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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가을 하늘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2. 9. 24. 18:15
유달리 길어진 더위와 예측 불가한 날씨 덕에 몸과 마음의 적응에 순발력이 필요한 나날들이었다. 갑자기 몰려왔던 태풍과 그로 인한 영향으로 9월 중순인 얼마 전까지도 한낮에는 더위를 느꼈다. 갱년기 증상의 하나로 순간순간 불쑥 찾아오는 열감도 더위에 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선조들이 정해놓았던 절기가 잘 맞아가는 것은 언제나 신기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까지는 가을이 무척 좋았다. 봄과 달리 가을은 상대적으로 공기가 더 청정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푸르고 높은 하늘이 드넓은 바다 같았다. 흰 뭉게구름이 마치 그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때로는 비현실적으로까지 아름답게 느껴졌다. 울긋불긋 예쁜 단풍의 계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8월 중순이 지나 절기 중에 하나인 처서가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분위기부터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추운 겨울보다는 차라리 더운 여름이 낫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삼복더위에 몸이 지쳐갈 때쯤에는 항상 처서라는 절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입추가 지나고도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처서가 되면 신기하게도 끈적한 습도가 감소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물론 태풍이라는 변수도 있고, 기후 변화에 의하여 점차 우리 한반도가 아열대화 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여러 상황 속에서도 또다시 그렇게 가을은 결국 찾아왔다.
하지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가을이 더 이상 반갑지만은 않았다. 한 여름 더위에서 벗어나 높고 깨끗한 푸른 하늘과 흰구름은 반가웠다. 매력적인 단풍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내 쌀쌀함이 몰려오고 예쁜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낙엽이 되고 곧 쓸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마치 추운 겨울을 각오하고 준비하라는 신호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추운 겨울이 점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추위에 무엇인가를 계속 껴입어서 몸이 무거워지고 긴장감으로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서 더욱 힘들어졌다. 언제부터인가 기나긴 겨울이 하루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며 무채색의 자연, 삭막했던 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는 봄을 마냥 기다렸다. 봄이 오는 것과 동시에 마음에도 무엇인가 희망과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이제 그런 봄과 더운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이상 고온과 습도까지 높았던 며칠 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하늘을 바라보니 역시나 아름다웠다.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색이다. 마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흰구름까지 더하여 청명한 가을 하늘 자체였다. 역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졌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기억이나 진행 중인 현재의 삶에 따라 감정에 쉽게 휩싸이고 그것은 또다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았다. 친한 후배 중에 한 명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오면 자신의 딸이 어린 시절에 갑자기 아파서 마음 조리며 병원에 갔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남들에겐 아름다운 계절에 후배는 마음 아프고 아이가 고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한창 좋을 때라는 대학 시절에는 온갖 예쁜 꽃들이 만발했던 봄날, 아름다운 단풍이 한창이었던 가을날에는 어김없이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었다. 일탈과 학업 사이에서 고민했던 젊은 날이었다. 직장에서 한창 업무를 배우며 경력을 쌓아가던 시기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 못 느낄 때도 있었다. 세월은 그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나에게도 일 년 중에 특정 시기가 되면 마음이 쓸쓸해지는 기억이 만들어졌다. 부쩍 쌀쌀해졌던 늦가을에 사랑하는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예상치 못했던, 준비 없이 찾아온 이별에 당황하고 슬펐던 충격적인 순간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었다.
분명히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 시림을 느낀다. 내가 좋아했던 풍경을 감상하면서 온전히 좋지만은 않는 것이다. 쓸쓸함과 함께 찾아오는 먹먹함, 서늘함 같은 것이 있다. 불현듯 아빠가 계신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하늘도 좋았다. 그렇게 좋은 전망이 있는 곳에 계신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의 가슴은 여전히 시렸다.
연로하신 엄마가 계시다. 연세가 많으시고 심신으로 약해지셔서 하루하루 마음 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특히 환절기가 되면 이제는 정기적으로 아프시거나 더욱 쇠약해지시는 것 같다. 이 계절 또한 부디 무사히 넘기시길 바랄 뿐이다. 이 매력적인 계절을 바라보며 더욱 가슴 시린 또 하나의 이유이다.
* Note : 언젠가 언니와 나눈 대화 속에도 같은 내용이 있었다. 가을 하늘은 저렇게 예쁜데 왠지 마음은 온전히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한쪽이 시리다라고 말했다. 언니도 바로 수긍하고 공감해 주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예상치 못하게 오고 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희로애락은 공평하게 오고 있는데 유독 부정적인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아주 좋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마냥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쁜 것에서도 아주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에 가슴이 시리다는 역설적인 상태가 바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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