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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짜증이 나고 목소리가 커진다..갱년기 때문인가..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5. 19. 18:34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며칠 전, 다시 스스로의 부덕함을 느끼며 좌절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생산적인 업무를 하다 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했고, 보이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 하나의 작은 실수가 사회라는 조직과 대의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극도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25여 년 간의 생활을 일단락 지었다. 매일 팽배하던 스트레스를 벗어나면 마냥 자유로울 줄 알았다. 쉬면서 심신을 수련하면 화가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인격과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인 것인지.. 삶에서의 짜증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 암기력은 감소하지만 이해력은 늘어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나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이해력조차 감소하는 것 같아 큰 일이다.
얼마 전부터 내가 자주 이용하는 쇼핑센터에서 사은행사를 알려왔다. 행사 방법이 길게 설명되어 있는 것을 그래도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방식대로 이해했나 보다. 내가 이해했던 방식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별 것도 아닌 일로 마음속에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설명을 요구했다. 다시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진상 손님이 될 수는 없어서 그냥 그들 규정대로의 혜택을 받았다. 사실 혜택의 양은 더 많았으나 내가 원하는 종류의 혜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오해에서 비롯된 상황 때문에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분이 점점 더 나빠졌다. 그 누구도 그 무엇 때문도 아닌, 나 자신 때문이었다. 소심하게 다시 행사 방법을 읽어봤다. 처음부터 인식한 나의 방식대로 생각하면 여전히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해 방식이 거부당하자 불쑥 짜증이 나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부터는 이미 사안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내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자존심은 적당한 때에 적절하게 발휘되어야 하는 것인데 괜히 혼자 자존심이 건드려진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었다. 알량한 나만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 그 후로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목소리가 커진 나 자신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빠졌었다.
과연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아니, 불쑥 짜증이 나는 이유부터 알고 싶어 졌다. 요즘 평소에는 지극히 평온한 마음 상태로 살아간다고 생각해 왔다. 그 누구에게도 특별히 짜증 날 일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보다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좀 더 노력한다고 생각해왔다. 나의 이익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뉴스나 사회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서 어이없거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의 일반적인 상태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예기치 않게 지극히 개인적으로 벌어지는 소소한 일에 불쑥 화가 나거나 짜증이 휘몰아칠 때가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생긴, 소위 말하는 코로나 블루 증상 중에 하나라고 하기엔 작년 이전에도 그랬던 것 같았다.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TV에서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실제로 갱년기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그만둔 이후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가운데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솔직히 자존감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사실로 인정해야 했다. 생산적인 활동이 급격히 감소했으니 나 자신의 존재감과 함께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목표 의식도 점차 감소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적인 부분의 쇠퇴도 느껴졌던 것 같았다. 그래서 기억력이나 이해력 같은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의식에 민감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이 들면서 심성 곱고 우아하게 더 다듬어져야 할 판에 오히려 감정이 자제가 되지 않으니 실망스러운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짜증의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사건사고들이 보도된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한 편 누구 한 명이 조금 잘못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비판 공세를 퍼붓기도 하는 세상이다. 각계각층에서, 혹은 유명세를 떠나 모든 개인은 어느새 세상에 노출되어 심판대에 서기도 하는 조심스러운 세상이기도 하다. 혹은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쉽게 가짜 뉴스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유럽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리의 아내가 우리나라 상점에서 좋지 않은 행동으로 무리를 일으킨 사례가 보도되었다. 언론에서 면책 특권까지 거들먹거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외교관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품위 잃은 행동에 저절로 혀를 쯧쯧 차게 되었다.
누구로부터 비판을 받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어차피 사람은 모두 사회적 동물로 함께 살아가야 하니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 상태와 상황을 뒤돌아 봐야 할 것 같다. 스스로의 판단이 제대로 생각하고 내려진 것인지,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변명들을 어쩌면 본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아무 말이나 그저 나열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쉽게 비판적 잣대를 휘둘르면서도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한 것은 아닌지 나를 포함하여 다시 뒤돌아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이제는 꺼내기도 싫은 '내로남불'이란 말이 잠시라도 방심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단어가 되어 버렸고 그만큼 진중히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온 국민, 세계가 그녀의 입담에 주목하는 여배우, 윤여정 님의 말에 의하면 40대의 정이삭 감독("미나리" 감독)을 한결같이 은은한 품격으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아우를 줄 아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70대인 그녀조차도 그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타고난 성품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무진장 신뢰가 가는 윤여정 배우의 말이기에 그가 더욱 궁금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영어 단어 중에 Calm이라는 단어를, 나는 왠지 범접하기 힘든 고귀한 상태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저 조용한 것을 넘어 고요한 힘, 에너지가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Calm 하다고 표현했다. 배우고 싶은 감정 상태이다.
과연 나의 감정은 내가 계속 노력하면 자제가 가능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숙제이다.
* Note : 얼마 전에 우리나라 가톨릭계의 정진석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다. 나는 무교이지만 모든 종교계의 큰 어른 분들을 존경하게 된다. 그분을 기억하는 사제분의 말씀에 의하면 한 번은 추기경께서 자신에게 화를 내시며 꾸짖으셨다고 했다. 본인도 나름 억울함이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싫은 소리를 하셔서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그날 얼마 후, 추기경께서 직접 찾아와 아까는 화 내서 미안했다고 사과하셔서 마음이 풀렸다고 했다. 일 진행이 미흡하여 화를 내셨지만 직접 아랫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그런 분이라고 회고했다.
신이 아닌 모든 인간은 완벽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가끔은 감정에 따라 표현하는 그저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다르다. 바로 본인을 뒤돌아 볼 줄 알고, 깨달은 즉시 행동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하면 부정적이지 않도록 자제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정신줄 놓지 않고 뒤돌아 보고, 반성하고 깨닫고 해야 할 것 같다. 남 탓하기 전에 내 탓이 아닌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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