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골절상을 당하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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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 골절상을 당하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0. 8. 19. 23:10

    나는 반 백 살 즈음에 오른쪽 다리 무릎 한가운데 있는 뚜껑뼈에 가로로 금이 가는 골절상을 당했다.

     

    2018년 9월 초의 일이었다.  눈 앞에 목적지를 발견한 후, 그냥 오던 발걸음의 가속도에 의하여 내디뎠는데 내 발 바로 아래, 단 몇 개의 계단이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발아래, 낮은 계단 몇 개 아래로 꼬꾸라져서 개구리가 대자로 뻗듯이 넘어졌다.

     

    어른들 말씀에, 자고로 병은 알리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니 병이 생겼을 때 알리면 의외로 주변에 같은 병을 갖고 있거나, 이미 앓았다거나 하는 주변의 이야기들과 함께 이것저것 경험했던 사람들로부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는 말 같았다. 요즘 세상에는 SNS가 그런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대책 없이 넘어진 후, 잠시 정신을 수습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순간적인 넘어짐으로 인해 손으로 어딘가를 짚을 경황도 없어서 양 손은 괜찮았다. 보통은 앞으로 넘어질 때 순간적으로 손으로 먼저 짚으려고 하다가 손이나 팔 뼈가 다치거나, 그대로 얼굴이 먼저 닿거나 치아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물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것은 없는 듯하다. 나의 경우는 양다리, 특히 무릎에 이상이 있는 것이 직감되었다. 특히 오른쪽 무릎은 바닥에 심하게 닿아서 아팠다. 119를 부를까 생각도 잠시 했으나 그 정도는 아닐 듯해서, 119 출동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길 만 건너면 정형외과가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천천히 걸어갔다. 오른쪽 무릎에 계속 이상을 느끼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상태에서는 그대로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움직임으로 인해 골절이 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정형외과에 도착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엑스레이를 바로 찍었다. 다행히 왼쪽 무릎은 타박상 정도였으나 오른쪽 무릎은 느낌대로 골절이라고 했다. 무릎 중앙을 감싸고 있는 뚜껑뼈에 가로로 금이 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병원은 개인 병원으로 정밀검사나 정도에 따른 깁스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 진료서를 작성해 주고 큰 종합병원으로 소개, 예약을 해 주었다. 대기가 많아서 큰 종합병원으로는 며칠이 지난 후에나 갈 수 있었다. 그 며칠 사이에 무릎에 하고 있으라고 압박용 밴드 같은 것을 주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압박 밴드 중앙에 난 구멍으로 피가 쏠려 보이는데 왠지 그렇게 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병원에 가니 역시나 피가 쏠리면 안 된다고 압박 밴드 사용을 금하고 다시 무릎뼈를 임시로 고정하게 하는 반깁스 같은 장치를 해 주었다. 며칠을 그것으로 버티다 예약에 맞추어 큰 종합병원으로 갔다. 나중에 생각하니 개인 정형외과에서 석고 깁스가 안되면 그 즉시 좀 더 큰 중소 병원이라도 갔어야 했나, 아니면 응급실을 통해서라도 큰 병원으로 가서 하루라도 빨리 깁스를 했어야 했나 하는 등, 여러 생각과 아쉬움이 남았다.

     

    큰 종합병원 도착 후 바로 정밀검사를 더 했고, 뼈에 가로로 금이 하나 뚜렷이 갔으나 다른 곳은 이상은 없고 금 자체도 수술까지 할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석고 깁스를 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연히 굳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정도도 바로 깁스를 못하고 큰 병원으로 이동시키는 요즘 개인 정형외과 병원의 상태를 다소 한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바로 병원에서 깁스를 해주었다. 단순히 무릎뼈 금을 굳히기 위한 깁스라고 생각했는데 석고 깁스의 길이는 오른쪽 다리 하나 전체였다. 그만큼 다리 자체를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무거운 석고 깁스를 허벅지 위로부터 발목까지 하니 그야말로 몸이 휘청할 정도로 무거웠고 마치 철갑을 두른 듯했다. 목발을 샀다. 목발을 의지 하지 않고서는 다닐 수도 없었지만, 반드시 목발을 짚고 다니라고 했다.

