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담긴 표현이 진정한 사회인을 만든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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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심이 담긴 표현이 진정한 사회인을 만든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8. 26. 23:15

    다른 편에서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실수와 잘못된 판단들을 했다고 고백했다. 일정한 주기로는 아니었지만 잊을만하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나도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을 내렸던 것 같고 그렇게 내린 결정에는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히려 그저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일, 바빠서 혹은 어떤 이유에 의하여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고민 없어 보였던 잘못된 판단들은 정말 어디 가서 머리를 박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괴감은 그나마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다. 직장 생활이란 공적인 사회생활이다. 그 사회 안에서는 공과 사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아무리 친한 동료나 선후배 관계일지라도 일이 관련된 시점에서는 철저히 공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관계가 오래갈 수 있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서로가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으로부터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질렀던 실수와 잘못된 판단들 자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더욱 많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나의 표현력이었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때로는 그릇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난 후, 나의 태도 그리고 나의 표현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세월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말 한마디와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젊었을 때, 즉 과거를 회상하면 참 표현력이 서툴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물론 나의 표현력은 서툴고 아쉬움이 많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할 때 그 표현력이라는 것은 한 끗 차이이면서도 생각보다 다른 결과와 평판을 가져온다.

     

    신입 사원이었을 때에 무심코 했던 행동들과 실수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는 엄청 나 자신을 나무랐지만, 겉으로는 표정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잘못을 알려 주면, "네"하고 대답만 잘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무표정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정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내가 말 한마디라도 "어머,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생각이 없었네요, 앞으로 신경 써서 잘하겠습니다"라는 식의 깔끔한 인정과 표현을 더 했다면 상대방도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안해함을 이해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그냥 책망하며 가만히 있으면, 어쩌면 상대방은 속으로, '뭐야, 실수를 해놓고 잔소리했다고 기분이 나쁜가?' 하고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만약에 실수를 했어도 싹싹한 태도로 진솔한 미안함을 표현했다면, 나는 가끔 실수는 해도 나름 괜찮은 애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그것을 깨달은 것은 세월이 흘러 내가 직접 인터뷰를 하고 팀원을 채용하고 함께 일하면서 현실에서 더욱 실감이 되었다. 어차피 초기의 신입 사원들 그리고 비슷한 연차의 직원들의 실력은 고만고만 비슷하다. 하지만 약간의 태도 차이와 센스 있는 표현력은 경쟁 속에서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상사 눈치 보고 기분 좋은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정확한 의사 전달을 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있다고 아니면 어떤 이유에 의하여 자신이 없다고 하면 리더로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다.     

     

    한창 일이 많아지고 사람이 부족할 시기도 있었다. 회사 본사에 인력 충원을 말하였지만, 일의 능률을 강조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다시 보면서 빼고 줄여야 할 일들을 과감히 버리고, 업체들을 너무 과잉되게 보살피지 말고 교육하면서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넘길 것은 넘기라고 했다. 말이 쉽지 그리 간단하거나 단기간에 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면서 우리 동료들은 불만을 서로 토로하기도 했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서 자연적인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열심히 맹렬히 살았다. 그러다 생각이 부족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것이 문제로 이어지면 왠지 정말 허망한 기분이 밀려왔다.

     

