 부분에 집중할 경우 문제로 이어졌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에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것 또한 상당한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뭐든지 새로운 것에 남보다 빨리 시작과 적응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얼리어댑터 (Early Adaptor) 형이 아니다. 누군가 시작하고 대중화된 후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Multi-Player) 형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이것저것을 하는 비상함을 보여주지만, 나는 한 번에 한 가지를 하는 것이 신속, 정확도가 가장 높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게 되면 뭔가를 놓치거나 제대로 못 알아듣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던가, 결국은 다시 하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지금도 되도록이면 TV 시청과 신문 읽기를 동시에 하지 않는다.

     

    25년 간의 직장 생활을 마감한 후, 책 읽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나는 다독을 하기보다는 하나를 읽더라도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 오래전에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는 책들 중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처음 읽는 책 같이 느껴졌다. 예전엔 그냥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솔직히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었나 보다. 25년 직장 생활 속에, 몸 담았던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직원들 교육에 주력하였는데 나중에는 주로 리더십 스킬(Leadership Skill)에 관한 부분이 많았다. 그 교육이 헛되지 않았는지 이제는 저자인 카네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속속 되었다. 이 책은 항상 내 옆에 두고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는 뒤떨어지는지 나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이러다가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끝내 모르고 이번 생은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나는 아직도 나를 관찰 중이다.

     

    * Note :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탁월한 재능이나  뛰어난 능력이 없는 내가 25년이나 큰 울타리 안의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슬기로운 인간관계에 서툴렀던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직장 선배들, 동료들, 후배들의 인내와 너그러움에 새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길이 바른 길이고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고 꾸준히 걸어간 것, 그 원동력을 가진 나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지금도 다소 더딘 나는, 그래서 대기만성 형이라는 말이 왠지 끌린다. 그래서 다시 읽는 책을 지금이나마 이해하는가 보다. 그렇게라도 하나하나 이해하고 배워가고 깨닫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이가 들면 암기력은 떨어지지만 이해력은 늘어간다고, 누가 그랬나? 솔직히 말하면 둘 다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유일한 재산은 이미 겪었던 일이나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깨달음으로 실수를 줄이고 조금은 지혜로워지고자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나의 길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고, 그 일을 열심히 했더니 나 자신이 평안해지고 여유로워지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이왕이면 괜찮은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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