     

    2018년 9월 초, 늦여름의 일이었다.

    1번 언니가 차로 병원을 데리고 다녔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3번 언니가 종종 집에 와서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의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혼자 사는 싱글이니까.

    그렇다고 누군가 계속 옆에서 도움을 줄 일도 딱히 없었다. 집 안에서도 목발을 짚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누가 있은 들, 결국 나의 몫이었고 남이 어떻게 도와줄 일도 특별히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무기력해 본 적이 그때까지는 없었던 것 같았다. 9월 초의 늦여름 더위에 에어컨을 켜고 무지막지한 석고 깁스를 두르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그나마 제일 편한 자세였다. 옆으로 누워도 석고의 무게로 편치 않으니 똑바로 오래 누워있으면 뒷 머리가 아프고 저려 오는 것 같아서 거실 소파로 이동을 한다. 소파나 의자에 앉아도 깁스 때문에 다리는 곧게 핀 상태가 되니 자연히 등받이와의 각도도 신경을 써야 한다. 혼자 사는 집안에서 여기에서 저기 가는 것도 하세월이 걸린다. 제일 힘든 일은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보는 일이었다. 변기에 앉을 때도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평소처럼 제대로 힘을 줄 수도 없었다. 다행히 머리를 감을 수는 있었지만 시원스럽게 샤워를 할 수는 없었다. 방수포를 구입 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시원스레 샤워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할뿐더러 너무나도 무겁고 더운 힘든 2주가 지났다.

     

    다시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두려웠다. 일단 석고 깁스를 2주 한 후에 다시 보자고 했는데.. 뼈가 잘 굳고 있지 않을까 봐, 그래서 석고 깁스를 더 해야 한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다시 찍은 엑스레이를 보시면서 의사 선생님은 쿨 하게 석고 깁스를 떼고 대신 탈 부착이 가능한 깁스를 4주 한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대신 움직일 때는 항상 깁스를 하고, 항상 다리를 석고 깁스할 때처럼 펴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운동을 알려 주셨다. 알고 보니 석고 깁스를 오래 하면 그대로 관절이 굳어서 이후 다시 제대로 구부리기가 힘들어진다.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기했다. 2주간 석고 깁스로 꼼짝 못 하자 오른쪽 다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뻗정다리 상태로 있다가 석고 깁스를 뗀 후, 처음에는 다시 붙어가고 있는 뼈의 금이 다시 벌어질까 봐 무서워서 무릎을 구부리기가 무서웠는데 이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여 구부리려 하니 모든 주위 관절과 근육들이 굳어서 구부리려 해도 구부릴 수가 없었다. 난감했다. 2주 만에도 내 다리가 이렇게 되는데 더 오래 입원을 하거나 깁스를 오래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구부리기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한편으로는 금이 간 곳이 다시 어떻게 될까 싶어서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탈 부착이 되는 깁스로 바뀌니, 깁스를 빼고 전신 샤워를 시원하게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깁스를 둘렀던 오른쪽 다리에서 처음에 얼마나 때가 슬슬 밀리도록 나왔는지 모른다.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청명한 날씨의 10월이 되었다. 슬슬 몸이 바깥 날씨를 원했다. 깁스를 하고 목 발을 짚고 아무도 몰래 집을 탈출하여 집 앞 동네 카페로 천천히 갔다. 야외 좌석에 앉아서 풍미 깊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10월의 가을 날씨를 만끽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또다시 4주를 넘기고, 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1번 언니는 이번에 깁스 졸업을 못해도 실망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다행히 일상생활에선 깁스를 떼도 좋으나 당분간 목발을 짚고 걷고, 잠버릇이 심하면 당분간은 탈부착 깁스를 하고 자라고 했다. 자는 동안 본인 모르게 심하게 움직여서 다시 뼈를 건드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나는 똑바로 누워서 비교적 얌전히 자는 타입이었다. 다시 약 2개월 후에 뼈가 제대로 굳어가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고 했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목발과 친구가 되어 생활을 했고, 재활 운동 같은 자세의 운동도 지속적으로 했다. 점차 움직임이 예전처럼 돌아왔지만 뼈에 무리가 갈까 봐 스스로도 조심스러웠다.