    나는 어느 날, 업체 말을 믿고 진행한 일이 품질 문제가 되었을 때,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했을 때, 왠지 모를 한계를 느꼈다. 그 날은 오전에 부서장님으로부터 한소리 듣고, 자리로 돌아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후에 산적한 일을 놔두고, 오후 반차를 냈다. 부서장님은 "왜, 무슨 일 생겼어요?"라고 물으시면서도 굳이 내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허락의 사인(Signature)을 해 주셨고 (그 당시는 아날로그적인 사인 방식이었다) 나는 이내 회사를 나와 한강 고수부지로 향했다. 혼자 강가에서 하늘과 강을 번갈아 보면서 내 능력이 어디까지 인가, 계속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당시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이런 고민을 하려고 갑자기 휴가를 낸 것을 이해하셨을까? 부서장님은 더 이상 말없이 사인을 해주심에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아니면, 그분도 속으로 '뭐야, 내가 아까 한소리 했다고 삐져서 반항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어떤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관세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나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즉시 업체로 달려갔다. 문제를 처음부터 솔직히 알려 드린 후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피해를 최소 할 방법을 모색했다. 업체 사장님은 다행히 전반적인 비즈니스 상황을 고려해 보시면서 그 아이템만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진행해 주신다고 하셨다.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진심을 다해 표현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문제 해결에 급급하여 부서장님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을 뒤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내 마음 저 안에 자존심 때문에 나의 잘못을 들키고 싶지 않음이 더 컸으리라. 업체 사장님이 부서장님과의 어느 대화에서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오히려 나의 그런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함과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좋게 이야기하셨나 보다. 부서장님은 끝내 나를 따로 불러 언급하시지 않고 넘어가 주셨다. 이후에 생각해보니 그러한 면이 그분의 리더십 중에 좋은 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나의 잘못을 충분히 스스로 알고 깨닫고 있었고, 이후 유사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냥 지나가 주신 부서장님이 존경스러웠고 나는 스스로 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과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었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부분이지만 사회에는 예나 지금이나 갑과 을이라는 관계가 존재한다. 우리 회사 본사의 바이어들이 갑이었고, 우리 한국 업체들은 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회사 지사에서 중간자적인 업무를 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 직원들도, 업체들은 갑으로 보았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는 갑의 생활을 했다. 말이야 의도치 않게 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갑의 생활에 젖어 있었다.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하는 나였지만 내가 기준으로 삼는 사회생활의 기본 중에 하나는 윤리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었다. 나 또한 못난 점, 잘못한 점도 많았고 까칠한 성품도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비즈니스를 하면서 맹세코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한 일은 하지 않았었다. 모든 것은 회사의 규율 안에서, 정해진 기업 윤리 안에서 그리고 상식적인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생활했다. 아마도 그런 나를 알게 되고 나에 대한 평판이 쌓이면서 회사 내에서도 그리고 회사 밖 업체에서도 때로는 나의 과오로 인한 문제도 기꺼이 해결을 위해 협조해 주셨던 것 같았다.

     

    직장 생활 초~중반까지는 적절한 표현을 먼저 하지 못하고 서툴렀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도 있거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죄드립니다. 이런 기본적인 말들은 참으로 중요하다. 간단한 이 말들을 왜 그리 아껴두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아둔하다. 고마움을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잘못을 했을 때는 깨끗이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에 인색했다. 아마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나 보다. 나의 잘못에 스스로는 자책하지만 겉으로는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순간적으로 숨기고 싶었던 일들은 언젠가는 항상 밝혀지고 만다. 그리고 먼저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고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것도 아닌,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또 다른 격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모여 사회인으로서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 Note : 사회에서 모든 일은 상황에 따라서 그에 맞는 센스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잘못에 대한 빠른 인정이 오히려 시간을 아끼고 해결책을 구하기에도 이롭다는 사실은 직장 생활 중반 이후에나 깨달았다. 물론 글로벌 회사에 다니면서 여러 인종, 문화, 나라, 지역 등 다양함 속에서 일하게 되니 상황에 더욱 민감해야 했다. 간혹 중요한 협상에서의 빠른 인정은 경우에 따라서 스스로 불리해지거나, 상대방에게 약점이 노출되거나, 부정적 요소를 심어주어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양한 상황에 따라 항상 센스 있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말과 행동, 진심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통했다.

    어리고 젊을 때, 그 기본이 되는 감사와 미안함을 아끼지 말고 표현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리더로 성장해 나가면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조용히 믿어주고 넌지시 알려주고 아낌없이 격려해 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현들이 뭐가 그리 어려웠던 걸까. 내 생각이 그러하면 그냥 그렇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표현을 너무 아끼다가 결국은 내 마음을,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 더 서러웠던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진심 어린 마음을 센스에 담아 툭 던져보자, 지금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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