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되찾다. :: Aunt Karen's Note (카렌 이모의 노트)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눈물을 되찾다.
    삶의 소소한 멘토링 2021. 5. 26. 18:49

    50대가 되면서 심신으로 여러 가지 노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상 증세가 느껴져서 의료 기관을 찾아가면 노화 증세 중에 하나라고 했다. 들을 때마다 인정해야 하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안과 진료도 정기적으로 받으라고 했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 외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사실 찾지 않게 되는 병원이었다. 언론에서의 전문가들에 의하면 40대 중반부터 벌써 눈의 노안 증세를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화가 된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기기들을 접하면서 더욱 눈의 노화 속도가 당겨졌다고 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인 나도 물론 예전만큼의 시력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30대 초에 그 시기에 알려진 라식 수술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나의 수술 결정과 시행을 마치 겁도 없이 한다는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꽤 있었다.

     

    20년 넘게 라식 수술의 덕을 본 후, 몇 년 전부터 시력이 나빠지는 것 같아 안과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내 나이 대비 아직은 양호하다고 했으나 문제는 안구가 매우 건조하다고 했다. 현대인들의 거의 공통된 문제라고 했다. 안구건조증, 그것이 나에게도 문제가 되었다.

     

    한 편으로는 안구 건조증과 감정적으로 흘리는 눈물을 결부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눈물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을 가야 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공적으로 사적으로 해마다 많이 가게 되었다. 특별히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정중히 인사하고 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드리는 마음 그리고 유족을 위로해 드리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고 슬픈 경우에도 눈물이 안나는 경우가 생겼다.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상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지금 무척 가슴이 아프고 슬픈데..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일까.. 내 눈물샘에 문제가 생겼나.. 하는 극히 개인적인 이상한 생각을 그 순간에 하게 되다니, 감정이 더 엉키기 시작했다.

     

    30대가 되자마자 너무도 갑작스럽게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몇 년간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하여 힘들었다. 처음에는 씩씩하고자 노력했고 겉으로는 그런 것 같았지만 결국 무의식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다시 마음이 조금 평안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정신없었던 40대가 되었을 때부터 점차 눈물이 마른 것 같았다. 감정과 달리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공사다망하고 심신은 고달팠다. 마음은 무척 슬프고 아픈데 눈물은 눈가에 그저 고이다 말았다. 안구건조증과의 상관관계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근본적으로 감정 정리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나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애써 참고 감추거나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하는지조차 몰라서 힘들었던 것 같았다.

     

    얼마 전에 가톨릭의 정진석 추기경께서 선종하셨다. 후배이신 염수정 추기경께서 모든 장례 절차를 진행하시는 것이 보도되었다. 마지막 장례 미사에서 염 추기경께서 그동안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의지가 되었던 선배 정 추기경님을 회고하며 울컥하시어 한동안 말씀을 못하셨던 모습을 보며 나도 울컥해졌다. 참으로 감정 이입이 되어 눈물이 절로 나왔다.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이 화제가 되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회고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따스한 가족 간의 대화에서 흐느끼는 모습에서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덩달아 울컥 눈물이 나왔다. 때마침 혼술로 맥주를 좀 많이 마시고 있던 상태였다. 타인을 통하여 나의 과거가 한 장면씩 생각났다. 어리석고 철없던 시절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께 살갑지 못했던 행동들도 생각났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솔직히 한 편으로는 힘겨웠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과거의 그 순간으로 만약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착하고 슬기롭고 마음 따스하게 대처하고 싶었다. 지우고 다시 리셋(Reset)하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50대가 되고 이제야 그동안 메말랐던 혹은 억눌렀던 감정 표현이 다시 시작된 것일까 하고 생각되었다.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눈물을 되찾은 느낌도 들었다.

     

    내 나이에 맞추다 보니,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갱년기 여성들보다 갱년기 남성들이 더 눈물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다가 그렇게 자주 운다는 것이었다. 갱년기에 들어선 남자들이 남성 호르몬은 줄고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웃곤 했다. 그런데 단순히 웃을 일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보면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과연 여성 호르몬은 진짜 눈물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일까.

     

    눈물은 어쩌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순환 구조의 감정선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나의 기분 상태의 표현이랄까. 나의 의지에 의하여 혹은 나도 모르게 눌러져 있었던 나의 감정이 어떤 계기에 의하여 어느 순간에 눈물이라는 눈에서 나오는 액체에 의하여 깨닫고 느끼게 되는 것. 흐느끼게 되다가 다시 무엇인가로 정리하며 나아가게 되는 것. 진행과 동시에 마침표가 되고, 다시 진행되는 출발점. 

     

    슬프고 아파서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흐르면서 씻겨져 내려가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기쁘고 좋은 감정으로 감동되어 흐르는 눈물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그동안의 고생을 딛고 앞으로의 더 큰 희망을 담을 수도 있다. 둘 다 좋은 의미의 눈물로 이해될 수도 있다. 

     

    * Note : 예로부터 남자는 태어나서 3번만 눈물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대로의 의미가 있기도 하겠지만 참으로 가혹한 말이다. 이 시대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 없고 오히려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눈물은 왠지 약한 것이라는 다소 부정적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눈물의 의미를 알아가고 싶다. 순기능으로써의 눈물은 죄가 없다.

     

    오히려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눈물이 없어져서 혼돈되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찾게 되었을 때, 안심했다. 내 눈물의 기능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