     

    2개월 후, 다시 의사 선생님 진료를 보니 이제 뼈는 제대로 붙어가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더 이상 병원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절대로 뛰지 말고, 특히 농구 같은 수직적인 뜀의 움직임은 삼가고 보통의 운동 강도 정도도 적어도 6개월 정도 지난 후 슬슬 시작하라고 했다. 보통 운동선수들도 골절이나 사고 부상이 많은데 꼭 얼마 안 돼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가 다시 부상을 당하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반 백 살이 되어서 뼈가 골절된 것이니 앞으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이후 나이가 더 들면서 관절염 같은 것이 오기 쉽다고 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일단 병원은 졸업했다.

     

    그러던 중, 12월 중순경에 갑자기 새로운 직장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2019년 1월 중순부터 새 직장에 출근했었다. 겨울이라서 눈이 오기도 하고 길이 추위에 얼기도 했었다. 나는 목발을 짚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안전하고 편한 신발을 신고 천천히 걸으면서 겨울 땅 위에서 조심 또 조심하며 얼마간의 직장생활을 해나갔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좀 천천히 걸었으나 직원들은 내 다리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점심시간이나 사석에서 내 무릎 골절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랐다.

     

    3월 초가 되어 갑자기 1박 2일로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본 엑스포에 우리 회사 제품을 출품하게 되었고 간 김에 일본 시장 조사를 했어야 했다. 일본은 워낙 걸을 일이 많은데, 골절 후 6개월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호텔로 가는 길에 함께 갔던 한 직원이 나더러 많이 피곤한가 보라고 약간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그동안 못 느꼈는데 이제 내가 다리를 좀 저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무릎 골절 후, 6개월도 안심할 시기가 아닌 것이었다.

     

    1년쯤 지나자 이제 모든 생활에서 안정감을 찾았고, 얼마 전부터 예전과 비슷한 강도의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실내 자전거와 스쾃 운동으로 코어 근육 운동을 해 나갔고 이제는 절뚝거림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력 질주 같은 달리기를 한 적은 없었다. 할 일도 없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난 1년 동안 가장 고민이 되는 순간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골절 이전에 나는 저 멀리서도 횡단보도가 그린색일 때는 사력을 다해 달려서 건너고야 말았다. 다치고 난 후, 목발을 짚었을 때는 물론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도 6개월 정도까지도 안전주의를 택했다. 그 이후론 약간 갈등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운전할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쓸데없이 서두르지 말기로.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조심하는 것으로.

     

    이제 9월이 되면 골절상 이후, 만 2년이 된다. 가족과 지인들도 나의 골절상을 잊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다짐해본다. 남은 인생도 기억하고 조심하자.

     

    * Note :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심신 곳곳에서 이미 노화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분들은 나에게 무슨 소리냐고 타박하시겠지만 나는 객관적인 생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참 성장하는 10대에서~20대 초가 지나면 20대 중후반부터 바로 성장의 하향 곡선으로 꺾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을 멈추는 그 순간부터 노화로 접어든다. 인간 수명은 늘어나고 있는데 성장과 노화의 시점에 변화가 없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고 공평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노화되는 기간, 늙어가는 상태로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내가 다친 그 순간, 찰나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물론 내가 부주의해서 생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좀 더 빠른 반사신경으로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빨리 인지하고 좀 더 빠른 반사신경으로 몸의 균형을 찾지 않았을까. 어쩌면 부주의 자체도 두뇌 속 노화에 속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세월을 인정하고 순응하고, 대신 또 그만큼 조심하고 안전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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